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정권 비호가 꽃동네 망쳤다"

[격정 인터뷰] 꽃동네 개혁 외치는 '재야 원로' 이관복씨

등록 2003.02.14 09:43수정 2003.02.15 11:51
0
원고료로 응원
"꽃동네 이대로는 안됩니다.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정권 등 역대 대통령의 비호가 오 신부를 주민 위에 군림하도록 만들고 또 꽃동네를 타락시켰어요."

a 이관복 씨(72)"얻어 먹는 사람이 도와주는 사람 보다 더 부자고 그 위에 군림한다면?"

이관복 씨(72)"얻어 먹는 사람이 도와주는 사람 보다 더 부자고 그 위에 군림한다면?" ⓒ 심규상

이관복(72·충북 음성군 금왕읍 용계리)씨. 꽃동네와 불과 수 km에 위치한 지근거리에서 평생을 살며 오웅진 신부의 '처음과 현재'를 자신의 손금보듯 보아온 이씨의 첫 마디는 거칠었다. 인터뷰 내내 '범죄소굴', '치외법권 지역', '무법천지'라는 거친 표현이 거듭해서 반복됐다.

이씨는 "'얻어 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주님의 은총'이라던 꽃동네가 얻어 먹는 것을 넘어서 이제 도와주는 사람 위에 군림해 모든 것을 차지하려 하고 있는 것이 꽃동네의 본질적 문제"라고 진단했다.

이씨는 박정희 정권 당시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3년 6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다. 현재는 박정희기념관건립반대 국민연대 상임공동대표, 여중생추모범대위 상임고문을 맡아 활동하는 등 역사적 현장의 한가운데서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왔던 인물.

그런 이씨는 최근 몇 년 동안 사재를 털어 자료집을 만들며 '소외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꽃동네와 그 관리자인 오 신부의 부정을 막아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꽃동네 앞 방음벽 철거운동을 주도하고 음성등기소와 음성군청을 오가며 오 신부가 사들인 땅의 규모를 밝히는 일에 몰두하는 등 '꽃동네 개혁'에 필요한 일이라면 열 일을 제쳐놓고 나서고 있다.

이 때문에 이씨는 음성군 일대에서 꽃동네로 인해 생긴 주민들의 '고충처리 위원'으로 통한다. 인근 주민들은 '꽃동네측에 맞서 바른 말 하는 유일한 의인'으로 주저 없이 이씨를 꼽았다.

지난 1월 중순. 여중생 추모 61차 광화문 집회를 마치고 막 음성 자택에 들어선 '광화문 할아버지' 이씨를 만나 수년째 꽃동네와 자발적 악연 쌓기(?)에 나선 사연을 들어보았다.


내가 꽃동네 정착을 돕다가 제동에 나선 이유

- 언제부터 이곳에서 살아 왔나.
"충북 괴산군 증평에서 태어나 9살 때 이곳으로 이사왔다. 1955년 무극고등국민학교 국어교사를 했고, 65년에는 대명농민학교를 세웠다. 70년대말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돼 교직생활을 접었다. 그간 62년 동안 여기서 살아 왔다."


- 개인적으로 오 신부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었나.
"80년 출소해 나와 보니 오 신부가 내가 없는 동안 우리 학교 아이들의 학비를 내준 기록이 있더라. 그래서 곧바로 인사차 찾아 갔다. 당시는 꽃동네가 지금의 장소가 아닌 무극광산 근처의 비좁고 허름한 곳에 있었다.

그러던 중 82년인가 오 신부가 찾아와 넓은 곳으로 꽃동네를 옮겨야겠다며 장소를 물색해 달라고 하더라. 좋은 일이라며 내가 나서서 당시 건국대학교에서 축사로 쓰고 있던 자리를 소개했다. 그곳이 지금 꽃동네가 들어선 자리다. 이후에도 땅이 더 필요하다고 찾아와 매입을 알선, 중재해 준 적이 있다."

- 처음엔 꽃동네의 정착을 돕다가 이젠 '제동'에 나선 셈인데 그 이유는 뭔가.
"시간이 지나면서 걷잡을 수 없는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언젠가부터 꽃동네가 누구도 손대지 못하는 무법천지, 범죄소굴, 치외법권 지역이 돼버렸다. 한 마디로 균형이 깨졌다. 얻어먹는 사람이 도와주는 사람 위에 군림하게 된 거다. 꽃동네가 이제 더 이상 얻어먹을 필요가 없을 만큼 부유해졌는데도 자꾸 땅을 사들이고 몸집을 불리는 거다.

