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임실 양반'의 특별한 사연

[2003 나만의 특종] <오마이뉴스>기사가 맺어준 인연

등록 2003.12.21 11:43수정 2003.12.22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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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 오늘 임실 사는 양반이 우리 집에 왔다갔다."
"좀, 잘 해 드리지 그랬어요?”
"그래, 사람이 참 좋더라. 네가 온 것 맨치로 얼매나 반갑던지……."
"엄마, 많이 좋았는가 봐요?"
"그 양반이 사진도 많이 찍어 갔다. 나도 기념이 되라고 옆집 순창댁 불러서 네가 사준 카메라로 그 양반이랑 같이 사진 찍어 놨다."



우리 어머니는 "아이고, 그 양반 너무 자상하고 인물도 좋더라"를 연발하셨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한동안 들뜨신 어머니의 목소리의 여운이 남았다. 우리 어머니가 말하는 임실 양반은 <오마이뉴스>를 통해 알게 된 분이다. 그 분은 평상시에는 광양에서 직장을 다니고 주말에는 임실 고향집에 가서 농사를 지으면서 글을 쓰시는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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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분은 내가 미국에 살고 있어 고향과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것을 아시고 고향 마을의 사진을 찍어서 이메일로 보내 주시려고 어머니께 들른 것이다. 어머니께는 내가 미리 누가 사진 찍으러 갈지도 모른다고 연락을 드렸는데, 진짜로 나를 아는 누군가 와서 인사를 하니 어머니는 정말 기쁘셨는가 보다. 어머니께서는 그 분이 다녀가고 나서 곧바로 나에게 전화를 주셔서 낮에 있었던 일을 소상히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 며칠이 안 되어 나는 우리 마을 전경과 달고 시원한 샘물이 나오는 샘터, 그리운 고향집과 어머니 모습 등이 담긴 선명한 사진파일들을 받았다. 우선 여전하신 어머니의 모습이 너무나 좋았고 어릴 적 추억이 담긴 샘터 사진을 볼 때는 갈증마저 느꼈다. 그 사진들을 보며 늘 향수를 달랠 수가 있었다.

a 연꽃처럼 아름다운 인연이 되기를 기원하다

연꽃처럼 아름다운 인연이 되기를 기원하다 ⓒ 김기철

그 분과의 인연은 <오마이뉴스>가 맺어준 것이다. 그 때는 <오마이뉴스>를 알고 글을 쓰기 시작한 지 불과 몇 달이 안 되었을 때였다. 지난 설 즈음에 나는 <오마이뉴스>에 '설날, 밤새 오빠를 기다리던 날의 풍경'이란 글을 올렸다. 그런데 뜻밖에도 70년대의 가난했지만 따뜻한 가족애가 담긴 이야기가 메인 톱까지 올라갔고 많은 독자들이 읽어주고 또 그 때까지 내 글 중에서 가장 많은 답글을 달아주셨다. 또 몇몇 분들은 나에게 이메일을 보내 격려해 주셨다.

어머니가 말씀 하시는 임실 양반도 본인이 쓴 글과 함께 나에게 격려의 글을 보내 주신 분이었다. 나는 고마워서 답장을 했고 간혹 안부의 메일을 보내게 되었는데 그분이 고향을 가는 길가에 우리 마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사진을 찍어 보내주시겠다고 했던 것이다. 나는 우리 마을까지 가면 우리 친정집에도 들러 보시라고, 우리 어머니가 무척 반가워하실 거라고 말씀 드렸던 것이다.


나는 또 그분이 소개해 준 좋은 인터넷 사이트를 알게 되어 좋은 글들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지난 여름부터는 그 인터넷 사이트의 해외 통신원이 되어 나의 미국 생활 이야기를 연재하게 되었다. 내가 해외 통신원으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을 때 누구보다 그 분이 축하해 주셨던 것이 생각난다.

그런데 그날 이후로도 어머니와 임실 양반의 인연은 이어졌다. 추석이 되었을 때, 그 분이 어머니가 부산 가서 추석을 지내시는 것을 모르고 어머니가 계시는 고향집으로 인사를 갔던 것이다. 결국은 빈 집 마루에 가져가신 포도 한 상자만 두고 오셨다. 어머니는 나중에 그것을 아시고 명절에 어머니를 찾아 주신 그 분을 두고두고 고마워 하셨다.


어머니는 그 후 모진 태풍에도 잘 익은 단감을 보시고 멀리 있는 나를 생각하다가 추석 때 다녀간 임실 양반을 생각하셨다고 한다. 미국에 사는 딸에게는 좋아하는 단감을 못 보낼망정 딸을 위해 고향집을 찾아왔던 그 분에게 단감이나 한 상자 드려야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나에게 전화번호를 알아 달라고 청하셨다.

나는 그 분의 전화번호를 메일로 여쭈어봐서 편지랑 사진과 함께 전화번호를 큼직하게 적어 항공우편으로 보내드렸다. 어머니는 그 분께 전화를 해서 다녀가라고 하셨고 그 분은 다시 시골집에 들르셨던 것이다.

@ADTOP@그 분이 올 때 어머니는 추석 때 선물까지 가져다 주신 것이 고마워서 닭을 잡아 드렸다고 한다. 그런데 임실 양반은 어머니와 장모님을 여읜 지가 오래된 분이었다. 우리 어머니가 집에서 기르던 토종닭을 잡아 주시니 너무나 깜짝 놀라고 고마웠다고 했다.

그 후에 임실 양반 내외가 또 우리 어머니가 고마워서 겨울 스웨터를 선물해 드렸다. 우리 어머니는 너무 좋은 선물을 받아서 미안해 어쩔 줄 모르시겠다고 하시면서도 크게 기뻐하셨음은 물론이다. 우리 집을 비롯하여 언니네집, 오빠네집 여기저기 자랑을 하셨다고 한다.

찾아오는 사람도 별로 없는 외로운 시골 노인에게 멀리 사는 딸의 손님이 찾아 왔으니 오죽 반가웠으랴! 더구나 인터넷 글쓰기를 통해 알게 된 사람이라고 하니 더욱 놀라웠을 것이다.

어머니는 내가 한국에 다녀갈 날을 다른 때보다 더욱 손꼽아 기다리고 계신다. 내가 고향에 들르면 임실 양반 가족이랑 같이 모여서 근처에 아주 맛있다고 소문난 식당에 가서 같이 식사하고 기념사진도 찍자고 하신다. 나도 사진으로는 그 분이랑 자녀들을 본 적이 있지만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으니 참 기대가 된다. 그리고 만나서 책 이야기, 글쓰기 이야기, 사는 이야기도 나누고 싶다.

<오마이뉴스>에 글쓰기를 한 지가 일년이 조금 지났다. 글을 쓰다가 몇 달씩 쉬기도 했다. 바쁘기도 했지만 좀 쉬고 나면 내 글이 좀더 멀리 보이고 고칠 점이 보였다. 그러면 어느 날 다시 글을 쓰고 싶은 의욕이 넘친다.

호기심과 글을 쓰고 싶은 의욕으로 시작했던 <오마이뉴스> 글쓰기가 나의 현실 생활에도 영향을 미칠 줄은 몰랐다.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읽고 격려의 편지를 주셔서 외롭지 않았고 좋은 사람들을 만날 기회를 덤으로 얻었으니 이는 2003년 나의 최고의 특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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