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에 무슨 인연이 있긴 있었나 보네요"

<오마이뉴스>가 맺어준 인연,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등록 2004.08.12 11:28수정 2004.08.12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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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부처님 오신날, 모후산 시적암에서 .왼쪽부터 필자,어머니,정동순, 아내.

부처님 오신날, 모후산 시적암에서 .왼쪽부터 필자,어머니,정동순, 아내. ⓒ 김도수

지난 5월 하순, 미국 콜로라도에 사는 정동순님이 곡성 연동마을에 왔다. 동순님은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오마이뉴스>와 맺은 인연으로 고향에 홀로 농사 지으며 사시는 어머니께 내가 친자식이나 사위처럼 지내고 있으니 한국에 나오면 가족들과 함께 오붓하게 저녁도 먹고 즐거운 시간을 갖자고 했다. 그래서 동순님은 다른 해와는 달리 한국에 나오는 올 봄이 무척 기다려진다고 했었다.


석가탄신일인 지난 5월 26일 아내와 함께 순천 주암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동순님과 어머니는 석가탄신일을 맞이하여 모후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시적암'이라는 절에 간다고 하기에 내가 이왕이면 함께 갔으면 좋겠다고 하여 주암 버스터미널에서 만난 것이다. 동순님과 만났다. 첫 만남이었지만 우린 서로가 낯설지 않고 오래 전부터 만나온 사람처럼 그렇게 반갑게 만났다.

시적암은 동순님이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법장 스님이 정진 중인 조그마한 암자였다. 법장 스님은 각박한 현대인의 일상을 헹구어 주고, 마음을 촉촉히 적셔주는 <사람이 그리운 산골 이야기>란 책을 펴내기도 하셨다. 시적암은 들어서서 고개만 숙이면 동서남북 산들과 이마가 마주칠 정도로 아주 깊은 산골에 있는 암자였다. 동순님 덕분에 점심 공양도 맛있게 먹고 스님이 직접 내주는 차도 마시며 책도 한 권 선물로 받았다.

정동순님을 만나다

시적암을 빠져 나온 우린 연동마을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지난 3월, 큰방 윗방에 형광등이 모자라 갈지 못하고 매달아 놨던 낡은 갓등을 떼어내고 밝은 트윈등으로 갈았다.

"허허, 진짜 내 사위보다도 친자석보다도 나한테 잘 헌당게. 이 세상 천지에 누가 우리 집에 와서 형광등을 갈아준다고 허겄어. 참말로 복 받고 살 사람이당게. 우리 큰 아들이 부산으로 꼭 한번 놀러 오라고 헙디다. 아들도 신경 못쓰고 있던 형광등도 갈아준 고마운 사람이다고 부산에 놀러 오면 하여간 집이한테 저녁 한번 야물게 산다고 헙디다."


형광등을 갈고 나니 어머니는 콘센트를 하나 가지고 오더니 "어쩌께라우, 헐 수가 없소. 요 놈 마저 갈아주어야 허겄는디∙∙∙. 들에 갔다 오면 따땃허게 밥을 먹을 수 있도록 전기 밥솥에다가 밥을 넣어놓아야 허는디 주방에 있는 요 놈의 것이 오래 돼갔고 코드를 낑기먼 원 들어가야 밥솥을 사용히 묵제. 코드를 낑길 때마다 안 들어강게 애를 묵는당게요. 언제 집이 오면 갈아달라고 헐라고 내가 하나 사다 놓았소. 참말로 요런 것까지 갈아달라고 헝게 염치가 없소만 헐 수가 없소. 더운디 선풍기라도 내올께라우. 참말로 미안히서 어쩐데아."

