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고주몽 8

등록 2003.02.10 18:20수정 2003.02.10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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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제대로 좀 하지 못하겠느냐! 사슴을 벌판으로 몰아야지 숲으로 몰면 어떡하란 말이냐! 에이, 머저리 같은 것들!"

화가 난 대소왕자의 비위를 맞추느라 다른 왕자들은 몰이꾼들을 더욱 심하게 다그쳤다. 대소왕자의 눈도장을 받기 위해 모여든 귀족들 역시 비위를 맞추느라 제대로 사냥을 할 수 없었다.


반면 주몽은 화살 8대로 사슴 세 마리와 멧돼지 한 마리를 잡는 수확을 거두고 있었다. 주몽이 잡은 짐승들은 오이가 데리고 온 몰이꾼들이 따로 갈무리해 두었다.

"이 정도면 엄청난 수확입니다."

오이는 주몽의 실력에 감탄해 마지않았다. 활솜씨를 빼면 부족한 점이 많아 보이는 청년이라고 여기긴 했지만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마음속으로 오이는 점차 주몽에 대한 흠모를 가지게 되었다.

"저기 큰 멧돼지가 갑니다! 위험합니다."

몰이꾼 하나가 소리치는 곳에는 커다란 멧돼지가 필사적으로 도망가는 마리가 탄 말을 쫓고 있었다. 잘못하여 마리가 멧돼지를 섣불리 건드린 모양이었다. 주몽은 활을 들어 멧산돼지를 겨냥해 쏘았다. 활은 멧돼지의 잔등에 꽂혔고 멧돼지는 주몽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조심하시오!"

주몽은 말을 달려 숲속으로 멧돼지를 유인했다. 수중에 남은 화살은 한 대 뿐이라서 주몽은 더욱 집중을 해 멧돼지를 노렸다. 멧돼지가 거의 말 뒷다리에 근접할 지경에 이르자 주몽은 힘껏 당겨놓았던 시위를 놓았다.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멧돼지는 나뒹굴었다.


주몽은 말에서 내려 완전히 숨이 끊긴 멧돼지를 살펴보았다. 그때 주위가 소란해지며 몰이꾼들이 징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놈들아! 숲으로 몰면 안 된다고 하질 않았느냐!"

대소왕자의 목소리였다. 주몽은 괜히 마주치기가 싫어 멧돼지를 놔둔 채로 서둘러 말에 올라 가버리려고 했지만 이미 다른 왕자들이 도착한 뒤였다.

"우와! 이 멧돼지 굉장한데! 네가 잡은 거냐?"

주몽은 말을 타고 점점 다가오는 대소왕자를 보며 왕자들에게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허! 이거 주몽 아니냐? 네가 이 쓸데없는 몰이꾼들 백명보다 낫구나! 아까 내가 쏜 화살이 주몽의 몰이 덕분에 이놈에게 맞은 게로구나! 뭣들 하느냐! 이 멧돼지를 실어라!"

주몽을 보며 멈칫멈칫하던 몰이꾼들은 대소왕자의 불호령에 멧돼지에 손을 대었다. 주몽이 몰이꾼들 앞을 가로막으며 대소왕자에게 따졌다.

"뭔가 잘못 아신 듯 싶습니다. 이 멧돼지는 제가 잡은 것입니다."
"뭐야? 이 놈 봐라......"

얼굴이 시뻘개진 대소왕자가 말 위에서 활로 주몽의 머리를 후려쳤다.

"저 놈이 날 능멸하며 거짓으로 자기가 잡은 사냥감이라 우기는구나. 저런 큰 멧돼지가 네 놈의 활질 따위에 죽을 성싶으냐?"

주몽 또한 지지 않고 맞섰다.

"분명 이 멧돼지는 제가 잡은 것입니다!"
"이...... 이놈이! 여봐라! 저놈을 나무에 묶어둬라! 벌로 사냥이 끝난 후에 풀어줄 것이다!"

대소의 좌우에 있던 병사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앙상한 나뭇가지를 드러내놓은 나무둥치에 주몽을 묶었다. 주몽은 모욕감으로 두 눈이 이글거렸다.

"가자!"

묶인 주몽을 뒤로하고 대소왕자 일행은 다른 사냥감을 쫓아 떠나버렸다. 묶여있는 주몽의 위로는 어디선가 모여든 까마귀 떼가 처연히 한 두 마리씩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주몽이 홧김에 발로 둥치를 차자 까마귀 떼는 푸드덕 날아갔다가 다시 나뭇가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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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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