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40

슬픈 옛 이야기(5)

등록 2003.02.06 14:26수정 2003.02.06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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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와 사숙은 둘 다 너무도 심한 마음 고생을 한 결과 자신의 나이보다 적어도 이십 년은 더 늙어 보인다. 그것은 비단 외모만 그런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따라서 사부가 원수는 갚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제아무리 신단이 있다지만 고목(古木)이 꽃을 피우기는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국 자신이 나서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어찌 되었건 사부는 말이 사부이지 생명의 은인이다. 따지고 보면 남의 역시 생명의 은인이기는 마찬가지이다. 하여 한참을 고심하던 장일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이 세상에서 유대문과 왜문을 없애드리지요."
"오오! 고맙다. 고마워."

한동안 말이 없던 장일정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자 남의는 미안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런 연관도 없는 사질로 하여금 어쩌면 살인마라는 소리를 듣게될지도 모를 임무를 부여한 부담감 때문이었다.

이날 이후 남의는 더 이상 약초를 캐러 가지 않았다. 그리고 호옥혜는 더 이상 심심한 나날을 보내지 않아도 되었다. 사형이 된 장일정이 침술을 배우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늘 그의 곁에 붙어 있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 * *


"판관 나으리,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말 도둑이라니요?"
"네 이놈! 증거가 있는데도 감히 거짓말을 해?"

"나으리! 소생은 너무도 억울하옵니다. 비룡은 소생의 말입니다. 그런데 어찌 소생 더러 말 도둑이라 하십니까?"
"흥! 어림도 없는 소리. 너 같은 무지렁이가 어찌 천리준구인 대완구를 가질 수 있다는 말이냐? 헛소릴랑 그만 늘어놓고 어디에서 훔쳤는지를 이실직고하지 못할까?"


이회옥은 억울해도 너무 억울하여 모든 혈액이 끓어오르는 듯했다. 하여 그의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 있었다.

느닷없이 들이닥친 관군에 의하여 끌려온 그는 자신에게 말 도둑이라는 혐의가 씌워졌다는 것을 알고 기가 막혔다.

산해관 사람이라면 누구나 비룡이 이회옥의 소유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은 관병들도 마찬가지였다. 최근에 저잣거리로 자주 끌고 왔기 때문이었다.

그때 저잣거리를 순시하던 관병들이 비룡을 보면서 훌륭한 말이라고 극찬을 하였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말 도둑이라는 혐의를 씌우니 분통이 터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럴 때 흥분하면 자신만 손해라 생각하고 애써 심호흡을 하며 침착을 되찾았다.

"판관 나으리, 뭔가 오해가 있으신 듯합니다. 소생이 말 도둑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관병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니 그들에게 한번 물어봐 주십시오."

"호오! 그래? 네놈의 말에 추호의 거짓도 없으렷다?"
"그러하옵니다. 얼굴에 검은 점이 있는 관병이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하오니 그와 대면케 해 주십시오."

판관의 얼굴을 살핀 이회옥은 자신의 요구가 받아들여질 듯하자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사람이 살다보면 오해도 할 수 있고 잘못도 저지를 수 있다. 그렇기에 억울하기는 하지만 오해가 풀린다면 오늘의 이 소동을 깨끗이 잊겠다 마음먹었다.

'휴우…! 오늘은 정말이지 일진이 안 좋은 날인 모양이군. 재수가 없으려니까… 에이, 어제 꿈자리가 뒤숭숭하더니…'

"좋다. 네놈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대신, 네놈의 말이 거짓을 때에는 치도곤을 치를 것이니 그런 줄 알아라."
"물론이옵니다. 소생의 말에 거짓이 있다면 참수형에 처해진다 하더라도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다."

"좋다. 여봐라! 가서 관병들 가운데 얼굴에 검은 점이 있는 관병이 있거든 모두 불러들여라"
"존명!"

명을 받든 관리가 밖으로 향하자 이회옥은 이제 되었다는 표정을 지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순간 관아 뒤쪽에서 이회옥을 바라보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 노인이 있었다.

곰방대를 물고 있는 노인은 무천장에서 비룡을 은자 세 냥에 사겠다던 바로 그였다. 그는 무림천자성에서 천리준구를 수집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문에 의하면 운남성의 어떤 무천장은 한 마리 천리준구 때문에 장주가 바뀌었다고 한다. 산적들을 토벌하던 중 한 마리 천리준구를 노획하게 되었는데 무천장주가 총단으로 보내지 않고 본인이 타고 다녔다고 한다.

