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는 장차 무림천자성의 대권을 한 손에 거머쥘 철기린에게 어떻게 아부할 것인가를 생각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래야 자신은 물론 자식의 대에도 자리가 안전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철기린에 대한 것이 외부로 별로 알려진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도 은밀히 준비한 것이 있었다. 사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계집이 바로 그것이었다. 하긴 오죽하면 열 계집 마다할 사내 없다는 말이 있겠는가!
조부와 부친 모두가 색을 밝히니 그의 자식인 철기린 역시 색을 밝힐 것이라 짐작한 것이다. 준비해 두었다가 만일 아니다 싶으면 성주인 철룡화존에게 바치면 그만이었다. 그러던 중 철기린이 도착한 것이다.
그는 일년 전부터 장차 자신이 다스릴 천하를 구경하겠다며 유랑하던 중이었던 것이다. 당연히 성대한 연회가 베풀어졌다.
그리고 그 동안 준비해둔 비장의 무기를 꺼냈다. 벽안(碧眼)에 금발(金髮)을 지닌 서역(西域)의 쌍둥이 미녀가 그것이었다. 그녀들을 보자마자 철기린은 무슨 의도인지를 깨달았고, 내심을 숨기지 않았다.
이를 본 마면호는 만면에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앞으로도 총단의 신임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한편 철기린은 문이 닫히자 두려움에 떨고 있는 두 여인을 바라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후후후! 이름이 무엇이냐?"
"가, 가까이 다가오지 마세요."
"아악! 가까이 다가오면 소리를 지를 거예요."
"후후! 소리를 지르겠다고? 후후! 한번 해봐. 여긴 아무도 없어. 아무리 소리쳐도 내일 아침까지는 아무도 오지 않을 거라고. 알았어? 후후! 한번 더 묻겠다. 이름이 뭐냐?"
"사, 사라(沙羅). 사라예요. 가까이 오지 마세요."
"후후! 사라? 그렇다면 저 계집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는 철기린을 본 여인 가운데 하나는 황급히 자신의 성명을 댔다.
"유, 유라(瑜羅). 언니는 유라예요. 제발, 제발…"
"왜, 잡아먹을까 봐? 후후! 안 잡아먹을 테니 걱정 말아라."
"그, 그런데 왜 자꾸 다가오는 거지요?"
잔뜩 겁에 질린 사라의 음성은 떨리고 있었다.
중원의 북서쪽, 신강(新彊)의 한 복판에 자리잡은 탑리목분지(塔里木盆地)에는 사막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지하 수맥이 용솟음쳐 만들어진 여러 개의 녹주(綠洲 :오아시스) 또한 있다.
그러한 녹주 주위에는 의례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 가운데에는 청타족(靑駝族)이라 불리는 부족이 있다. 푸른빛이 감도는 낙타를 타고 다니는 부족이라 그런 이름이 붙었다.
청타족의 전체의 수효는 일만이 훨씬 넘지만 용사들의 수효는 불과 삼천 정도였다. 하지만 다른 부족들은 그들과 대립하는 것을 꺼렸다. 그들의 용맹이 사막제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청타족은 난폭한 부족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평화를 사랑하는 부족이었다. 지금껏 먼저 나서서 타 부족을 공격한 일은 전혀 없다는 것이 이를 반증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난폭할 때도 있다. 누구든 청타족에게 위해를 가하면 반드시 원수를 갚았다.
오래 전, 청타족이 얼마나 용맹한지 전혀 알려지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사막에서 제법 수효가 많은 세 부족의 청년들이 청타족 여인들을 납치하여 욕을 보인 후 버리는 일이 발생되었다. 그 일이 있고 며칠이 지났을 때 세 부족은 전멸한 상태로 발견되었다.
그들은 각기 이만이 넘는 용사들을 거느린 대부족들이었다. 그렇기에 그동안 적지 않은 횡포를 부리던 부족들이었다. 하지만 여타 부족들은 그들에게 항의조차 하지 못했다. 그랬다가 자칫 더 큰 봉변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이 어느 날 아침 완전히 멸족당한 것이다. 이일로 인하여 사막의 모든 부족들은 불과 삼천의 수효로 육만을 도륙한 청타족의 힘에 경이로움과 함께 두려움을 느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당시 청타족 족장은 말 한마디를 했다.
그런데 그 말로 인하여 청타족이 사막의 제왕이라는 것에 반문할 사람이 모두 사라진 것이다. 육만을 없애는데 동원한 인원이 삼천이 아니라 불과 육백이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일당백(一當百)을 했다는 소리였다.
이후 그 어떤 부족도 감히 청타족에게는 도발할 수 없었다. 그랬다가는 하루아침에 멸족(滅族) 당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일년 전, 한가로운 오수(午睡)를 즐기던 사라는 깨어남과 동시에 화들짝 놀랐다. 생전 처음 보는 곳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잠들었던 곳은 청타족의 파오(包)들 가운데 가장 큰 것이었다.
