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밤새 오빠를 기다리던 날의 풍경

[고향가는 마음] 다시 생각하는 귀향과 가족관계

등록 2003.01.29 00:10수정 2003.01.3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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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수원

"언니, 이제 설까지 몇 밤 남았어?"
"딱, 한 밤 남았어!"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언니에게 설이 얼마나 남았는지부터 물었다. 그 동안 하루하루 손꼽아 설을 기다려 왔다. 설이 내일이라는 것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지 마루의 기둥을 껴안고 빙글빙글 돌았다.

설이 되면 먹을 것도 많았지만 도시로 돈벌러 간 오빠를 만난다는 것이 큰 기쁨이었다. 지금이야 교통수단이 발달해서 멀리 떨어진 가족들을 수시로 만날 수 있지만 그때는 명절이 되어야 객지로 떠난 가족들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우리 시골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공부를 계속하는 사람보다 돈을 벌러 떠나는 사람들이 많았던 가난한 농촌이었다. 여자 아이들은 버스의 차장으로, 부잣집 식모살이로 또는 공장으로 돈을 벌러 나갔다. 그래도 동네에 한두 집은 대학생이 있었는데, 팔 논밭이나 소라도 있는 집이었다.

여동생들은 오빠가 공부하면 자취방에서 살림해주고, 낮에는 일해서 오빠 학비를 대던 시절이었다. 집안 형편이 끼니 걱정을 해야 할 정도로 가난했던 집은 자식들을 중학교에도 보내지 못하고 도회지로 돈벌이로 떠나보내야 했다.

60년대, 가난했던 우리 큰오빠도 일찌감치 돈벌이를 떠난 대열에 합류했다고 한다. 오빠는 하루 세 끼 먹여주고, 잠도 재워주고, 월급도 주고, 나중에 기술도 가르쳐준다는 그럴 듯한 조건의 직장에 취직했다. 바로 중국집 배달원이었다. 열다섯 살, 오빠는 험난한 세상에 그렇게 첫 발을 내디뎠다고 한다.


그러나 어린 시절 우리 자매들에게 오빠는 하늘같은 존재였다. 막내둥이 쫑이미는 큰오빠를 가장 숭배했다. 뭘 잘못했을 때, '너 나중에 큰오빠한테 이를 거야'라고 하면 행동이 즉시 달라졌다. 우리는 무슨 일로든지 큰오빠가 고향집에 오기를 무척이나 기다렸던 것 같다.

우리 자매들은 큰오빠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난다. 우리가 오빠를 기다릴 즈음은, 오빠는 오랜 중국집 배달원 생활을 끝내고 요리사가 되어 조그만 식당을 차려서 장사를 할 무렵이다.


오빠는 우리 부모님 생전에 처음으로 가지시게 된 땅도 사주셨고, 매달 얼마간의 돈을 집으로 부쳐주셨다. 얼마는 가용으로 쓰시고 얼마는 동생들 앞으로 저축을 해주시라는 편지도 같이 보내셨다.

이런 오빠가 집에 오는 날은 어머니는 정성들여 식사를 준비하셨고, 술을 좋아하셨던 아버지도 약주를 입에 대시지도 않고 일찍 귀가하셨다. 가족 모두들 집안의 희망인 큰오빠를 어려워하고 또 좋아했다.

그러나 오빠는 집에 오래 머무는 법이 없었다. 한나절이나 하룻밤을 자고 다시 도시로 갔다. 오빠는 짧은 방문에도 어린 여동생들을 격려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자신이 공부를 못해서 한이 된 것을 동생들에게는 물려주지 않으려는 각오였다.

"너희들은 열심히 공부해라. 공부 잘 하면 오빠가 대학도 보내주고 유학도 보내줄게."

유학이 뭔지도 몰랐지만 오빠가 그런 말을 해주는 것이 너무나 자랑스러웠다. 오빠가 사다놓고 간 공책과 연필, 볼펜 등을 만지작거리며 오빠의 말을 생각했다.

벽에는 오빠가 사다준 한국의 위인들이라는 벽보처럼 생긴 화보가 붙어 있었다. 단군으로부터 시작해서 계백, 김유신, 을지문덕, 왕건, 이성계 등 많은 위인들이 빽빽하게 정렬하여 있었고, 얼굴 그림 아래에는 생몰연대와 업적이 작은 글씨로 써 있었다. 마지막 줄에는 고개를 약간 옆으로 숙인 유관순이 있었던 것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설을 앞둔 저녁, 날이 어두워져도 가족 모두가 눈이 빠지게 기다리는 오빠는 안 왔다. 부엌에서 분주히 음식을 만드시던 어머니가 드디어 한 마디 하신다.