콘센트를 갈고 나니 앞집 겸면 어머니가 "해 저물기 전에 얼른 밥 묵으로 가더라고" 외출복 차림으로 마당에 들어선다. 겸면 어머니와 연동 어머니, 동순님과 아들 규동이, 아내를 태운 차는 먹고 싶은 고기들을 직접 골라서 맘껏 먹을 수 있다는, 연동 어머니가 그토록 우리들을 데리고 가고 싶어했던 남원 시내에 있는 한 고기 뷔페식당으로 향했다. 연동 어머니가 '우리 동순이 미국서 나오면 남원에 가서 맛있는 장어구이랑 먹고 또 가족사진도 함께 찍자'고 벼르고 벼르던 날이 바로 그날이었다.


a 동서남북으로 고개만 끄덕이면 이마가 닿을 듯한 시적암

동서남북으로 고개만 끄덕이면 이마가 닿을 듯한 시적암 ⓒ 김도수

연동 어머니는 장어, 오리고기, 돼지갈비, 닭 발 등 고기들을 조금씩 골고루 담아온 접시를 동순님과 내 앞으로 자꾸만 밀어대며 시원한 음료수도 한 잔씩 마시며 천천히 많이 먹으라며 음료수를 한 컵씩 따라놓는다.

동순님이 지난해 연말 <오마이뉴스>에 '어머니와 임실양반의 특별한 사연'이란 기사를 써서 '2003 나만의 특종'에 당선된 상금으로 맛있는 저녁을 얻어 먹은 우리는 이쑤시개 하나씩 집어 들고 콧노래를 부르며 연동마을로 향했다. 연동 어머니 집에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밤 늦게까지 놀다 순천 집으로 돌아오려 하는데 동순님은 "이번 주에 회사에 특별한 일이 없어야 할텐데 어쩌지요? 이번에 꼭 진뫼마을에 한 번 가보고 싶은데…"라고 말했다.

동순님은 부모님 돌아가시고 난 이후 남의 손에 넘어가 폐가로 방치된 고향 집을 사서 주말마다 내가 들락거리며 농사짓고 사는 임실 진뫼마을에 한번 가보고 싶어했다. 그런데 동순님이 곡성 연동마을에 머무르는 동안 휴일이 한 주밖에 없는 관계로 혹시 내가 이번 주 휴일 날 회사에 일이 생겨 진뫼마을에 못 가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다. 나 역시 동순님을 고향마을에 꼭 데리고 가고 싶은데 휴일 날 회사에 일이 생기면 어쩌나 내심 걱정을 하고 있었다.

다행스럽게 휴일 날 걱정했던 일이 회사에 생기지 않아 동순님과 어머니 그리고 앞 집 겸면 어머니와 함께 임실 고향집으로 갈 수 있었다. 임실로 가기 위해서는 곡성을 경유해야 하므로 아내와 나는 점심에 먹을 반찬과 삼겹살, 그리고 술을 사서 연동마을로 갔다. 연동 어머니와 앞 집에 사는 겸면 어머니는 바쁜 모내기 철이라 그런지 이앙기로 모내기 끝난 논에 일부 심어지지 않는 모들을 때우러 논에 나가고 집에 계시지 않았다.

나는 동순님께 어머니가 모를 때우고 있는 논으로 가자고 했다. 어머니 홀로 농사짓는 논이 집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다랑이 논은 아닌지, 가뭄이 들 때면 물은 잘 드는 논인지 몹시 궁금했다. 동순님이 앞장을 서고 아내와 함께 논으로 가는데 어머니는 어느새 우리들이 논으로 오는 것을 보았던지 멀리서 우리 쪽으로 다가오고 계셨다.

동순님은 논으로 가는 동안 고향 마을 곳곳을 가리키며 가난하고 힘들었던, 아직도 눈 앞에 생생하게 펼쳐지는 어린 시절 이야기들을 들려주며 마을 이곳 저곳을 가리킨다. 어머니가 일년 내내 뙤약볕에서 땀 흘리는 고추 밭과 아버지가 누워 계시는 뒷산, 가을이면 마을 뒷쪽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산골짜기에서 빨갛게 익어가는 감나무 밭 등을 가리키며 가난에 찌들어 힘들게 살았던, 기억 저편으로 아스라이 사라져간 세월의 물줄기를 다시 되돌려 놓고 있었다.

