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37

슬픈 옛 이야기(2)

등록 2003.02.03 13:51수정 2003.02.03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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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남겨진 월궁옥녀는 정말 오사를 고아 먹이면 사랑하는 호문경의 정력이 절륜해질까 싶어 눈빛을 반짝이고 있었다.

둘은 유난히도 금슬(琴瑟)이 좋았다. 하지만 요즘엔 약한 정력 때문에 월궁옥녀가 가끔 짜증을 부릴 때도 있었다. 운우지락(雲雨之樂)이 무엇인지, 뼈가 타고 살이 녹아 내리는 듯한 쾌감이 무엇인지를 몰랐다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원래 호문경은 정력이 약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신혼 초기에는 매일 밤 월궁옥녀를 끝없는 황홀의 몰아가곤 했다. 이때 너무 과도한 방사를 하였기에 급격히 정력이 약해진 것이다.

이후에 보약을 먹을 때만이라도 방사를 삼갔어야 하였다. 하지만 너무도 아름다운 월궁옥녀를 곁에 두고 어찌 열혈청년이 이를 참을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보약이 아무런 효과를 못 냈던 것이고, 정력은 나날이 약해진 것이다.

과도한 방사로 고갈된 정(精)이 완전히 원상복구 되려면 적어도 사흘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수태시킬 능력이 생기는 것이다. 따라서 정이 원상복구 되기 전에 이를 또 다시 방출시킨다면 아무리 많은 방사를 치러도 수태를 못 시키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이 상태에서 또 다시 무리를 하게 되면 원정(元精)에 손상이 입혀진다. 이렇게 되면 몸이 약해져 병을 얻게 되고, 심할 경우 신지까지 이상해 질 수 있다.

둘은 너무 금슬이 좋았기에 혼례를 올린 이후 이틀을 그냥 잔 적이 없었다. 하여 아직 수태 소식이 없었던 것이고 나날이 정력이 약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월궁옥녀는 오사를 보면서 계속하여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사랑하는 낭군에게 그것만 고아 먹이면 또 다시 황홀경을 경험할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며칠이 지났다. 곤륜신의는 물론 호문경 역시 돌아올 때가 되었는데도 돌아오지 않자 걱정이 된 월궁옥녀는 노심초사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다.


한편, 망태 속에 들어 있던 오사는 며칠 동안이나 선혈 맛을 보지 못하여 몹시도 배가 고팠다. 그래서 망태에 뚫려 있는 작은 구멍에 대가리를 박은 채 이리저리 꿈틀거렸다.

사람들은 대가리보다 작은 구멍으로는 뱀이 빠져나갈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사람의 생각일 뿐이다.

뱀이 쥐를 잡아먹을 때 아가리가 얼마나 크게 벌어지는가를 보면 경이롭기까지 하다. 마찬가지로 뱀은 스스로 머리의 크기를 조절할 능력이 있다. 그것은 몸통 역시 마찬가지이다.

월궁옥녀가 깊은 잠에 빠져들 무렵 오사는 대가리보다도 작은 구멍을 통하여 빠져 나오는데 성공하였다. 이리저리 꿈틀거리던 놈은 잠든 그녀에게 다가갔고, 잠시 후 콧구멍을 통하여 그녀의 폐 속으로 들어가는데 성공하였다.

꿈결이었지만 이상한 느낌에 눈을 뜬 월궁옥녀는 무언가가 코 속을 파고든다는 느낌에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그리곤 떨어져 있는 망태를 보는 즉시 어찌된 영문인지를 깨닫고 비명을 계속하여 질러댔다.

"아아악! 아아아악! 사, 살려줘요! 사람 살려요! 아아아악!"

하지만 어쩌랴! 오사는 이미 코 속으로 완전히 사라진 후였고, 뭔가가 몸 속에서 꿈틀거리는 끔찍한 느낌이 있을 뿐이었다.

괴이한 느낌과 통증은 그리 길지 않았다. 잠시 후,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자 비로소 비명을 멈춘 그녀는 겁에 질린 표정을 짓고 있는 부친을 보고 울음을 터뜨렸다.

"흐흑! 아, 아버지! 나, 이제 어떻게 해요? 저, 저기에 있던 배, 뱀이… 흐흐흑! 아버지, 어떻게 해요? 뱀이 내 코로 들어갔어요."

이 순간 곤륜신의는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번 폐 속으로 들어간 오사는 숙주(宿主)가 죽기 전에는 결코 나오는 법이 없다. 그 속에서 죽지 않을 정도로 피를 빨아먹으면 더 없이 안락한데 굳이 나올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 월궁옥녀가 죽기 전에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오사가 폐 속으로 파고든 것은 결코 병이 아니다. 그렇기에 웬만한 의술로는 꺼낼 방법이 없다. 방법이 있다면 부술(剖術)로 가슴을 가르고 폐까지 가른 후 끄집어내는 방법뿐일 것이다.

하지만 곤륜신의는 부술을 몰랐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부술에 대한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월궁옥녀 뿐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부술은 완전하지 않았다. 설사 완전하다 하더라도 제 몸에 부술을 시술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 이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곤륜신의는 탕약과 침구에 이어 부술까지 완전하게 알게되면 의학을 집대성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오래 전에 월궁옥녀로 하여금 부술을 배우도록 하였다. 그때는 목재충과 호문경을 제자로 받아들이기 전이었다.

