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현장 약육강식의 정글 돼서는 안된다

[인터뷰]고입 선발고사 저지를 위해 총력 매진하겠다

등록 2003.02.06 17:40수정 2003.02.14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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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입 선발고사 저지를 위해 8일간의 농성을 진행해 온 전교조 전남지부가 지난 2월 3일 농성을 풀었다. 이들은 설날인 1일, 전남도교육청 소회의실에서 합동으로 상을 차리고 조상에 차례를 올렸다. 가족들로부터 도교육청 농성장에서 세배를 주고 받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a 박세철 전교조 전남지부 부지부장

박세철 전교조 전남지부 부지부장 ⓒ 한재희

농성을 풀게된 이유에 대해 박세철(47) 부지부장은 "2월 4일부터 학교의 개학이 시작되기 때문에 부득이 농성을 일단 끝내고 장기전에 돌입하기로 결의하였다"고 말하고 "고입 선발 고사 도입은 학생ㆍ교사ㆍ학부모들에게 이중고만 안겨주고 학교 교육의 비정상적 운영을 야기시킬 뿐 고차적 학력 향상에는 별로 도움이 안되기 때문에 조속한 시일 내에 철폐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압도적인 여론의 지지를 받아 교육부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순천, 목포, 여수 지역의 고교 평준화가 수포로 돌아갈 경우, 기만적이고 무능하며 반 개혁적인 김장환 교육감 퇴진 운동을 포함하여 지속적이고 강경한 반대 투쟁을 전개하겠다"고 경고하였다.

다음은 이번 농성을 주도한 전교조 전남지부 박세철 부지부장과의 인터뷰 내용이다.

-전교조 전남지부가 선발고사에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학생들을 입시 지옥에 빠뜨려 심각한 고통을 안겨줄 것이며 인성 교육과 질 높은 교육이 불가능해 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는 교육감과 교육 철학이 다르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며 성공하려고 남을 짓밟기보다는 먼저 인간이 되라고 가르치는 것이 진정한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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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재희

내신뿐만 아니라 선발고사 시험 준비까지 해야 하는 이중고로 아이들은 독서나 문화 체험, 봉사 활동 등을 통한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지 못하고 한낱 점수 기계로 전락하여 삭막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또한 먹고살기도 힘든 가난한 농어촌의 학부모들의 사교육비 부담이 커지고 자녀 교육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하고 초ㆍ중학교의 교육과정 운영이 엉망이 되고 창의력, 통찰력, 문제 해결력 등 고등 정신 기능의 연마가 소홀히 되어 교육의 질이 떨어 질 것이 분명하다.

교육과정 운영 면에서, 그 동안 교육 개혁 차원에서 교육 당국이 강력히 추진해 왔던 인성 교육이나 특기 적성 교육, 특별 활동, 체험 위주 학습 활동, 봉사 활동, 예체능 교과가 유명무실하게 될 것이며 대신 불법 보충 수업, 강제 자율 학습이 기승을 부릴 것이다.

수업 방식에 있어서도, 입시에 대비한 점수따기 문제 풀이 수업 방식으로 되돌아가고 교사들은 매를 들고 학원 강사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교육 당국이 그토록 강조해 왔던 자기주도적 학습이나 토론식 수업, 탐구식 수업 등 다양하고 창의적인 교수ㆍ학습 방법은 교실에서 사라질 것이다."


-도교육청은 주로 학생들의 기초 학습 능력이 부진하기 때문에 고입선발고사를 도입한다고 하는데 이에 대한 전교조 전남지부의 좀 더 구체적인 입장과 대안은 무엇인가?
"내신만으로 입시를 치르는 광역시나 3개 도는 선발고사를 병행하는 시ㆍ도보다 학력이 낮은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지역의 교육 행정가들은 정책 판단 능력이 없어서 선발고사 도입을 금지시키는 것이 아니다. 하급 학교 교육의 정상화라는 더 큰 정책 목표를 위해서 다소 문제가 있더라도 그런 방향으로 밀고 가는 것이다. 그리고 입학 시험 치른다고 학생들의 학력이 크게 향상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보다 근본적인 진단과 처방이 필요하다.

a 전남도교육청 농성중 설을 맞이하여 농성장을 찾아 온 자녀들로부터 세배를 받고 있다.

전남도교육청 농성중 설을 맞이하여 농성장을 찾아 온 자녀들로부터 세배를 받고 있다. ⓒ 전교조 전남지부

전남 학생들의 학력이 낮은 근본 원인은 고입선발고사를 치르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학력 우수 학생들의 유출 때문이라고 본다. 이 지역의 사회 경제적 여건이 낙후하여 인구 유출이 심각하게 이루어지고 있고, 특히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거나 학력이 높은 학생들이 초등학교 때부터 대부분 도시로 유학을 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다른 학생들도 덩달아 전학을 가게 되고 따라서 학교는 공동화되어 가고 교육 여건은 날로 악화되는 빈곤의 악순환을 되풀이하고 있다. 교사의 자질과 열정에는 근본적으로 큰 차이가 없으며 근무 여건이 열악하기 때문에 탈출 유혹을 강하게 느끼는 점이 문제다.