60~70년 대 어린 시절 시골에 살았던 친구들이라면 알겠지만 대부분 학교에 갔다 오면 망태 메고 소 꼴 베러 가야 했고 또 어머니와 함께 밭을 매러 가야 했다. 동순님과 나의 옛 추억은 풀려진 실타래처럼 그칠 줄 모르고 줄줄 풀려 나오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동순님과 나는 서로 손등을 대보며 소 꼴 베고 논두렁·밭두렁 베느라 낫과 풀로 손 곳곳에 베어져 남아있던 상처자국들을 서로 가리키고 있었다. 이른 새벽이면 이슬방울들이 매달려 활처럼 휘어진 억새 잎처럼, 뜨거운 뙤약볕 아래 가시처럼 꼿꼿하게 서있는 띠 잎처럼, 그렇게 손 곳곳에 여러 모양의 상처자국들이 선명히 그려져 있었다.

손등에 상처들

a 내 고향 진뫼마을 앞으로 흐르는 섬진강을 건너보는 정동순님과 규동이

내 고향 진뫼마을 앞으로 흐르는 섬진강을 건너보는 정동순님과 규동이 ⓒ 김도수

동순님의 상처 난 손등을 자세히 쳐다보기 전에는 초등학교 선생님까지 하신 분이라 곱디 고운 손 인줄만 알았다. 그런데 막상 손 곳곳에 상처 난 자국들을 바라보니 '내 고향은 시골입니다' 표시 난 손을 가지고 있었다.

"동순씨도 어릴 때 생각보다 솔찬히 일을 많이 하고 살았네요. 아, 어린 여자 학생이 깔까지 비로 댕깄으니 왠만한 일은 다 해봤겠고만요."

옆에 계시던 어머니께서 "동순이도 어릴 때 일 많이 했제. 밭도 매로 댕기고 소 깔도 비로 댕기고 일 겁나게 힜어. 그런디 몸이 다른 애기들보다 좀 허약히서 일을 쬐께만 시키도 베그르르 힜어. 지금 같으먼 보약이라도 한 첩 져맥이고 그랬을턴디…. 그 때는 가난히서 보약 같은 것은 생각도 못히봤제. 그 때를 생각허먼 맘이 몹시 아파."

동순님 손등을 자세히 살펴보니 곳곳에 베인 상처 자국들이 나보다 훨씬 많았다.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던 동순님은 아이들 교육 시킬 때 분명 '서늘한 그늘보다는 뜨거운 뙤약볕 아래서 구슬땀 흘리며 노력하는, 알알이 익어가는 가을날의 열매를 생각하며 아이들을 가르쳤겠구나' 내내 그런 생각을 했다.

앞 집 겸면 어머니와 함께 연동마을을 출발하여 순창을 지나 임실 진뫼마을에 도착했다.

"하따, 마을 앞으로 제법 큰 냇가도 흐르고 산도 푸르고 정자나무도 마을 앞에 떡허니 두 그루 알맞게 서 있고 마을이 참 이쁘요. 마을을 봉게 산꼴짝이라 지을 농사도 별로 없어서 자식들 먹이고 가르치느라 부모님들 애께나 써껐소. 앞에도 산, 뒤에도 산, 옆에도 산, 참말로 꼴짝은 꼴짝이요. 시방은 요론대가 더 좋당게. 전에 애기들 학교 댕길 때 공일날 집에 한번씩 댕기가먼 짐들을 차부까지 갔다주느라 머리에 여서 버스 타는 곳까지 갔다 주어야 힜는디 시방은 차가 다 실어다 준게 꼴짝이고 도시고 구별이 없어져 부렀어. 근디 부모님 돌아가신 뒤 팔린 집을 다시 사서 요로케 보기 좋게 히 놓고 산게 얼매나 좋소. 안방에다가 부모님 사진도 떡허니 걸어 놓응게 참말로 보기 좋고만. 하여간 복 많이 받고 살 양반여. 나는 집에 아무도 살지 않는다고 히서 어떻게 점심을 히 묵을까 걱정을 허고 왔는디 꼭 사람이 살고 있는 집맹키로 아조 깨끗허고 야물지게도 히 놓고 살고 있고만∙∙∙. 어따, 넘덜한테 자랑할만 허요.”

