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기술자격법 제2조는 기술자격자를 '기술사, 기능장, 기사, 산업기사, 기능사'로 한정하고 있다. 또한 동법 제4조의2는 국가기술자격시험에 합격하지 않은 사람은 '기술자격의 명칭'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이렇게 법률로서 기술자의 자격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는 이유는, 이론과 실무에서 철저하게 검증받지 못한 엔지니어가 실수하면 가스충전소 폭발사고, 성수대교 붕괴사고,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처럼 국민은 생명과 재산을 잃을 것이고, 대외적으로도 기술신뢰도가 추락을 하여 국가의 이미지가 바닥으로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기술자격제도'를 사수해야할 정부가 아이러니하게도 앞장 서서 기술계(기술사, 기사, 산업기사)와 기능계(기능장, 기능사) 가릴 것 없이, 일정한 학력과 경력을 가진 사람에게는 자격시험 대신에 경력서류 몇 장으로 갈음을 하여, 국가기술자격을 공짜로 주고 있다. 기술자격증을 남발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국가기술자격법 제4조에 규정된 '기술자격을 취득하고자 하는 자는 기술자격검정에 합격하여야 한다'라는 조항과, 제4조의2에 규정된 '기술자격을 취득하지 아니한 자는 '기술자격의 명칭'을 사용하지 못한다'라는 조항, 그리고 제10조에 규정된 '정부는 기술자격취득자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 유지와 그 취업 및 신분보장에 관하여 필요한 시책을 강구하고, 이들을 우대하여야 한다'라는 조항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이 된다.
이처럼 정부가 기술계에는 '인정기술자제도'를, 기능계에는 '양성수첩제도'를 1995년도부터 시행함에 따라 '인정기술사, 인정기사, 인정기능사'가 대량양산이 되었는데, 건설분야만을 예를 들어보더라도, 당초 21만 명이었던 정부공인기술자가 어느날 갑자기 19만명씩이나 늘어나 40만 명이 되는 등 배 정도가 증가되었다.
이는 건설산업연구원의 연구결과가 우리나라의 건설기술자는 21만 명이 적정선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19만 명은 일자리조차 없다는 얘기가 된다. 이러한 결과는 '수요와 공급의 균형체계'를 붕괴시켜 사주들은 엄청난 이득을 취하게 만든 반면, 기술자들은 연봉 대폭락과 실업자 생활로 연결이 됐다고 한다. 건설분야 외에 기계, 전자, 전기 등 다른 기술 분야도 마찬가지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술자들은 오늘날 이공계 및 공고 기피현상의 중심에 '인정기술자제도와 양성수첩제도'가 자리하고 있다고 말한다. 무용지물로 전락한 '국가기술자격제도' 무엇이 문제인지 집중취재했다.
'국가기술자격제도'의 실태
'국가기술자격제도'의 역사는 지금부터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정희 군사정권 초기인 지난 1963년, 국가경제개발 5개년 사업의 일환으로 기술사법이 제정·공포가 되어 기술사를 배출하면서부터, 그리고 정부 주무부처별로 각종법령에 의거 기사, 산업기사, 기능장, 기능사를 배출하면서부터다.
정부주무부처별로 산재해 있던 기술자격제도를 통합시키고, 기술자격을 기술계(기술사, 기사, 산업기사)와 기능계(기능장, 기능사)의 2계열로 분류를 한 것은 지난 1973년, 중·화학공업육성 등 고도산업화정책의 추진일환으로 '국가기술자격법'이 제정·공포가 되면서부터다.
기술자격제도가 시행된 이래 지금까지 배출된 국가기술자격자는, 기술사 2만4657명, 기사 64만7855명, 산업기사 91만5743명, 기능장 5512명, 기능사 540만1091명, 기능사보 37만1541명으로 총 736만6409명(2001년 말 기준)의 국가기술자격자가 배출이 되었다. 지금도 기계, 전자, 전기, 화학, 건축, 토목, 환경, 자동차, 선박, 항공, 환경 등 이공계 전 분야에서 거의 해마다 배출이 되고 있다.
오늘날 우리나라가 이만큼 발전한 것은, 이들 국가기술자격자들이 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중반까지 열사의 나라 중동과 기타나라에서 열심히 땀 흘려 일하면서 선진기술을 습득한 덕분인데, 이들이 벌어들인 외화와 이들의 기술력이 밑바탕이 되어 우리나라는 중진국으로 진입을 할 수가 있었다. 당시에 정부도 이들을 '조국근대화의 기수'라 호칭하였고, 우대정책도 시행을 하여, 이들은 타 직종 종사자보다 월등히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었다.
일례로 당시 공대나 공고는 선망의 대상이었는데, 공대는 상위권 학생들이 몰리는 등 경쟁률이 최고였고, 공고 또한 명문고와 쌍벽을 이룰 정도로 상위권 중학생들이 입학을 한 것이 사실이다. 정부의 기술자에 대한 우대정책이 효과를 보았던 셈이다.
