내 마음의 농업생활사 박물관 - 1

군(郡)마다 고향생각 물씬 나는 물건을 모아 박물관 하나 차리자

등록 2003.01.28 12:54수정 2003.01.28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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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고향집 돌담

고향집 돌담 ⓒ 김규환


고향(故鄕)! 언제 들어도 포근한 이름 고향(故鄕)! 그리움에 추억과 애환이 서린 처마 어딘가에 묻지 않고 바짝 말려 긴급할 때 쓰려고 어머니께서 태를 걸어 둔 시골집!


농사를 지었든, 화전(火田)을 하였든, 바닷고기를 잡았든, 탄광지대였든, 도회지였든 어릴 적 고향은 내 작은 발길이 한 번 닿으면 마음에 차곡차곡 쌓였다. 고향을 떠나온 뒤 그 자리에 있었던 크든 작든 아름답지 않은 것이 무엇이랴!

긴긴 타향살이를 하다 한 번 되돌아가 보면 고향에는 사람들의 수많은 발자국이 지워진 채 자꾸 나에게서 멀어져만 간다. 아련한 그 뒤끝에 못내 아쉬워 한가지라도 붙들어 볼라치면 기억의 수많은 조각은 흩어지고 노인들의 흐릿한 정신상태 마냥 한 발작도 움직일 수 없다.

a 눈에 갇힌 느티나무

눈에 갇힌 느티나무 ⓒ 김규환


지친 몸을 이끌고 어귀에 도착하면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개미들이 줄지어 나무를 타고 기어올라 진을 핥아 먹는 여름철에는 우리에게 시원한 그늘이 되었다. 어느 누군가가 평상을 하나 갖다 놓은 뒤로 사람들은 회관이 아닌 당산나무 아래로 부채 하나 들고 몰려 들었다. 수박 한 덩이 있으면 수십 명이 나눠 먹었던 기억이 정겹다. 복숭아를 설이 해 와서는 벌레도 맛있다고 캄캄한 밤에 몰래 먹던 자리.

a 눈이 더 하얗지요?

눈이 더 하얗지요? ⓒ 김규환

 
동구를 지나 마을로 들어서면 어느 집에선가 서너 시인데도 벌써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 오른다. 집 앞에 있는 백구가 꼬리를 설레설레 흔들며 엉겨 붙는다. "그래 반갑다. 백구 잘 있었어?" 한 번 쓰다듬어 주고, 보듬어 주고, 안아줘도 갖은 아양을 떤다. 짐을 내리기도 힘겹게 길을 막는다. 얼마나 사람이 그리웠으면 이토록 놓아주지를 않는다지?

한 번 짐을 옮기고 나자 몇 해 전 더덕 캐러 갔다가 데려온 고양이 '호순이'가 "야옹야옹" 하며 꼬리를 내리고 흔들어 댄다. 한 때 같이 살았던 날을 잊지 않고 반긴다. "그래, 호순아! 이쁜 호순이가 배가 홀쭉하네! 밥 먹었어?" 호순이는 된장찌개를 잘 먹었다. 생선 비릿내를 조금만 풍겨주면 환장하고 싹싹 비웠다.


a 정지문-정제문

정지문-정제문 ⓒ 김규환

 
나일론 양말 때와 흙먼지에 까맣게 색이 바랜 마룻바닥에 물건을 내려놓았다.

이제부터는 추억 속의 집안 연장들과 인사를 해야 한다. 짚으로 만든 도구, 쇠로 만든 도구, 싸리와 대, 나무로 만든 도구가 행랑채를 중심으로 집안 곳곳에 덩그머니 버티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고향에 온 맛을 느낄 수 있다.


먼저 행랑채를 둘러보기로 했다. 행랑은 내 마음에 있는 농업박물관이자 6~70년대를 보존한 생활사박물관이기도 하다.

a 쇠스랑과 포크

쇠스랑과 포크 ⓒ 김규환

a 되로 주고 말로 받으면 얼마나 좋을까?