이를 본 부장주가 총단으로 서찰을 보냈다. 즉각 천하의 모든 무천장들을 암행하는 무천순찰(武天巡察)이 파견되었고, 장주는 쫓겨났다. 대신 보고서를 보냈던 부장주가 장주로 승차(陞差)하였다는 것이다. 이는 무림천자성 총단 소속 정의수호대원만 무적검과 천리준구로 무장하여야 한다는 방침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노인은 이곳 산해관 무천장의 부장주인 혈면귀수(血面鬼手) 마욱진(馬郁秦)이었다. 이십 년 전 무림천자성에 몸담은 그는 과거에는 천하의 도박장을 전전하던 사기 도박꾼이었다.

사기 도박으로 땄던 엄청난 은자를 헌납함으로서 무림천자성에 몸담게 된 그는 타고난 간사함과 도박으로 딴 무공비급 덕에 승승장구하여 부장주에 이르렀다. 그런 그에게는 불만 한 가지가 있었다. 그것은 자신이 장주가 될 자격이 충분한데도 좀처럼 승차시켜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산해관은 이민족들과 교역을 하는 상인들이 많이 드나드는 요충지이다. 따라서 이곳에서 많은 상행위가 이루어지기에 얻는 수익금이 중원의 다름 무천장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많다.

중원 각지의 무천장은 수익금 가운데 오 할은 반드시 총단으로 보내도록 되어있다. 나머지로 무천장을 유지하는데 사용하고 그래도 남는 것이 있다면 모두 장주에게 귀속되었다. 그래서 중원의 무천장 가운데 극히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장주들은 엄청난 은자를 굵어 모았다.

그것 가운데 일부는 총단 요직에 있는 자들에게 상납되었다. 일종의 자릿세인 셈이다. 그런데 산해관 무천장은 수입 전부를 장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 가운데 하나이다.

변방에 자리잡고 있기에 치안 유지를 위해서 많은 은자를 사용하여야 한다하여 배려한 것이다. 따라서 엄청난 수입을 올리는 산해관 무천장은 다른 지역과 달리 정의수호대원들이 많이 소속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풍성하였다.

현 장주인 사면호협(獅面豪俠) 여광(呂廣)이 축재(蓄財)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총단에 상납도 하지 않았다. 대신 무림의 정의를 수호하는 일에 앞장섰기에 무림천자성의 명성을 드날리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렇기에 잘리지 않고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곁에서 지켜 본 혈면귀수는 답답하기 이를 데 없었다. 자신이 장주라면 벌써 엄청난 재산을 축적했을 텐데 여광은 별다른 재산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차에 천리준구에 대한 소문을 들은 그는 산해관을 다스리는 태수(太守)를 은밀히 찾았다. 그 결과 청룡무관에 있던 이회옥이 끌려나온 것이다.

"자, 얼굴에 검은 점이 있는 관병들은 모두 왔다. 이 가운데 네가 말 주인이라고 증언해줄 관병은 누구냐?"
"음! 저기 좌측에서 여섯 번째에 있는 관병입니다."

이회옥은 집결한 이십여 관병들 가운데 청삼을 걸친 관병을 지적하였다. 그는 얼마 전 비룡을 한번 타볼 수 있겠느냐고 청룡무관으로 찾아오기까지 하였었다.

이에 이회옥은 그러라고 선선히 승낙하였다. 하지만 끝내 뜻을 이룰 수 없었다. 비룡이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안장 위에 올라앉기는 하였으나 두 번이나 낙마하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비룡이 미친 야생마처럼 길길이 날 뛰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의 좌측 눈 밑에는 어린아이 손바닥만한 검은 점이 있기에 한번만 보면 누구나 잊지 않을 그런 인상이었다. 그렇기에 한번에 알아보고 자신만만하게 그를 지적한 것이다.

"흐음! 지금 저 아이는 말 도둑이라는 혐의로 체포되어 왔다. 너는 저 아이가 말을 소유하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느냐?"
"예에…? 말이요? 어떤 말이요?"