족장 가족만이 머물 수 있다는 특별히 백양(白羊)의 가죽으로 만든 파오의 시원한 그늘 속이었다. 사라와 유라 자매가 그곳에 있을 수 있던 이유는 사막의 사자라 불리는 청타족(靑駝族)의 족장이 부친이었기 때문이었다.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난 사라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위를 살피는 유라를 보고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렸다. 꿈인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꿈이 아니었다. 자신들이 연신 흔들거리는 마차에 태워져 있으며 밖으로 나갈 수 없도록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랜 세월 동안 단 한번도 타 부족의 공격을 받아본 적이 없던 청타족은 경계라는 것을 몰랐다. 건드리면 죽을텐데 누가 감히 도발하겠느냐는 자만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들의 맹점을 노린 자들이 있었다. 오래 전, 중원을 떠난 일단의 낭인무리들이었다. 그들은 몰성항아와 같은 절세미녀를 납치해 오면 은자 만 냥을 지급하겠다는 마면호의 약속을 믿고 먼 길을 떠난 자들이었다.
합비의 저잣거리에는 한족(漢族)들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거기엔 머리에 허연 천을 둘둘 말고 다니는 회회족(回回族), 창피한 지도 모르고 허벅지며 어깨죽지를 드러내 놓고 다니는 남만(南蠻)의 묘족(苗族), 그리고 벽안에 금발인 서역인(西域人)등 이민족들이 많이 있었다.
대부분이 교역 때문에 중원에 발을 들여놓은 상인들이었다. 그런 그들을 본 낭인들 가운데 일단의 무리들은 눈이 번쩍 뜨이는 미녀를 볼 수 있었다.
서역에서 온 상인이 데리고 온 여노(女奴)가 바로 그녀였다. 그녀는 합비성 성주에게 진상되었다. 제아무리 미녀를 구한다지만 성주는 황궁에서 임명한 관인이었다.
강호와 관은 서로 간섭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기에 그녀를 납치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직접 서역으로 가서 미녀를 납치해 오는 것이었다. 혼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다 판단한 낭인들은 무리를 지어 서역으로 향하였다.
수천 리 길을 걸어 천산(天山) 부근에 당도한 그들은 청타족 족장에게 눈을 씻고 보아야 할 정도로 아름다운 여식이 둘이나 있다는 소문을 들을 수 있었다.
그 소문을 들은 즉시 낭인들은 청타족을 찾아 사막을 헤맸다. 그리고는 결국 청타족들이 머무는 녹주에 당도할 수 있었다.
서역으로 교역을 떠나는 상인들 차림을 한 낭인들은 물건을 팔러온 척하며 기회를 노리다가 사라와 유라 자매가 있는 파오에 몽혼약을 뿌렸다. 잠시 후 깊은 잠에 취한 두 여인을 납치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사막의 사자인 자하두(紫夏斗)가 두 여식이 한꺼번에 납치 당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데 걸린 시간은 이틀이었다. 설마 누가 감히 청타족의 영역에서 그 같은 일을 저지를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냥을 나갔다 왔기 때문이었다.
주변을 샅샅이 조사하한 결과, 중원에서 온 상인들이 여식을 납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자하두는 부족의 전 용사들로 하여금 추격을 명하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하루 전에 분 모래폭풍으로 인하여 낭인들의 종적은 끊겨 있었다.
분노한 자하두는 부족의 전 용사들로 하여금 지옥 끝까지 따라가서라도 반드시 사라 자매를 찾아 오라 하였다. 하여 세인들은 전혀 모르고 있는 사실이지만 청타족 용사 삼천은 현재 중원을 샅샅이 뒤지고 있는 중이었다.
그들은 주머니 속의 송곳은 언젠가는 삐져 나온다 생각하고 있었다. 사라와 유라 자매의 미모가 워낙 빼어나기에 어느 곳에 있던 소문이 날 것이므로 그녀들의 행방을 금방 찾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한편 마면호는 낭인들이 데리고 온 자매를 보고 뛸 듯이 기뻐하였다. 몰성항아와 비견될만한 미모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청백지신임이 분명하였다. 이 정도라면 철혈화존의 총애를 유지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을 것 같았다.
하여 마면호는 은자 사만 냥을 아낌없이 지불하였다. 그러나 그 은자는 그 날로 되돌아 왔다. 그리고 사라 자매를 납치해온 낭인들의 모습을 보았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수고했다면서 술자리를 마련하였고, 술 취해 뻗어 있던 그들의 사혈(死穴)을 짚은 사람은 바로 마면호였다. 그는 시신에 화골산(化骨散)을 부어 시신조차 제대로 남기지 못하도록 하였다.
이곳으로 끌려 올 때 안대로 눈을 가린 채 끌려온 사라 자매는 자신들이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알지 못하였다. 그저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중원이라는 것만은 짐작할 수 있을 뿐이었다. 시중을 들어주던 시비가 중원 여인이기 때문이었다.
이날 이후 사라 자매는 합비 무천장 후원에 위치한 금지(禁地)에서 단 한 발짝도 밖으로 향할 수 없었다.
오늘 시중을 들어주면서도 늘 감시를 게을리 하지 않던 시비가 저잣거리 구경을 가자며 화려한 화복(華服)을 가져왔을 때만 하여도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다.
그 동안 한번도 거짓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여 다소 들뜬 마음으로 의복을 갈아입으면서 연신 미소짓던 그녀들이었다.
덧붙이는 글 | [알리는 말씀]
오늘부터는 메인화면 좌측에 자리한 "오마이뉴스 시리즈"에서도
<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를 감상하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회색바탕)
일일이 찾아다니시던 불편을 덜어드리게 되어 매우 기쁘군요.
이 자리를 빌어 배려해주신 편집부에 감사를 드립니다.
독자 여러분!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십시오.*^^*
제갈천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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