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달 뜨모 싹싹 빌어주께"

<내 추억 속의 그 이름 50>딱지치기와 제기차기

등록 2003.02.12 15:04수정 2003.02.12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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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제기차기는 땡겨울 우리들에게 일정한 운동을 시켜주는 좋은 놀이였다

제기차기는 땡겨울 우리들에게 일정한 운동을 시켜주는 좋은 놀이였다 ⓒ 강원도

"니 와 능구리(능구렁이) 담 넘어가는 소리로 하노?"
"뭐라카노. 내가 운제(언제) 능구리 담 넘어가는 소리를 했노?"
"니 와 열아홉에서 슬쩍 서른으로 넘어가노?"
"뭐라꼬. 에이~ 니 때문에 죽어뿟다 아이가"


설이 지나고 정월 대보름이 다가오면 우리 마을 아이들은 들마당에 모여 딱지치기와 제기차기를 주로 했다. 딱지치기는 손놀림을 잘해야 하는데 비해 제기차기는 발놀림을 잘해야 했다. 딱지치기는 상대편의 딱지를 쳐서 따먹는 놀이였고 제기차기는 누가 제기를 많이 차느냐에 따라 승패를 결정지었다.

딱지는 주로 비료부대나 헌 달력, 헌 책 등으로 누구나 쉽게 만들었다. 딱지의 크기와 굵기도 가지가지였다. 딱지는 어떤 재료를 쓰느냐에 따라 왕딱지, 게딱지, 코딱지 등으로 불리워졌다. 그 중 왕딱지는 마분지 같이 두꺼운 종이로 만들어 젖 먹던 힘까지 다해서 세게 쳐도 좀처럼 뒤집어지지 않았다.

"체~ 코따가리(코딱지) 만한 게 감히 왕에게 도전하다니, 에라이~"
"니 너무한다"
"와?"
"비료푸대로 가 만든 그 비니루(비닐) 딱지는 잘못된 거 아이가"
"그라모 니도 퍼뜩 가서 비료푸대로 딱지로 만들모 될 꺼 아이가"

딱지치기는 처음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진 아이가 먼저 땅바닥에 자기의 딱지를 놓아야 한다. 그러면 이긴 아이가 자기의 딱지로 상대방의 딱지를 힘껏 내리쳐서 그 딱지가 뒤집히면 따먹는 놀이다. 또 진 아이는 계속해서 자기의 딱지를 땅바닥에 놓아야 한다. 하지만 딱지가 뒤집어지지 않으면 딱지를 치는 순서가 뒤바뀐다.

그렇게 딱지치기를 오래 하다 보면 팔이 제법 아팠다. 그리고 때가 시커멓게 낀 동상 걸린 손에서는 생살이 터서 피가 종종 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어스럼이 지고 오슬오슬 추워질 때까지 딱치치기를 했다. 또 상대편의 딱지를 모두 딴 그날은 저녁때가 되어도 배가 고픈 줄도 몰랐다.


하지만 제기는 만들기가 제법 어려웠다. 제기는 일단 엽전이나 가운데 구멍이 뚫린 동전이 있어야 했다. 그래서 우리들은 가까운 고물상에 가서 주인 몰래 엽전처럼 생긴 그 동그란 철 조각을 몇 개 훔쳐오기도 했다. 하지만 제기를 만드는 재료 중 가장 좋은 것은 뭐니뭐니 해도 엽전이었다.

당시 우리 마을에는 '상평통보'라고 한문으로 새겨진 그런 엽전이 제법 많았다. 그 엽전이 제일 처음 어디서 누가 가지고 왔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마을 골목길을 가다보면 간혹 엽전이 눈에 띄었다. 또 엽전을 주운 그날은 누구나 금 덩어리라도 주운 것처럼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좋아했다.


"너거 집에는 요소 비료 푸대도 하나 없나?"
"또 머슨 트집이고?"
"누가 종이로 제기로 만든다 카더노?"
"우짤끼고"

우리는 대부분 제기를 만들 때 당시 흔했던 비닐부대인 요소비료 부대를 사용했다. 하지만 그런 비닐부대가 없는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종이로 제기를 만들기도 했다. 제기를 만들 때는 우선 비닐에 엽전을 올려놓고 적당한 크기로 자른 뒤 비닐 가운데 엽전 속의 사각구멍 크기로 뚫는다. 그런 다음 엽전 바깥 원을 중심축으로 비닐을 갈기갈기 찢어 엽전 속으로 집어넣고 아랫부분을 고무줄로 묶으면 그만이었다.

당시 우리 마을 아이들은 대부분 까만 고무신을 신고 다녔다. 그 까만 타이아표 통고무신을 신고 제기를 차다 보면 간혹 신발이 벗겨지기도 했고 고무신과 발 사이에 제기가 끼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는 아예 고무신을 볏짚이나 새끼줄로 단단하게 묶은 뒤 제기차기를 했다.

제기 차기에는 발 들고차기와 양발차기, 외발차기가 있었다. 발 들고차기는 한쪽 발을 땅에 대지 않고 공중에서만 계속 제기를 차면서 노는 놀이였다. 양발차기는 제기를 양쪽 발로 번갈아 차는 놀이였고, 외발차기는 발을 땅에 대고 한쪽 발로 계속해서 제기를 차는 놀이였다.

당시 우리 마을에서 가장 많이 했던 제기차기는 발 들고차기와 외발차기였다. 발 들고차기는 제법 나이가 많은 마을 형님들이 주로 했고 우리는 외발차기를 주로 했다. 마을 가시나들도 들마당 한 귀퉁에서 제기차기를 했다. 마을 가시나들은 제기를 발등 위에 올려놓고 공처럼 통통통 튕기며 놀았다.

"옴마야~"
"와? 와 그라노?"
"내 제기가 도랑에 빠져뿟다, 우짜꼬"
"오데? 에이~ 하필이모 얼음 밑에 빠잘 끼(빠뜨릴 것이) 뭐꼬"
"좀 건지 도"
"건지주모 우짤낀데?"
"보름날 달 뜨모 싹싹 빌어주께"
"뭐로?"
"니캉 내캉 잘 되구로"
"가시나~"

그날, 마을 앞 도랑으로 내려간 나는 찌지직 얼음 깨지는 소리를 들으며 제기가 빠진 곳으로 살며시 다가섰다. 그리고 제기가 빠진 물 속으로 손을 넣는 순간 철퍼덕 하는 소리와 동시에 '메거지'를 잡고 말았다. '메거지'란 말은 우리 마을에서 쓰는 말로 무슨 구덩이나 물속에 빠졌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메기를 잡는다, 라는 말에서 비롯되었다.

"옴마야~ 저거로 우짜노"
"가시나 니 때문에 신세 조짓뿟다. 아나, 그 잘난 니 제기"
"미... 미안해서 우짜꼬"
"괘않타, 보름달 뜨모 메거지나 안 잡구로 싹싹 좀 빌어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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