하지만 요즘은 정부의 기술자에 대한 '천대정책'으로 사정이 확 바뀌었다. 기술자가 되면 처우는 고사하고 생계를 우려해야할 지경에 이르면서 '이공계 기피와 공고 기피'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공대나 공고를 나와 기술자가 되면 장가가기도 힘들어 총각으로 늙어죽을 판인데, 학생들이 장학금 몇 푼과 군대 혜택에 현혹이 되어 이공계를 선택하겠느냐는 것이 기술자들의 주장이다.
'기술인정제도'때문에 붕괴가 된 국가기술자격제도
'국가기술자격제도'가 실질적으로 붕괴가 된 이면에는 '대책 없는 정부정책'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엔지니어들은 입을 모은다.
기술사, 기능장, 기사, 기능사, 감리원 등 모든 기술인들의 권익옹호를 위해서 지난해 12월 결성했다는 기술인연대(www.engforum.or.kr)와 관련업계 등에 따르면 변호사, 의사, 공인회계사, 약사, 법무사, 세무사 등 전문직은 물론이고 간호사, 물리치료사, 공인중개사, 영양사, 미용사 등의 직종도 자격증이 없으면 해당 업무를 할 수 없도록 법제화되어 있다.
이처럼 업무영역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은 검증 받지 않은 무자격자가 업무를 수행할 경우 사고우려가 있어서이고, 사고 외에 직업의 가치하락으로 자격자들의 생존권이 위협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술자의 경우 업무영역을 법제화 해 주기는커녕 일정한 학력과 경력이 있으면 누구나 기술자업무를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현행 '인정기술사제도, 인정기술자제도, 양성수첩제도'가 바로 그것이다. 먼저 '인정기술사제도'를 살펴보면, 인정기술사의 한 영역인 '특급기술자'의 경우 일정한 경력(대졸 12년, 전문대졸 14년, 고졸 18년)을 쌓으면 정부가 기술사와 똑같은 자격을 공짜로 부여하고 있다. 또 기술사조차 10년 이상 경력이 있어야 주어지는 '수석감리사자격'의 경우도 일정한 경력(대졸 22년, 전문대졸 25년, 고졸 28년)만 있으면 자격이 공짜로 주어진다.
'인정기술자제도'도 마찬가지인데, 기사조차 7년 경력(산업기사는 10년)이 있어야 주어지는 자격인 '고급기술자'의 경우도 일정한 경력(대졸9년, 전문대졸12년, 고졸15년)만 있으면 자격이 공짜로 주어진다. 대졸 기사자격 7년 경력자나 대졸 무자격 9년 경력자는 똑같이 '고급기술자'로 진입을 할 수가 있는데, 그 차이는 2년 경력인 셈이다. 공부 안 해도 2년만 기다리면 자동적으로 '고급기술자'가 되는 것이다.
'양성수첩제도(소위 기술인정자격수첩제도)’는 공고출신들 대다수가 진출을 하는 기능계에 적용을 시키고 있는 제도인데, 기능계의 '인정기술자제도'인 셈이다. 예컨대 기능사와 동등한 자격인 '인정기능사'의 경우 일정한 학력이나 경력(대졸자는 경력조차 필요 없음, 전문대졸 3년, 학력불문 5년 경력자)만 있으면 자격이 공짜로 주어진다. 다만 인정기술자제도와 차이가 있다면 그래도 3일간 교육을 시킨 후 양성수첩을 준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기술사는 2만5000여명에서 10만 여명(정식기술사의 4배)으로 늘어났고, 기사, 산업기사, 기능사 또한 배 이상(추정치, 정부의 통계조차 없음)으로 늘어나 '기술자 과잉공급시대'를 맞고 있다. 문제는 경력을 입증하는 서류만 제출하면 실력과 무관하게 '인정기술사, 인정기사, 인정기능사' 자격이 주어지고, 이들이 전문지식과 기술이 요구되는 기술자 업무를 대신하고 있다는 점이다.
반면 어렵게 자격시험에 합격한 상당수 정식기술자들은 연봉 대폭락과 일거리가 없어서 생활고에 시달리는 신세가 되었다.
기술인연대(www.engforum.or.kr)의 김승호 운영진은 "정부가 특정 이익단체들의 입장만을 받아들여 무자격자들에게 '인정기술사, 인정기사, 인정기능사' 자격을 공짜로 부여하면서 비리와 부실 등 각종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며 "이공계 및 공고 기피현상의 원인제공자는 기술인정제도를 만든 '건교부나 산자부 등 정부당국자'들이다"라고 말했다.
1년간의 실업자 생활 끝에 간신히 최근 연봉 2100만원에 취직을 했다는 대졸출신에 기사자격자이고 경력 16년차인 김모씨(43)는 "나는 기사자격증을 쓸모가 없어서 장롱에 처박아 두었다. 이번에 취직을 할 때도 기사자격증이 아닌 16년 경력으로 취직을 했다"며 "이렇게 사회적으로 인정도 못 받는 자격증이라면 차라리 '국가기술자격제도'를 폐지하는 것이 옳다. 그리고 연봉 2100만원은 내가 10년 전에 이미 받았던 연봉이다"고 하소연했다.
