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새-설에 방안 창틀에서 잡은 참새 한마리. 하도 빨라 언제 날아갈지 몰라 근접 촬영이 참 어렵습니다.김규환
행랑채에 가서 바지게에 얹힌 싸리나무로 만든 발채를 떼어 짝 벌린 발채 입을 닫아 고정하고 새로운 일에 착수한다. 마침 해질녘이어서 얼른 서두르지 않으면 안된다. 흙이 드러나게 마당 한 켠을 대강 쓸어두고 발채를 갖다 놓는다. 한 사람은 이곳저곳에 나뒹구는 큼지막한 돌을 예닐곱 개 주워와 발채 위에 올려 놓는다. 집 주변에 없으면 얼른 고샅으로 나가 찾든가 담장 위에서라도 몰래 빼와야 된다.
묵직하게 잘 눌러 졌다 싶으면 발채와 땅 사이에 한 자(尺) 가웃 되는 튼튼한 막대기로 발채를 괸다. 그 막대기에 지게에서 풀어 둔 ‘띠꾸리’(지게에 올린 짐을 묶는 단단한 줄)를 몇 개 이어서 행랑채 아랫방 문고리에 임시 고정한다. 이제 남은 일은 발채 밑에 씨나락을 두어 줌 가져와 오복이 뿌려주면 된다.
준비를 마치고 형제들은 줄을 방안으로 끌어와 바깥 동정을 살펴야 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한 사람은 줄을 꼭 잡고 있어야 한다. 만약 한 번이라도 줄을 그냥 놔버렸다간 낭패를 보기 때문이다. 이런 실패를 잘 아는 터라 이중장치를 해야 안심이다. 하나는 방 안쪽에 큰 못이나 돌저귀에 걸어 매고 제일 끝부분을 사람이 잡고 있다가 여차하면 끝부분을 당기면서 놔버리면 중간 고리도 풀리게 말이다.
인기척이나 큰소리도 낼 수 없다. 손으로 침을 발라 자그맣게 구멍을 두어 개 내놓고 하염없이 기다리는 게 일이다. 참새들이 방앗간 주위를 그냥 지나가는 법이 없는 것처럼 언제 냄새를 맡았는지 다섯 마리가 마당에 살포시 내려 앉는다.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살피고 다시 나뭇가지 위로 날아간다. 몇 번 씩이나 오르락내리락 이 짓을 해댄다.
방안에선 소곤소곤 아쉬움을 달랜다. 발채 위엔 눈발이 가늘어졌어도 마른 눈이라 제법 쌓이고 있다.
“아따, 저것이 쬐끔만 더 뽀짝거리면 될 걸 가지고 그냥 날라가 버리는 구만~”
“큰 소리로 말하지 마봐야!”
“곧 옹께 지달려봐라. 지가 안오고 못배긴당께~”
하나 먹어보려 했더니 식어 빠진 고구마에 물이 잔뜩 빠져 나와있다. 물고무마를 삶았으니 당연한 이치다. 그래도 삶아두면 꿀보다 더 달작지근하고 끈기가 있어 밤고구마에 비견할 바가 아니다. 두어 개를 먹어도 침이 마르지를 않으니 노소 가리지 않고 찾는 게 물고구마였다.
바깥에 바람이 한 번 쓸고 지나가더니 해가 무등산 쪽을 향해 거의 떨어지려 하고 있다. 따뜻한 방에 한 시간 여 있다 보니 하품도 곳곳에서 기어 나온다. 막내는 아예 등을 붙이고 이불 덮고 누워 있다. 순간,
“툭!”
뭔가 묵직한 것이 떨어진가 싶더니 발채가 내려 앉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자세히 보기도 힘들었다. 동생들이 못미더워 끈을 마지막까지 놓지 않고 손에 잡고 있던 형이 줄을 잡아 당기자 나무를 채버리고 땅에 내려앉아 버린 것이다. 돌이 잔뜩 쌓여 있던 터라 그 무게에 살짝 건드려 주기만 하면 주위를 사정없이 눌러버린 원리를 이용한 사냥놀이다.
“야~ 잡았다!”
“정말인가, 형?”
“막내야 얼른 나와봐라.”
형이 뛰어나가고 나도 뒤따라 나가봤다. 발채 아래 참새 두 마리가 먹을 걸 탐내다 즉사하고 말았다.
“야 대단한데. 형 언제 봤어?
“내가 꼭 온다고 했잖냐.”
밥 하시는 어머니 불 때드리는 것도 잊은 채 우린 참새에 푹 빠져 있었다. 두 마리를 누구 코에 붙일까마는 어른들은 ‘참새 한 마리와 쇠고기 한 근을 바꾸지 않는다’고 하셨다. 어렸을 적 한 점 먹어봤던 터라 맛은 자세히 떠오르지 않으나 3년 전 먹었던 산비둘기 맛 보다 낫지 않을까?
이 한 점 먹으려고 고생고생 한 아이들은 그 땐 무척 행복했다. 한겨울에도 형들에서 형들로 전해진 겨울철 잊을 수 없는 추억이요, 놀이요, 문화를 온 몸으로 느끼면서 살았기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