따라서 도교육청은 괜히 마른 행주 쥐어짜듯이 학생들과 교사들만 쥐어짜지 말고 일찍이 우리가 제안했고 지금 도교육청이 추진하고 있는 '농어촌교육발전특별법'의 입법을 전 도민과 함께 강력히 추진하는 일에 주력해야 한다고 본다. 교육감은 법안에 담겨 있는 농어촌 학생 대입 특별 전형 비율의 5%로 확대, 농어촌 소규모 학교 교사 증원을 비롯한 농어촌 학교의 교육 여건 개선 등이 반드시 실현되도록 직책을 걸고 연내에 반드시 관철시켜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떠나가는 농어촌'을 '돌아오는 농어촌'으로 만들어야 이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된다."

-과거에는 100% 선발고사로 고등학교에 진학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3년간 내신 성적으로만 학교에 입학해 왔는데, 이번 선발고사는 내신이 70%, 선발고사가 30%로 학력 저하를 막기 위해서는 필요한 자구책이 되지 않을까? 이에 대한 전교조 전남지부의 생각은 무엇인가?
"득보다는 실이 많다고 본다. 다만 일부 학력 부진아들에게는 약간의 학습 동기 유발의 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중간 이상의 학력 우수 학생들의 고등 정신 계발에는 실패할 것이다. 기초 학력 부진아들에 대해서는 지금도 특별 보충 과정이나 부진아 지도 등이 실시되고 있고 국가 수준 성취도 평가나 일제 진단 평가 등 많은 비교 평가가 시행되고 있기 때문에 굳이 고입선발고사를 도입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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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재희

-지난해 12월 여론조사에서 대다수의 교원과 학교운영위원들이 고입선발고사 부활을 찬성한 걸로 나타났는데 전교조 전남지부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설문조사의 공정성과 신뢰성이 약하다고 본다. 우선 응답자의 85.2%가 찬성했다고 했는데 보고서에서 확인해 보면 76.1%로 나타나 있다. 그리고 설문 내용도 선발고사 도입을 기정 사실화 하는 듯한 유도성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표집에 있어서도 일반 학부모나 학생들은 아예 배제시킨 채 학교 운영위원이나 교육행정가 등 소위 여론 지도층 위주로 표집하였다. 특히 응답율이 23%(473명 회신)에 불과하여 연구로서의 최소한의 신뢰성을 잃어버린 결과를 가지고 연구자가 용역 의뢰자의 의도에 맞추어 만든 믿을 수 없는 자료라고 본다."

-고교 평준화와의 관계는 어떻게 되며 전교조 전남지부의 입장은 무엇인가?
"평준화 제도와 선발고사 전형 방법은 상호 모순되는 관계이다. 다시 말해, 평준화는 교육 기회를 평등하게 하고 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한 제도이며, 선발고사는 학생과 교사 및 학교를 한 줄로 세우기 위한 경쟁 시스템이다. 그런데 그동안 도교육청은 순천, 목포, 여수 지역 교육 주체들 및 시민들의 고교 평준화 요구가 강렬함에도 불구하고 일부 명문고 출신 여론 주도 세력들과 이해 관계가 일치하여 이를 거부해 왔으며 평준화 시행이 기정 사실화하자 선발고사로 먼저 물타기를 시도했다.

우리는 평준화가 이루어지면 선발고사 도입을 용인하겠다는 입장이다. 제도 시행 초기에는 학생 수급이 맞지 않아 내신만으로 선발 할 경우 학력이 더 우수한 도시 학생이 입시에서 탈락하여 주변 시골로 역 유학을 가야 하는 불합리한 현상이 발생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먼저 실시했던 광역시들의 사례를 보면, 2∼3년 뒤 수급이 맞아지면 선발고사를 폐지하고 내신만으로 선발하는 것이 일반적인 정책 관행이다.

따라서 우리는 평준화 지역에 한해서만 선발고사 도입을 양해하는 것이며, 조만간 폐지할 것을 천명해야 하고, 부작용을 예방할 방지 대책들을 철저히 강구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비평준화 지역에까지 선발고사를 시행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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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재희

-전교조 전남지부가 비평준화 지역에 대한 고입선발고사 도입을 굳이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비평준화 지역의 중학교들은 평준화 지역 입시 준비와 비평준화 지역 입시 명문고 진학 준비로 온통 입시 열풍에 신음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비평준화 지역의 입시 경쟁력이 약한 농어촌 소규모 고등학교들은 그렇지 않아도 지원자 부족으로 공동화되어 가고 있는데, 거기다가 입시까지 부활되어 고등학교가 서열화되면 그야말로 열등생들의 집합소가 되어 교실이 붕괴될 것이다. 그러한 결과는 도교육청이 추진하고 있는 농어촌 학교 살리기 시책과도 상반되는 것이다."

-전교조 전남지부는 앞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 갈 생각인가?
"조합원들과 보다 진지하게 토론하고 여론을 수렴하여 합리적인 대책을 강구하겠다. 지금으로서는 평준화가 이루어지게 되면 교육 주체들과 연대하여 선발고사 철폐 운동을 전개하고, 평준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시민사회단체 및 교육 주체들과 연대하여 기만적이고 무능하며 반개혁적인 교육감 퇴진 투쟁을 강력하게 추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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