"아이, 오빠 오는가 신작로에 한 번 나가 봐라."

쫑이미, 언니, 나 셋은 신이 났다. 국방색으로 된 작은 손전등을 들고 마중을 나갔다. 가로등도 없던 시절, 우리가 고무신을 찰박거리며 뜀박질을 할 때, 작은 손전등의 불빛도 어둠 속에서 춤을 추었다.

마을 앞길의 탱자나무 울타리 밭을 지날 때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탱자나무 울타리 뒤에 귀신이 있어 밤에는 돌을 던진다고 했다. 우리 셋은 우르르 뛰었다. 쫑이미가 고무신이 벗겨졌다고 소리쳤다.

"언니, 내 신! 내 신!"

우리는 뛰던 것을 멈추고 뒤돌아가 쫑이미의 신발을 찾아 신기고 또 뛰었다.

마을 앞의 신작로에 다다랐지만, 우리는 언제 버스가 오는지는 알지 못했다. 무작정 쭈그리고 앉아 버스를 기다렸다. 저쪽에는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차들의 불빛이 황홀했다.

추위가 우리를 엄습했다. 덜덜 떨면서도 버스를 기다리는 것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드디어 버스 한 대가 저만치서 어둠속에 불빛을 쏘며 오는 것이 보였다. 우리는 모두 일어서서 버스가 멈추길 기다렸다.

그러나 아랫뜸에 사는 누군가가 큼지막한 보따리를 들고 내렸을 뿐, 기다리던 오빠는 내리지 않았다.

"느그들, 누구 기다리냐?"
"예. 우리 큰오빠요."
"이거시 올라오는 막찬디, 느그 오빠가 안 올랑갑따."
"추운디 어서 들어가라."
"아니어라. 우리 오빠가 꼭 온다고 했어라." 쫑이미가 거의 울상이 되어 말했다.

먼지를 한 무더기 쏟아내며 덜컹덜컹 막차가 가버린 뒤에도 우리는 집에 돌아올 생각을 못하고 어둠 속에서 좀더 앉아 있었다.

"언니, 사거리로 가보자. 막차가 갔으니까, 오빠는 지나가던 차를 타고 사거리에서 내릴지도 몰라." 내가 제안했다.

그 당시 우리 지방을 지나는 고속도로는 일반도로와 다를 바 없이 지방도로와 교차되고 사람들도 고속도로를 건너다니곤 했다. 우리는 좀더 걸어서 신작로와 고속도로가 만나는 사거리 한 귀퉁이에서 오빠를 기다렸다.

자동차 불빛이 우리들의 얼굴을 한번씩 비춰주고 지나갔다. 입김이 하얗게 올라왔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우리 모두는 발도 너무 시리고 추워서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언니, 인자 고만 집에 가자. 추워 죽겠다."
"우리, 차 열 대만 더 지나가는 것 보고 집에 가자."
우리는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차를 세기 시작했다.

"한 대, 두 대, 세 대, ....... 열 대."

그러나 오빠는 오지 않았다. 우리는 풀이 죽어서 일어났다. 나갈 때와는 다르게 걸어서 당산나무가 버티고 서 있는 마을 입구를 지나 마을로 들어왔다. 섣달 그믐날 밤이라 집집마다 밝혀 놓은 불빛들이 그나마 정답게 느껴졌다.

그날 저녁 오빠는 밤늦게 집에 도착하였다. 일반고속 막차를 타고 오다가, 운전기사에게 부탁하여, 정식 정류장이 아닌 우리 마을 앞 사거리에서 내렸다고 한다. 어머니는 오빠를 위해 밥상을 차리고, 자다가 깨어난 우리는 오빠 옆에 둘러앉았다. 1975년 섣달 그믐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덧붙이는 글 | 이제는 까마득한 추억입니다. 오빠를 기다리던 꼬마들은 모두가 어른이 되어 각자의 길을 가며 살아가고 있지요. 하지만 그 시절 형제끼리 의지하며 서로 돕고 살았던 것을 잊지 않으려고 이 글을 씁니다.

오빠는 그 시절 약속대로 연로하신 부모님을 대신하여 저를 대학에 보내주셨지요. 오빠, 사랑합니다.

덧붙이는 글 이제는 까마득한 추억입니다. 오빠를 기다리던 꼬마들은 모두가 어른이 되어 각자의 길을 가며 살아가고 있지요. 하지만 그 시절 형제끼리 의지하며 서로 돕고 살았던 것을 잊지 않으려고 이 글을 씁니다.

오빠는 그 시절 약속대로 연로하신 부모님을 대신하여 저를 대학에 보내주셨지요. 오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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