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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졸업식을 며칠 앞둔 2월 초순 어느 일요일 오후, 박군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선생님 바쁘세요?”
“아니.”
“그럼 잠깐 기다리세요. 아버님을 바꿔 드리겠습니다.”
나는 박군을 2, 3학년 두 해 동안 담임을 했다. 그는 2년 연속 학급 반장이었고 자기가 꼭 진학하려던 대학에 합격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제 자식놈이 합격했습니다.”
“아닙니다. 본인이 열심히 공부했기 때문입니다.”
“아닙니다. 다 선생님 덕분입니다. 오늘 마침 제가 쉬는 날이라 선생님을 모시고 싶습니다. 지금 곧 제 차로 모시러 갈 테니 사모님과 함께 외출할 준비를 해주십시오.”
미처 거절할 새도 없이 전화가 끊겼다. 아버지는 개인 택시 기사였다. 자식의 대학 합격이 얼마나 기쁘고 감사했으면 그럴까?
거절하려고 수화기를 들려다가 그만 두었다. 사양이 지나치면 결례가 될 게다. 아내에게 동행을 제의했으나 이런 일에는 일체 따라 나서는 일이 없었기에 그날도 혼자 다녀오라고 했다. 잠시 후에 차 경적이 울렸다.
담 밖으로 내려다보니 부자가 택시에서 내려 내 집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모범택시의 미터기에는 '쉬는 차'라는 덮개가 씌어져 있었다.
아버지는 모범 운전 기사복 대신에 신사복 차림이었는데 당신 결혼식 때 입었던 옷인 양, 영 몸에 맞지 않았다. 아버지는 고개 숙여 깎듯이 인사를 한 후, 정중히 당신 차 뒷자리로 안내했다.
“선생님, 좋은 음식점 아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오늘은 어디든지 모시겠습니다.”
하지만 나는 가능한 값싸고 간소한 곳으로 가고 싶었다. 동료들끼리 별 부담 없이 가끔 찾았던 서오릉 들머리 돼지 갈비집이 떠올랐다.
“서오릉이 좋겠습니다.”
“네? 호텔 뷔페나 유명 음식점을 말씀만 주십시오.”
“아닙니다. 전 거기가 좋습니다.”
“정히 그렇다면 말씀대로 모시겠습니다.”
아버지는 핸들을 잡은 채 유쾌하게 이런 저런 얘기를 했다. 서오릉을 그냥 지나쳤다. 내가 얼른 이곳이라고 차가 멈출 것을 일렀지만 막무가내였다.
“오늘같이 좋은 날, 아무렴 선생님을 돼지갈비로야 대접할 수 있습니까?”
아버지는 서오릉에서 조금 떨어진 숲 속의 어느 고급 갈비집으로 안내했다.
“충청도 촌놈이 서울 와서 출세했지 뭡니까? 하, 이 놈이 대학에 붙다니. 선생님, 정말 너무 기쁘고 감사합니다. 요즘 손님들의 화제는 온통 대학 입시 얘기뿐입니다. 손님들이 당신 자식이 대입에 실패해서 걱정이라는 얘기를 들으면 우리 집 놈은 붙었다는 얘기를 차마 못하고 그저 혼자 하늘 보고 웃지요.”
식사 중 아버지는 당신이 살아온 가난했던 시절을 얘기하면서 평생 소원을 이룬 양 감격해 했다. 그러면서 아들에게 선생님의 은혜는 끝까지 잊어서는 안 된다는 당부를 거듭했다.
“요즘 핸들을 잡으면 절로 힘이 솟구칩니다.”
비록 기사 생활은 고달프지만, 천금보다 귀한 자식놈이 대학에 합격했기에 더 없이 감격스럽다. 그래서 오늘은 담임 선생을 모시고 흡족히 대접하고 싶었던 아버지의 소박한 마음이었으리라.
두어 시간 후 집으로 돌아왔다. 차를 돌릴 수 없는 내 집 앞 좁은 골목길을 끝까지 올라왔다. 내가 길이 좁아 차를 돌릴 수 없으니 그만 돌려 가라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선생님, 염려 마십시오. 제 직업이 택시 기사 아닙니까? 그대로 후진하면 됩니다.”
아버지는 굳이 차에서 내려 케이크 상자를 들고 내 집 계단까지 따라 왔다. 차나 한 잔 들고 가라는 나의 제의를 늦은 시간이라면서 끝내 뿌리치고는 어둠 짙은 골목길로 멀어져 갔다.
그 광경을 우리 집 식구 - 아내와 딸, 아들 - 가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기쁘겠어요.”
“그럼, 그 녀석은 이 다음에 틀림없이 성공할 거요. 지도력도 있고 인성도 좋거든.”
나는 흐뭇한 얼굴로 아내에게 대꾸했다.
그 날은 참 뿌듯했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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