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문 옆 솔바람 교실(임간교실)최성수
나는 그 판자에 기대어 누나네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후의 햇살은 나른하게 내 몸으로 내려쬐고 있었고, 교실 창 너머로 수업을 하는 선생님의 목소리는 햇살보다도 더 나직하게 내 귀에 들려왔다. 그 바람에 나는 깜빡 잠이 들고 말았다. 얼마나 그렇게 잠에 빠져 있었을까, 내 머리통 위의 창문에서 우렁우렁한 소리가 들려왔다.
"너 왜 여기서 자고 있니?"
선 잠 깬 눈으로 올려다보니, 거기에는 누나네 담임 선생님의 커다란 눈망울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니, 누나네 반 학생들 모두가 창문 너머로 고개를 내밀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얼굴을 붉힌 채 머리만 긁적이고 말았다. 지금은 번듯한 양옥으로 지어진, 그 시절 누나네 교실 자리를 보면 나는 자꾸 해바라기를 하고 졸던 그 날이 떠오른다.
또 학교 창고도 잊을 수 없다. 어느 날이던가, 수업이 끝난 오후, 우연히 창고 곁을 지나다가 문이 열린 것을 보게 되었다. 학교 창고에는 무엇이 보관되어 있을까 호기심이 생긴 나는 조금 열린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온갖 물품과 함께 거기에는 우리가 배급받는 가루 우유가 포대째 놓여 있었다. 그 중 하나는 뜯긴 채였다.
나는 배급받던 가루 우유의 그 달착지근하고 비릿하고 고소한 맛을 떠올렸는데, 그러자 입 안에 저절로 침이 고였다. 나는 얼른 포대를 열고 손으로 우유를 몇 움큼 퍼 입안에 넣었다.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얼굴이 홧홧하게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나는 누가 볼세라 얼른 창고를 벗어났는데, 급하게 먹느라 그랬는지 그만 가루 우유가 목구멍을 막아버려 갑작스런 기침이 터져나왔다. 한번 시작한 기침은 좀체 멈출 줄 몰랐고, 나는 입안의 가루 우유를 다 뿜어내며 쪼그리고 앉아 기침을 토해내야 했다.
그러는 중에도 혹시 다른 사람들에게 들킬까 두려운 마음에 안절부절 해야 했다. 기침이 멈추고 나니 이번엔 입 천정에 가루 우유가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바람에, 때가 꼬질꼬질한 손가락을 넣어 긁어내야 했다. 지금도 가루로 된 유제품을 보면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또 한 가지 기억은 급식 빵에 대한 것이다. 점심 대신 나누어주던 급식 빵은 제법 큼직해서 허기를 채우기에 충분했다. 삼교시 수업 시간쯤이면 선생님께서는 급식 빵을 손수레에 실어올 사람을 지명하곤 했다. 대개는 당번을 시키기 마련이지만, 때로는 당번과 함께 지원자를 더 뽑기도 했다.
"오늘 빵 실어 올 사람?"
선생님의 질문이 떨어지기 무섭게 우리들은 팔이 찢어져라 치켜올리며 소리를 지르곤 했다.
"저요, 저요."
그러면 선생님은 그 중 몇 몇을 지명하여 그날치 급식 빵을 실어오게 했다. 학교에서 조금 떨어진 안흥 시장 차부에 리어카를 끌고 가서 그날치 급식 빵을 실어오는 것이 담당자들의 일이었는데, 그 일에 서로 나선 것은 당번을 하면 빵을 하나 더 주기 때문이었다.
속부터 파먹고, 딱딱한 껍질은 제일 나중에 마치 굴처럼 만들어 먹던 그 구수하던 옥수수빵. 나는 지금도 그 빵에 대한 기억을 잊지 못해 가끔 빵집에서 옥수수 빵을 사다 먹곤 한다.
나는 그런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안흥 초등학교를 4년간 다녔다. 오 학년 때 서울로 전학을 하게 된 때문이다. 그래서 정식으로 안흥 초등학교 졸업장은 없지만, 서울에서 다닌 초등학교의 기억보다 안흥 초등학교의 기억이 더 생생하다.
서울에서 다닌 초등학교의 교가는 기억조차 가물가물하지만, 지금도 "산 높고 물 맑은 우리 안흥은/예로부터 인물이 출중하도다/배우는 무리야 분발하여라/독립의 종소리 우렁차도다"하는 창가조의 안흥 초등학교 교가는 생생하게 기억한다.
이제는 내 사촌과 일가 친척, 동창의 아이들이 다니는 안흥 초등학교. 그때보다 건물은 더 새 것으로 지어졌지만, 아이들은 더 줄어 한 학년이 한 반, 한 반은 20명도 채 되지 않는, 그래서 전교생이라야 백 여 명 남짓인 기억 속의 그 학교.
솔바람 교실이라 이름 붙여진 임간 교실과, 지금은 학교 앞길이 포장되는 바람에 멋 없이 방음벽이 들어섰지만, 봄이면 조팝나무 꽃 하얗게 피어나던 그 안흥 초등학교를 나는 고향에 갈 때면 가끔 훑어보곤 한다. 퇴비장이 있던 곳에 들어선 자작나무 둘러친 테니스장과 올망졸망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교정, 눈이 부시게 넓고 흰 겨울 운동장이 현실의 내 앞에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