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돕는 것도 잊고 참새 잡던 시절

참새 한 마리와 쇠고기 한 근을 바꾸지 않는다

등록 2003.02.05 15:30수정 2003.02.05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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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새 발자국-크기와 발자국 모양이 영락없는 참새 것이네요

새 발자국-크기와 발자국 모양이 영락없는 참새 것이네요 ⓒ 김규환

한겨울 아이들이 나무를 하러 가기도 그렇고 마을 앞 개울가에서 썰매를 지치기도 힘들게 눈이 많이 오거나 더 추운 날이라고 방구석에서만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이들은 각자 집에서 물고구마를 삶아 꽁꽁 언 싱건지(동치미)를 꺼내 깍두기 마냥 썰어 베어 먹으면서 새로운 궁리를 하게 마련이다.


집에서 마당을 쓸다가 멈추고 문득 생각 나는 것이 있다. 어차피 눈이 계속 내릴 양이면 마당은 오후 늦게나 다음날 쓸기로 미루고 새총을 만드는 일에 착수하는 게 어울린다는 결론을 내린다.

근처 대밭가에 가서 연필자루 두께의 ‘Y’자 형태로 잘 뻗은 나무를 하나 골라와 곱게 다듬는다. 고무줄 중 노랗고 질긴 신축성이 좋은 낭창낭창한 ‘느라줄’을 길게 묶고 가운데에 돌이나 사금파리를 장전할 가죽을 사각으로 한 조각 떼어 붙인다. 가죽을 붙이고는 나무 양 옆에 단단히 고정을 하는데 균형을 잘 잡아줘야 쏠 때 손을 때리는 법 없이 정확히 명중 하게 된다.

길게 늘여봤다 튕겨봤다 하면서 몇 번의 시험을 통해 줄이 끊어지지 않는지, 탄력은 적당한지, 정확히 목표물을 조종하는지를 가늠하고 참새 몇 마리를 잡을까 미리 짐작하기도 한다.

옷을 단단히 갖춰 입고 나설 채비를 한다. 이젠 동네 고샅을 쓸고 다니며 감나무에 붙은 새란 새는 죄다 우리 차지다라며 들떠 있다. 바닥이 미끄럽고 눈이 고무신발에 들어와 ‘나이롱’(나일론) 양말을 적셔도 소용없다. 미리 준비한 돌멩이와 사금파리를 다 쓴 공책 한 장을 뜯어 빠지지 않게 꼬깃꼬깃 싸고 왼쪽 ‘개비’(호주머니)에 쑤셔 넣고 재장전이 쉽도록 준비 하였다.

살포시 걸음걸이를 해야 작은 소리에도 소스라치게 놀라 참새가 도망가는 일이 없다. 일단은 최대한 접근을 해서 담당에 빗대어 몸을 숨기고는 새총을 힘껏 당겨 오른 손을 놓으면 “툭-“하고 날아가 그 중 한마리 어깨쭉지를 맞추면 다행이고 그렇지 않으면 감나무 가지를 맞추기 쉽상이다.


골목길에서 안되면 마을 어귀를 돌고 이왕 나간 김에 마을 뒤에 붙은 대밭 가상을 모두 훑고 지나간다. 이렇게 해봤자 잡은 참새는 기껏해야 오후 내내 돌아다녀도 겨우 한두 마리에 불과하다. 운이 좋아야 한 마리라도 잡는다.

이렇게 추운날 방구석에 눌러 앉아 배깔고 누워 도란도란 얘기 나누는 것이 여러모로 좋을 성 싶지만 아이들은 꼭 그렇지 만은 않다. 방에 있으면 좀이 쑤시고 온 몸이 근질근질하여 잠시도 참지 못하여 뭔가를 하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하는 습성이 몸에 밴 까닭이다.


명중률을 알만한 아이들이라 몇 번 해보고는 이내 집으로 돌아와 버리는 게 상책이다. 집으로 돌아왔다고 여기서 끝낼 놈들이 아니다. 아직 단정하기에 이르다. 한번 지켜보자.

a 참새-설에 방안 창틀에서 잡은 참새 한마리. 하도 빨라 언제 날아갈지 몰라 근접 촬영이 참 어렵습니다.

참새-설에 방안 창틀에서 잡은 참새 한마리. 하도 빨라 언제 날아갈지 몰라 근접 촬영이 참 어렵습니다. ⓒ 김규환

행랑채에 가서 바지게에 얹힌 싸리나무로 만든 발채를 떼어 짝 벌린 발채 입을 닫아 고정하고 새로운 일에 착수한다. 마침 해질녘이어서 얼른 서두르지 않으면 안된다. 흙이 드러나게 마당 한 켠을 대강 쓸어두고 발채를 갖다 놓는다. 한 사람은 이곳저곳에 나뒹구는 큼지막한 돌을 예닐곱 개 주워와 발채 위에 올려 놓는다. 집 주변에 없으면 얼른 고샅으로 나가 찾든가 담장 위에서라도 몰래 빼와야 된다.