당시 천하에는 부술에 대한 일가견이 있는 의원이 있었다. 노군서(盧 瑞)라는 인물이었다.

배가 아프다는 환자는 배를 갈라봐야 한다 하였고, 가슴이 답답하다면 가슴을 가르자 하였다. 당연히 머리가 아프다면 머리를 갈라봐야 한다던 그는 미친 의원이라는 뜻으로 광의(狂醫)라는 외호로 불리던 인물이었다.

월궁옥녀가 돌아 온 것은 그에게서 부술을 익히던 중 너무도 늙고 노쇠한 그가 세상을 뜬 탓이다. 하여 그녀의 부술이 완전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이곳으로 돌아 온 후 어떻게 하면 부술을 완성시킬 수 있을까를 고심하던 중이었다.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곤륜신의는 서서히 겁에 질리기 시작하였다. 하나뿐인 여식의 몸 속에는 흉측한 뱀이 꿈틀거리고 있다. 그런데 꺼낼 방법은 전무하였기 때문이다.

이 상태대로라면 여식은 결코 천수(天壽)를 누릴 수 없을 것이다. 매일 소량이기는 하지만 선혈을 빨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길어야 수년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아비로서 사랑하는 여식이 하루 하루 쇠약해져 가는 것을 어찌 바라만 보고 있을 수 있겠는가! 그것은 거의 고문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기에 겁에 질린 표정으로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흐흑! 아버지, 어떻게 해요? 흐흐흑!"
"휴우…!"

월궁옥녀는 겁에 질려 울었고, 곤륜신의는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 없음에 긴 한숨만을 내쉬었을 뿐이다. 이날, 저잣거리에서 생일선물을 사 가지고 돌아온 호문경 역시 청천벽력과 같은 이야기를 듣고 한숨만 쉬었을 뿐이다.

석달 후, 월궁항아는 갑작스런 구역질에 잔뜩 겁에 질렸다. 폐 속의 오사 때문인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오사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놀랍게도 수태를 한 것이다.

생일 선물을 사기 위하여 하산하였다 돌아온 이후 며칠 동안이나 겁에 질려 있던 월궁옥녀를 다독이느라 합방을 하지 않은 결과 거의 고갈 상태였던 호문경의 원정이 완전 복구된 탓이다.

일곱 달이 흐른 후 월궁옥녀는 옥동자를 순산하였다. 불행 중 정말 다행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은 뒤인지라 곤륜신의와 남의는 진심으로 기뻐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곤륜신의는 오랫동안 잊고 있던 사실을 떠올리고는 황급히 여식의 처소를 찾았다.

"허험! 어미야, 안에 있느냐?"
"어머! 아버지세요? 잠, 잠깐만요."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있던 월궁옥녀는 얼른 의복을 추스렸다. 아무리 부친이라고는 하지만 민망스럽게 젖통을 꺼내놓고 대면할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드, 들어오세요."
"어서 오십시오, 장인어른!"

젖을 빠는 자식을 보며 한없이 흐뭇해하던 호문경과 옥란희는 곤륜신의에게 가볍게 예를 갖췄다.

"허험! 어디 보자, 우리 손주! 허허! 녀석, 참 기특도 하지. 어쩌면 칭얼대지도 않고… 허허! 필시 이 다음에 큰 인물이 될 것이야. 아암! 그렇고 말고, 누구의 손자인데…"
"어머! 아버지, 아기를 그렇게 흔드시면…"

고사리 같은 손으로 자신의 수염을 잡아당기는 손자를 보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위 아래로 어르던 곤륜신의는 얼른 멈췄다.

"허허! 알았다. 알았어."
"어머, 죄송해요. 소녀가 그만…"

"허허! 아니다. 아니야. 할애비가 너무 세게 흔들었지? 다음부터는 조심하마. 이 녀석이 너무 귀여워서 그만… 그나저나 어미야, 네게 물을 것이 있구나."
"예에! 말씀만 하세요."

"네가 어렸을 때 이 아비가 줬던 옥잠 기억하지? 봉황이 새겨져 있고 금강석이 박힌 것 말이다. 왜 그걸 안 하느냐? 그게 통 안 보이더구나. 그걸 어디에 두었느냐?"

곤륜신의의 말에 월궁옥녀의 안색이 돌변하였다.

"오, 옥잠이요?"
"그래, 어디에 두었느냐? 잃어버린 것은 아니겠지?"

"그, 그게…"
"설마, 그걸 잃어버렸단 말이냐?"

이때 곁에 있던 호문경이 입을 열었다.

"어, 당신에게 그런 것도 있었소? 장인어른 말씀을 들어보니 꽤 좋은 것인 모양인데 왜 한번도 안 했소? 어디 한번 봅시다."
"그, 그게…"

갑작스런 요구에 당황한 월궁옥녀는 잠시 입을 열 수 없었다. 부친만 있는 자리라면 솔직하게 이야기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곁에 호문경이 있기에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대사형이라고는 하지만 낭군이 아닌 다른 사내에게 그것을 주었다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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