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농사꾼들의 축제 '정농회 총회'

정농회 제28차 정기 총회에 참석하고서

등록 2003.02.06 15:44수정 2003.02.06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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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든 엄마 품에서 아이가 건강하게 자랄 수 없다. 마찬가지로 땅이 병들고서야 땅의 자식인 사람들이 건강 할 수 없는 법이다. 어디 사람뿐이랴. 모든 것은 땅에서 난다. 자동차와 햄버거도 결국 땅에서 나와서 땅으로 돌아간다. 땅보다 더 소중한 게 어디 있으랴. 그럼에도 땅의 시름은 깊어만 가고 있다. 상처입고 병들어 있다. 인간 때문이다.


처음 참석한 정농회 정기 수련회

시골의 현실처럼 대부분의 회원들이 나이 드신 노인분들이다. 그러나 아무 시골에서나 쉽게 만나지는 그런 노인들은 아니다.
시골의 현실처럼 대부분의 회원들이 나이 드신 노인분들이다. 그러나 아무 시골에서나 쉽게 만나지는 그런 노인들은 아니다.전희식
상처투성이 땅을 살리는 것을 최고의 농사목표로 삼는 농사꾼들이 있다. 정농회(正農會) 회원들이다. 30년 역사다. 작년 한 여름. 100일 하고도 닷새 동안 1840km 의 국토를 걸으면서 우리쌀 살리기 운동을 펼친 단체다. 충청도 만인산 기슭에서 정농회 전체회원의 정기 총회 겸 수련회가 3일간 열렸다. 총 450여 회원 중에서 250여 회원이 참석하여 한 이불 덮고 함께 지냈다. 이 3일 동안은 신이 내게 내려 준 축복 같았다. 젊은 시절 경기도 양평이나 장흥 등지로 MT를 가서 밤새워 두런두런 모의를 꾸미던 그때의 설렘을 동반한 긴장과는 질을 달리하는 신선함과 결의가 있었다.

정농회는 하나님의 사랑을 생명의 농사로 실천하는 농민들의 모임이다. 하늘을 공경하고 사람끼리 사랑하고자 하는 진리를 농업으로 구현하고 있다. 이들은 우리나라 전 농토가 화학농업으로 치명적인 오염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데 대한 염려를 사랑으로 치유하고자 한다.
자연환경 및 생태계의 질서를 보전하는 생명농업으로 조속히 전환할 것을 바라고 유기농업을 몸소 실천함으로써 전 국민의 건강증진과 건전한 생활(사회)풍토 조성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1976년에 창설되었다.

정농회 연수회에서 내가 만난 것은 엉뚱한 감회들이다

새벽예배가 첫째 감회다.
한 시절 나는 참으로 성실하게 새벽예배를 다녔었다. 벌레만도 못한 죄인인 나를 속죄하며 내 죄를 대신 구속 하신 주님을 찬양하였었다. 이범석 장군 밑에서 독립운동을 하셨다는 목사님은 작은 체구였지만 하나님의 사도임에 한 점 모자람이 없는 분이었다. 역시 한 시절 나는 지극정성으로 새벽 예불을 다니기도 했었다. 모악산 자락 어느 작은 절과 전남 조계산 자락 큰 불보사찰에서 새벽 4시경 휘파람새의 울음소리를 자명종 삼아 잠에서 일어나 법당에 가서 정향... 계향...해탈향...하는 예불문을 외곤 했었다. 하얀 고무신에 발을 꿸 때면 얼음장에 발을 담그는 것처럼 바늘로 콕콕 쑤시는 아픈 각성이 일곤 했었다. 길게 산골짜기를 타고 퍼져가는 비익~~ 하는 휘파람새의 울음소리는 신기하게도 새벽 예불이 끝나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곤 했다.


한치영,한태주 부자의 흙피리 연주가 연수회 첫날 저녁에 있었다. 플룻소리 같기도 하고 퉁소 같기도 한 흙피리는 현존하는 악기 중에서 가장 소리가 멀리 퍼져 간다고 한다.
한치영,한태주 부자의 흙피리 연주가 연수회 첫날 저녁에 있었다. 플룻소리 같기도 하고 퉁소 같기도 한 흙피리는 현존하는 악기 중에서 가장 소리가 멀리 퍼져 간다고 한다.전희식
정농회 회원연수의 새벽예배는 세상이 잠을 깨기 시작하는 미명의 새벽에 자리에서 일어나 정갈한 뫔(몸과 마음)가짐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세상이 잠들기 시작하는 해거름에 일과를 접고 잠자리에 드는 생활을 삶의 근본으로 삼고자 하는 내 귀농 8년 체험을 새삼 확인하는 자리였다.