묵직하게 잘 눌러 졌다 싶으면 발채와 땅 사이에 한 자(尺) 가웃 되는 튼튼한 막대기로 발채를 괸다. 그 막대기에 지게에서 풀어 둔 ‘띠꾸리’(지게에 올린 짐을 묶는 단단한 줄)를 몇 개 이어서 행랑채 아랫방 문고리에 임시 고정한다. 이제 남은 일은 발채 밑에 씨나락을 두어 줌 가져와 오복이 뿌려주면 된다.

준비를 마치고 형제들은 줄을 방안으로 끌어와 바깥 동정을 살펴야 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한 사람은 줄을 꼭 잡고 있어야 한다. 만약 한 번이라도 줄을 그냥 놔버렸다간 낭패를 보기 때문이다. 이런 실패를 잘 아는 터라 이중장치를 해야 안심이다. 하나는 방 안쪽에 큰 못이나 돌저귀에 걸어 매고 제일 끝부분을 사람이 잡고 있다가 여차하면 끝부분을 당기면서 놔버리면 중간 고리도 풀리게 말이다.

인기척이나 큰소리도 낼 수 없다. 손으로 침을 발라 자그맣게 구멍을 두어 개 내놓고 하염없이 기다리는 게 일이다. 참새들이 방앗간 주위를 그냥 지나가는 법이 없는 것처럼 언제 냄새를 맡았는지 다섯 마리가 마당에 살포시 내려 앉는다.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살피고 다시 나뭇가지 위로 날아간다. 몇 번 씩이나 오르락내리락 이 짓을 해댄다.

방안에선 소곤소곤 아쉬움을 달랜다. 발채 위엔 눈발이 가늘어졌어도 마른 눈이라 제법 쌓이고 있다.

“아따, 저것이 쬐끔만 더 뽀짝거리면 될 걸 가지고 그냥 날라가 버리는 구만~”
“큰 소리로 말하지 마봐야!”
“곧 옹께 지달려봐라. 지가 안오고 못배긴당께~”

하나 먹어보려 했더니 식어 빠진 고구마에 물이 잔뜩 빠져 나와있다. 물고무마를 삶았으니 당연한 이치다. 그래도 삶아두면 꿀보다 더 달작지근하고 끈기가 있어 밤고구마에 비견할 바가 아니다. 두어 개를 먹어도 침이 마르지를 않으니 노소 가리지 않고 찾는 게 물고구마였다.

바깥에 바람이 한 번 쓸고 지나가더니 해가 무등산 쪽을 향해 거의 떨어지려 하고 있다. 따뜻한 방에 한 시간 여 있다 보니 하품도 곳곳에서 기어 나온다. 막내는 아예 등을 붙이고 이불 덮고 누워 있다. 순간,

“툭!”

뭔가 묵직한 것이 떨어진가 싶더니 발채가 내려 앉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자세히 보기도 힘들었다. 동생들이 못미더워 끈을 마지막까지 놓지 않고 손에 잡고 있던 형이 줄을 잡아 당기자 나무를 채버리고 땅에 내려앉아 버린 것이다. 돌이 잔뜩 쌓여 있던 터라 그 무게에 살짝 건드려 주기만 하면 주위를 사정없이 눌러버린 원리를 이용한 사냥놀이다.

“야~ 잡았다!”
“정말인가, 형?”
“막내야 얼른 나와봐라.”

형이 뛰어나가고 나도 뒤따라 나가봤다. 발채 아래 참새 두 마리가 먹을 걸 탐내다 즉사하고 말았다.

“야 대단한데. 형 언제 봤어?
“내가 꼭 온다고 했잖냐.”

밥 하시는 어머니 불 때드리는 것도 잊은 채 우린 참새에 푹 빠져 있었다. 두 마리를 누구 코에 붙일까마는 어른들은 ‘참새 한 마리와 쇠고기 한 근을 바꾸지 않는다’고 하셨다. 어렸을 적 한 점 먹어봤던 터라 맛은 자세히 떠오르지 않으나 3년 전 먹었던 산비둘기 맛 보다 낫지 않을까?

이 한 점 먹으려고 고생고생 한 아이들은 그 땐 무척 행복했다. 한겨울에도 형들에서 형들로 전해진 겨울철 잊을 수 없는 추억이요, 놀이요, 문화를 온 몸으로 느끼면서 살았기 때문이리라.

a 고드름

고드름 ⓒ 김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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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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