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고주몽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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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03.02.03 23:38수정 2003.02.08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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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하늘 아래로 혹은 말을 타고 혹은 등짐을 지고 혹은 수레 곁에 선 일단의 무리들이 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말을 탄 사람들은 칼을 차고 활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들을 따르는 무리들은 대부분 평민의 복색 이었다. 그들 눈앞에 일단의 기마대가 버티고 있는 것은 진작에 눈에 띄었으나 마치 무시하고 지나가겠다는 듯이 행렬은 일렬로 길게 뻗어나갔다.

마침내 서로 얼굴을 알아볼 수 있는 거리로 좁혀지자 비류와 온조는 앞을 막고 있는 장수와 병사들을 지지 않겠다는 듯이 노려보았다. 분명 이런 일이 있으리라 예상은 했었지만 생각보다 따르는 자들이 많아 늦어진 것이 결국 추격병의 제지를 일찍 받게된 요인이었다. 신하 오간이 나서 장수를 꾸짖어 말했다.


"우린 갈 길을 가는 것뿐이다. 너희들이 대체 뭐인데 감히 우리 앞길을 막는 것이냐!"

장수는 칼자루에 손을 대며 크게 말했다.

"난 태자의 명을 받아 너희들을 되돌려 보내러 온 것이다. 너희는 이곳에서 한 발자국도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비류와 온조는 조용히 칼집에 손을 갔다 대었다. 상대는 어림잡아 백여기 쯤 되어 보이는 병력이었고 비류와 온조의 무리는 수는 훨씬 많으나 무장한 자는 매우 적었다. 더구나 어떻게 저들을 이기고 간다고 해도 그만큼 늦어지기에 뒤에 따라오는 보병들에게 따라잡힐지도 모를 일이었다. 장수가 칼을 뽑아들고 막 돌진명령을 내리려는 찰나 화살 한 대가 멀어와 그의 칼날을 쳐서 떨어트렸다.

"멈춰라! 왕의 행차이시다!"


멀리서 바삐 말을 몰며 숨이 넘어갈 듯이 전령이 달려오며 소리치고 있었다. 그 누구의 눈에도 왕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거리에서도 활을 쏘아 맞추는 신기야말로 바로 추모왕이 왔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려주고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땅바닥에 엎드려 왕을 기다렸다.

희끗희끗한 수염을 흩날리며 주몽은 말을 몰아 비류와 온조에게로 달려갔다. 왕의 행차라고 하지만 수행장수 몇 명만 대동하고 급히 달려오는 길이라 주몽은 경황이 없었다.


"잠깐 기다려라. 내 너희들에게 할 말이 있다."

주몽은 아들인 비류와 온조에게 다가가며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몽에게는 왕에게서 느끼는 위압감이나 거만함은 없었다. 오히려 삶에 지치고 고달파하는 중늙은이의 모습만이 두드러져 보일 뿐이었다.

"비록 너희들이 태자를 피해 내 곁을 떠난다고 해도 미움을 가지지 않겠다는 약조를 해주어라."

비류가 붉게 충혈된 눈을 들어 보이며 대꾸했다.

"아버지가 저희를 내치셨습니다. 그것으로 그만입니다. 저희로서는 어떤 바램도 원한도 없습니다."

주몽은 씁쓸하게 웃으며 활을 들어 화살을 잰 후 시위를 당겼다. 좌중이 주몽의 느닷없는 행동에 크게 긴장하기 시작했다.

덧붙이는 글 | '고주몽'에서는 고구려의 시조 고주몽을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해 볼 생각입니다.

덧붙이는 글 '고주몽'에서는 고구려의 시조 고주몽을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해 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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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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