되로 주고 말로 받으면 얼마나 좋을까? ⓒ 김규환

a 낫

ⓒ 김규환

 
퇴비를 뒤집고 긁어모을 때 쓰는 쇠스랑, 퇴비를 높은 곳으로 멀리 던지기 위한 포크, 쇠갈퀴와 대갈퀴도 빠질 수 없다. 외양간 근처에는 무쇠로 만든 작두가 있다. 쇠붙이로 만든 게 이뿐이 아니다. 낫, 괭이, 호미, 곡괭이, 약괭이, 톱, 꺽쇠, 창이 집안 어디라도 숨어 있으면 다행이다.

a 싸리나무로 만든 삼태기

싸리나무로 만든 삼태기 ⓒ 김규환

a 두쥐

두쥐 ⓒ 김규환

a 석작

석작 ⓒ 김규환

 
싸리도 한 몫 했다. 삼태기가 있고, 채반이 있다. 발채도 있다. 도리깨도 나무로 한 자리 차지한다. 남부지방에서는 대가 많이 쓰였다. 대로 만든 엇가리는 닭장에 놓여 있고 발채, 소쿠리, 바구니, 석작은 정지나 광에 먼지와 함께 세월을 보내고 있다. '챙이'라 했던 키도 있다.

a 키

ⓒ 김규환

a 지게

지게 ⓒ 김규환

a 쟁기

쟁기 ⓒ 김규환

  
지게가 멜빵에 힘을 잃어가고 녹슨 보습이 끼워진 쟁기가 써레와 나란히 놓여 있다. 추수하는데 쓰인 홀테, 탈곡기, 풍구도 있다.

a 용마람

용마람 ⓒ 김규환

a 금줄

금줄 ⓒ 김규환

a 제웅

제웅 ⓒ 김규환

 
논농사, 벼농사를 하기 시작하면서 짚으로 만든 도구가 일상화되었다. 지붕을 이는데 없어서는 안될 귀중한 재료였던 짚으로 마람을 엮는다. 용마람은 모서리 부분에 물이 스며들지 않게 하기 위해 각별히 더 신경을 써서 엮는 고난도의 기술을 필요로 한다. 한 생명이 태어날 때마다 왼 손 새끼줄을 꼬아 금줄을 만들었고, 고사 지낼 때는 제웅을 만들었다.

a 고침

고침 ⓒ 김규환

a 씨앗병

씨앗병 ⓒ 김규환

a 달걀망태

달걀망태 ⓒ 김규환

  
고침, 수질, 씨앗병, 달걀망태, 짚모자, 짚신, 도롱이, 초분신, 삼태기, 엇가리, 누에섶, 둥구미, 닭둥우리, 망태, 멍석, 덕석, 똬리가 곳곳에 보였다.

빗자루는 종류별로 놓여 있다. 대와 싸리나무로 만든 마당빗자루, 수수와 갈대로 만든 방빗자루가 비스듬히 세워져 있다. 똥장군도 보였다.
 
숫돌이 우물가에 하얀 색을 띠고 있고, 도끼는 무뎌질 대로 무뎌져 있다. 끌과 대패는 사람 손길 안 탄지 오래되었다.
 
본채로 향하자 모서리에 절구와 절구대, 확독이 있다. 정지문을 열고 부엌으로 들어서자 무쇠솥, 체와 얼기미, 놋숟가락, 홍두깨와 조그마한 맷돌이 있다.

마루 한켠에는 사기요강과 숯덩이만 남은 화로에 인두가 놓여 있고 담뱃대가 턱 걸쳐져 있다. 방안 고리짝에는 비녀와 참빗이 새 주인을 못 찾아 버려지듯 있고 광에는 물레와 길쌈할 때 썼음직한 솔이 걸려 있다. 넓은 마당가로 장독대가 들어온다.

a 짚모자

짚모자 ⓒ 김규환

a 짚신

짚신 ⓒ 김규환

 

덧붙이는 글 | <1>편에 용량 관계로 다 싣지 못한 점 양해 바랍니다.
<2>편은 제안과 함께 사진을 마저 싣습니다.

덧붙이는 글 <1>편에 용량 관계로 다 싣지 못한 점 양해 바랍니다.
<2>편은 제안과 함께 사진을 마저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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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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