연수회에서 새벽예배를 인도해 주신 두 분과의 만남이 내 두 번째 감회다. 예배를 인도하신 한분은 평소 풍경소리라는 잡지를 통해 존경 해 마지않던 임낙경 목사님이셨고 다른 한분은 내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이사장님으로 계시는 경남 거창고등학교의 원경선 선생님이셨다. 정농회를 창설하신 분이고 현재 고문으로 계신다.


임낙경 목사님은 영락없는 시골 상머슴처럼 생기셨다. 남루한 잠바에 투박한 얼굴과 손. 막걸리 같으신 말투. 그러나 그 속에 담겨진 영롱한 생명의 말씀들은 새벽 우물물 한 사발을 들이키는 것처럼 투명하고 맑았다.

내가 다가가 인사를 드리자 원경선 선생님은 30년 만에 뜻하지 않은 자리에서 만난 제자를 혈육이라도 되는 듯 손을 꼭 잡고는 고인이 되신 전영창 교장선생님과의 일화들을 시작으로 아흔이 다 되신 어르신의 동화 같은 꿈까지 다 나누어 주셨다.

세 번째 만난 감회가 있다

아흔이 되시는 원경선 선생님은 수 십년 전부터 소식과 채식을 하시는것이 건강의 비결이라고 말씀 하셨다.
아흔이 되시는 원경선 선생님은 수 십년 전부터 소식과 채식을 하시는것이 건강의 비결이라고 말씀 하셨다.전희식
대부분의 정농회 회원분들이 백발이 성성하신 노인들이었는데 우리 역사를 씨줄 날줄로 엮으며 살아 온 이력을 가지신 분들이셨다.
박정희 시절 다수확 통일벼를 심지 않고 유기농을 한다고 모진 고통을 당하신 이야기. 토종 씨앗을 구하고 보존하기 위한 고군분투. 일제하 참 스승인 김교신 선생으로부터 함석헌, 유영모, 장일순으로 이어지는 우리나라 큰 스승들의 맥을 잇는 분들이셨다. 함석헌 선생님의 천안 씨알농장에 계시던 분도 만났다.

농촌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말은 잘 새겨야 할 잠언이다. 농촌에는 그린투어니 팜스테이니 하는 점령군이 들어와선 안 된다고 본다. 농사짓는 농민이 살아야 한다. 지금의 농사는 우려할 만한 몇 가지 특징을 갖는다.

생물 다양성을 교란시키는 농업, 화학농이 범람하고 있다. 시설이윤형 농업도 활개를 친다. 비료와 농약과 중장비가 엄청나게 투입되는 농업으로 줄달음치고 있다. 그게 살길이라고 부르짖는다. 따라서 에너지 다투입 농법이 기승을 부린다.

정농회 수련회를 마치며 내가 정리하는 바른 농사와 바른 농민의 덕목이 있다. 노년에 조용한 시골에서 농사나 짓겠다는 도시인들도 새기면 좋을 일이다.

사람으로서 농민이 지켜야 할 첫째 덕목은 지혜와 지식이다. 1년간의 계절을 고려해서 작물의 적기를 잘 확인하고 각종의 작물에 맞는 토양을 구별하며, 더욱이 수해나 가뭄 드는 해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예상하여 미리 그 대책을 새울 수 있는 지혜를 말한다.

두 번째 덕목은 힘과 용기다

자발적 청빈을 즐거이 맞을 용기. 더위와 추위에 지치지 않고 일 할 수 있는 힘. 눈보라와 비바람도 기꺼이 내공을 쌓은 교재로 삼는 담대함이다.

마지막 셋째는 어진 마음이다. 힘과 용기는 어진 마음과 함께 하지 않으면 폭력이 된다. 소와 돼지 등 가축을 가족처럼 돌보고 작물을 잘 가꾸며 보이지 않는 미생물과 들의 산짐승과 산의 날짐승까지 내 몸처럼 어울려 사는 어진 마음 말이다. 홍수나 태풍. 해충으로부터 이들을 보호해야 한다. 사람과의 소통은 두말 하면 잔소리다.

자연생태계의 일부가 되어 순환의 어떤 단계에도 독극물을 투입하지 않으며 강제된 농업 즉 비닐하우스를 쳐서 겨울에 수박과 딸기를 만든다든가 하는 돈벌이 농업으로부터 발을 씻는 일이 올바른 농민이 되는 첫 단추다. 소비의 식탐에 생산의 리듬을 억지로 맞출 일이 아니다. 자연의 섭리에 따른 생산리듬에 소비의 리듬을 맞출 것을 당당히 요구하는 농민. 이것이 정농의 농법이리라.

나의 올 겨울농사는 정농회 연수회로부터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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