관병은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 말이 이 소년의 것이더냐?"
"우와! 말 좋네요. 저런 말은 엄청나게 비쌀 텐데…"

판관은 자신의 물음에 대답하기는커녕 탄성만 지르는 관병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놈! 저 말이 이 소년의 것이라고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엄한 표정을 짓고 있는 판관을 본 관병은 자칫하다간 경을 칠 것이라는 판단하였는지 약간 겁먹은 표정을 지었다.

"아, 아닙니다요. 속하는 저 말을 오늘 처음 봅니다요. 이 소년도 그렇습니다요."
"흐음! 그으래? 저 말이 이 소년의 소유가 아니라는 말이지?"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요. 속하는 저 말과 소년을 오늘 처음 봅니다요. 따라서…"
"되었다. 너는 이만 가도 좋다."
"존명!"

이회옥은 관병의 엉뚱한 증언에 안색이 창백해졌다.

"아, 아저씨! 왜 그러세요? 며칠 전에도 한번 타봤으면 좋겠다고 왔었잖아요."
"어라? 내가 언제? 야, 임마! 내가 언제 그랬어? 그리고 난 말이지 말을 탈줄 몰라. 알았어? 그러니 괜히 엉뚱한 사람한테 누명 씌우려고 그러지 마. 퉤에! 말 도둑 주제에 감히 누구에게…"

"아, 아저씨! 왜 그러세요? 며칠 전에 분명히 청룡무관에 왔었잖아요. 그때 두 번이나 말에서 떨어졌었잖아요."
"이런, 미친 놈! 난 널 모른다고 했지? 괜히 엉뚱한 일에 날 끌어들이지 마라. 그렇지 않아도 요즘 피곤해 미치겠는데… 판관 나으리! 속하는 이만 물러가옵니다."

말을 마친 관병은 가볍게 포권하고는 그대로 물러갔다.

"자, 이래도 부인하겠느냐? 너의 결백을 증명해 준다던 증인은 너를 모른다고 한다. 그런데도 계속하여 부인을 하겠느냐?"
"판관 나으리! 뭔가 잘못 되었습니다. 아까 그 관병은 분명 며칠 전에 소생이 있는 청룡무관에 와서…"

"시끄럽다. 그는 모른다고 하지 않더냐? 이제 너의 결벽을 증명해 줄 증인이 없으니…"
"아닙니다. 판관 나으리, 소생의 결벽을 증명해줄 증인은 아직 많이 있습니다. 그러니 한번만 더…"
"좋다! 너의 결백을 증명할 기회를 한번 더 주지. 누가 너의 결백을 증명해 줄 수 있느냐?"

판관의 말에 이회옥은 다른 관병을 지목하였다. 그랬더니 판관은 아예 더 불러들일 사람이 있다면 모두 부르라 하였다. 이에 이회옥은 가끔 들르던 객잔 점소이부터 저잣거리에서 비룡에게 먹일 당근을 사던 상인까지 모두 아홉 명의 이름을 댔다.

반 시진 후 아홉 명의 증인들은 모두 이회옥을 처음 본다고 증언하였다. 비룡 또한 본 적이 없다고 이구동성을 하였다. 이회옥은 미치고 환장할 지경이었다. 그렇지만 처해 있는 상황은 항변조차 못할 상황이었다.

"네 이놈! 이래도 내 죄를 이실직고 못하겠느냐? 어디에서 훔쳤는지 바른대로 대지 않으면 치도곤을 당하게 될 것이다."
"나으리! 소생은 억울하옵니다."

"이런 안 되겠군. 여봐라! 저 놈이 이실직고 할 때까지 추호의 사정도 봐주지 말고 매우 쳐라!"
"예으이!"

대답과 동시에 곤장이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휘이이이익! 퍼억!
"아아아악!"

휘이이이익! 퍼어억―!
"아아아아악!"

단 두 대였건만 단말마 비명을 지르는 이회옥의 둔부에서는 선혈이 튀고 있었다. 전력을 다해 내리치고 있기 때문이었다.

"바른대로 대라! 말을 어디에서 훔쳤느냐?"
"으으으! 훔치다니요? 소생은 훔치지 않았습니다."

"흥!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군. 무엇 하느냐? 매우 쳐라!"
"예으이…!"

쐐에에에엑! 퍼어억!
"으아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던 이회옥은 혼절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이런 경험이 전무한 그로서는 지독한 통증을 맨 정신에 감내해 낼 수 없었던 것이다. 한 인간의 탐욕 때문에 무고한 소년이 치도곤을 당하는 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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