사주들만 배부르게 하는 '기술인정제도'
기술자들은 '기술인정제도'를 건설기술관리법(95년 도입), 전력기술관리법(96년 도입), 정보통신사업법(98년 도입), 엔지니어링기술진흥법(92년 도입) 등 각종 법률에 도입을 하면서부터 기술자 문제가 불거졌다고 입을 모은다. 연봉대폭락은 고사하고, 취직을 하기조차 어려워 졌다는 것이다.
업체에서 기술자를 채용하는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업체가 면허를 받거나 존속을 하기 위해서는 일정 기술자를 의무적으로 보유(건축공사업체 경우 : 인정기술자 5인 이상 의무보유)를 해야 하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실질적으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것은 업체의 '기술자 의무보유 조항'인데, 과거에는 기술사, 기사, 기능사 등 정식기술자를 의무적으로 보유를 하도록 제한을 하였으나, 지금은 무자격자인 '인정기술자'가 그 자리를 대신 할 수 있도록 허용을 하고 있다.
이러하기에 중소업체에서는 정식기술자보다 상대적으로 임금이 훨씬 싼 인정기술자를 채용을 한다는 것이다. 정식기술자를 채용을 하는 경우는 난이도가 높은 공사 등 업무를 수주할 때인데, 그때만 임시적으로 채용을 해서 쓰고, 당해 업무가 끝나면 즉시 해고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 때문에 정식기술자들은 취직조차 할 수가 없는 것이고, 반면 사주들은 이득을 얻는다는 것이다.
기술인연대(www.engforum.or.kr)의 박성규 운영진은 "일부 몰지각한 사주들은 길거리에 널린 게 기술자이니 마음만 먹으면 기술자는 하루에 한 트럭 이상도 뽑을 수가 있다고 자랑을 하면서 직원들을 협박하는 사례도 있다"며 "인정기술자들도 10년 전에 이미 받았던 연봉조차 못 받고 있어서 피해를 보기는 마찬가지라며 '기술인정제도'로 재미를 보는 사람은 오직 사주들뿐이다"고 분노를 표시했다.
공고출신에 공조냉동기계기능사이고 경력 5년차로서 모 업체에 근무를 하고 있다는 노모씨(25)는 "한달 생활비도 안 되는 월급을 올려달라고 회사에 건의를 하려고 해도, '양성수첩제도' 때문에 널린 게 인정기능사여서 회사가 해고를 할까봐 겁나서 말도 못 꺼내고 있다"며 "아직 나이가 있으니까, 요리학원을 다녀서 요리사로 직업을 바꾸던지 아니면 대학을 가서 기술자가 아닌 다른 길을 가고 싶다"고 말했다.
기술인정제도 폐지와 '업무영역 법제화'가 해결책
기술자들은 현재의 '기술자 문제'는 정부가 지난 95년, 부족한 기술자를 보충하기 위해 탁상행정식으로 '기술인정제도'를 도입하면서부터 불거진 문제라고 지적한다. 기술자가 부족하다면 시험을 쉽게 출제하는 방식으로 충원을 할 일이지 강냉이 뻥튀기 하듯이 대량양산해서야 되겠느냐는 것이 기술자들의 항변이다.
따라서 '기술자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격도 안 되는 사람이 마구잡이식으로 받을 수 있는 현행 '기술인정제도'를 폐지하고, '기술자의 업무영역'을 명확히 하기 위한 법개정이 시급하다는 것이 기술자들의 주장이다. 이 두 가지 문제가 선행이 되어야 '국가기술자격제도'가 비로소 제자리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기술인연대의 한 관계자는 "기술사의 업무영역은 기술사법에 설정을 하고, 기사나 기능사 등의 업무영역은 관련이 있는 개별법(건설기술관리법 등)에 설정을 하면 된다"며 "기술자에 대한 우대정책으로 기술경쟁력을 키우고 있는 중국을 물리치기 위해서라도 정부는 조속히 '기술자 문제'를 해결해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모 업체에서 현장소장을 하고 있다는 기술사 송모(44)씨는 "현재의 '기술인정제도'는 경력이 있는 변호사 사무장에게 변호사자격을 주고, 간호사에게 의사자격을 주고, 약국근무자에게 약사자격을 주고, 복덕방 아저씨에게 공인중개사자격을 주고, 주방아줌마에게 요리사자격을 주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며 "정부가 진정으로 이공계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다면, 장학금이나 군대혜택과 같은 유인성정책에 앞서 이공계 및 공고 기피현상이 왜 발생하고 있는지 기술자들에게 물어 보는 등 그 원인부터 철저히 분석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덧붙이는 글 | 손방현 기자는 기술사 출신으로 현재 '건강한 사회를 위한 기술인연대' 대표 운영진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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