아내와 동순님은 부엌에서 맛있는 밥상을 차리고 나는 집 앞에 있는 고추 밭으로 달려가 풋고추와 싱싱한 상추를 뜯어왔다. 마루에 둥근 밥상을 차려 옹기종기 모여 앉아 삼겹살에 술도 한 잔씩 마시며 '건배'를 외쳤다. 점심을 먹는 동안 동순님은 기분이 좋은지 입가엔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모르는 사람들과의 인연이 여기까지 이어져 섬진강 작은 강변마을 마루에 어머니와 나란히 앉아 점심을 먹고 있으니 너무 기쁜가 보다.

"참말로 우리가 전생에 무슨 인연이 있었길래 요로케 진뫼마을 마루에 앉아 점심을 다 얻어 먹는다요? 그나저나 미국에 있는 우리 남편에게 요 광경을 보여줘야 하니 사진이나 한 장 찍어둬야것고만…."

"해필이면 사위한테 밥 묵는 모습을 찍어서 보여줄라고 허냐. 이왕이면 이쁘게 앉아 있는 모습을 찍어서 보여줘야제."

동순님과 어머니, 앞 집 겸면 어머니는 술이 부드러운지 아니면 기분이 좋아 술이 달짝지근했던지 연거푸 두 세 잔씩 비워댄다. 주말이면 고향으로 달려와 농사지은 싱싱한 상추에 삼겹살 한 점씩 올려 된장을 찍어 바르고 풋고추를 얹어 마루에 앉아 먹는 점심밥. 맛있게 먹는 점심밥도 점심밥이지만 얼굴에 피어 오르는 행복한 미소는 이 세상 어느 연기자도 흉내 낼 수 없는 행복하고도 아름다운 미소였다. 우리들이 내 뿜는 행복의 숨소리가 섬진강 강바람을 타고 남으로 북으로 멀리멀리 퍼져 나갔으리라.

자격증 시험 때문에 진뫼마을에 함께 동행하지 못했던 아이들은 동순님 아들인 규동이를 만나고 싶어했다. 그러나 일요일인 오늘 연동마을로 가서 규동이를 만나지 못하면 미국으로 다시 들어간다고 했더니 아이들이 규동이를 만나러 가자고 졸라대는 바람에 일요일 오후, 또다시 연동마을에 갔다.

초등학교에 다닌 딸내미와 아들은 유치원에 다니는 규동이가 너무 귀여운지 만나자 마자 마당으로 안방으로 함께 우르르 몰려다니며 재미지게 잘도 논다. 아이들이 서투른 영어로 규동이에게 말을 건네면 규동이는 영어로 술술 대답을 하고 또 한국말로 이야기하면 한국말로 대답을 했다. 동순님이 규동이에게 어릴 때부터 한국어를 잘 가르쳐서 그런지 발음도 정확하고 또 언제 배웠는지 전라도 사투리를 한마디씩 던질 때면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볼을 콱 깨물어 주고 싶을 정도로 애교가 철철 넘쳐흘렀다.

연동 어머니는 들녘에 나가 일을 하고 돌아와 냉장고에 넣어둔 생선이며 고기며 막 끊어온 머위대까지 밥상에 올린다. 우린 마치 하루 일과를 끝내고 안방에 모여든 식솔들처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저녁밥을 먹었다. 가족들이 오랜만에 만나서 안방에 모여 정겹게 이야기를 나누듯 우리도 그렇게 한 가족이 되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고 있었다.

아내는 동순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갑자기 "동순씨는 볼수록 참 매력이 넘치는 얼굴이네요. 보면 볼수록 매력이 넘치는 그런 얼굴 말이에요. 인상이 참 좋네요."

"한 턱 더 쏠까요?"
우린 까르르 웃으며 연동마을 집을 나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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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정겹고 즐거워 가입 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염증나는 정치 소식부터 시골에 염소새끼 몇 마리 낳았다는 소소한 이야기까지 모두 다뤄줘 어떤 매체보다 매력이 철철 넘칩니다. 살아가는 제 주변 사람들 이야기 쓰려고 가입하게 되었고 앞으로 가슴 적시는 따스한 기사 띄우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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