보다못해 85년인가 일부러 오 신부를 찾아가 충고한다며 한마디했다. 제발 더 이상 꽃동네를 확장하지 말라고. 왜 더 구걸하냐고. 법적으로 농사지을 수 있는 능력이 되는 사람은 꽃동네 시설에 들어올 수도 없는데 왜 자꾸 땅을 사들이냐고 물었더니 오 신부가 하는 말이 '아니다 지금보다 몇 배 더 내부를 튼튼히 해야하고 돈을 더 모아야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그때부터 '이 사람 선을 넘었구나'라고 생각했다."

a 이관복 박정희 기념관 반대 국민연대 상임대표가 지난해 3월 29일 상암공원을 방문, '박정희 기념관' 공사 현장을 가리키고 있다.

이관복 박정희 기념관 반대 국민연대 상임대표가 지난해 3월 29일 상암공원을 방문, '박정희 기념관' 공사 현장을 가리키고 있다. ⓒ 민족문제연구소 방학진

- 꽃동네를 두고 '무법천지'라고 표현한 것은 어떤 의미인가.
"이 지역에서는 꽃동네 오 신부의 말이 곧 법이다. 음성경찰서, 음성군청의 사법, 행정적 통제가 미치지 않는 곳이 바로 꽃동네다. 예를 들어 꽃동네에서 무슨 우선 공사를 벌일 땐 무조건 불도저로 농지든 산이든 까놓고 본다. 즉 산림훼손 다 해놓고 그 다음에 관할 공무원에게 알아서 처리하라고 한다. 매사가 이런 식이다.

수년 전 꽃동네에서 무슨 공사를 하면서 덤프차로 포장도로가 온통 자갈길이 된 적이 있다. 급기야 덤프차에서 떨어져 내린 자갈에 뒤따르던 승용차의 앞유리가 깨지는 사고가 생겼다. 사고가 생기자 해당 지서에서 규정대로 덤프차에 포장을 씌우게 했다.

그런데 이후 곧바로 오 신부가 지서장에게 전화해서 욕지거리를 하고 당장 옷 벗긴다고 야단을 쳐 다시 덤프차가 포장을 벗긴 채 다녔다고 한다. 꽃동네에서 더러운 물을 흘려보내 마을 앞 개울이 다 죽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누구도 문제삼지 못한 채 속만 끙끙 앓으면서 살아오고 있다. 꽃동네 방음벽도 그 중 하나다."

"오신부 앞에서 쩔쩔매는 공무원들...누구도 그를 문제삼지 않았다"

- '꽃동네 방음벽'은 또 무슨 얘긴가.
"꽃동네 앞 도로변 1km(21번 국도)에 대규모 방음벽이 설치돼 있다. 문제는 불필요한 방음벽을 설치했다는 데 있다. 도로와 꽃동네 시설과의 거리가 직선으로 자그만치 300여 미터에 이른다. 그 정도로 거리가 떨어져 있으니 소음이 있을 턱이 없다. 당시 (꽃동네)시설에 근무하는 분들로부터 소음과 무관한 것이라는 얘기도 들었다.

그런데 오 신부 한 마디에 국고를 들여 불필요한 방음벽을 설치했다. 이 때문에 꽃동네 앞 국도가 심하게 굽고 시야를 가려 고통사고가 나기 위험천만한 상황이다. 동쪽 햇볕은 방음벽이 막고 서쪽은 높은 산이 있어 한마디로 지붕없는 터널이 됐고 겨울에는 길이 빙판이다. 이 문제로 사재를 털어 1년을 싸웠지만 허사였다. 이곳 공무원들은 오 신부 앞에서 쩔쩔 매니 문제가 해결되겠는가. 오죽했으면 내가 일본에서 소음측정기를 들여와 확인하려고 했겠는가."

- 꽃동네측에서는 불필요한 방음벽을 왜 설치한 건가.
"땅을 차지하기 위한 속셈이다. 현장엘 가보면 알겠지만 현재의 도로는 꽃동네 앞 세번째 도로다. 맨 처음 도로에서 산 쪽으로 위치를 변경했고, 또 다시 지금의 자리로 도로를 새로 만들었다. 특정시설을 위해 도로가 3번이나 바뀌었다. 이 때문에 꽃동네 앞 땅이 배로 늘어났다."

a 꽃동네 정문 앞 기존도로(맨 위)에서 도로가 한 번 바꿨고(중간) 다시 지금의 굽은 도로(맨 아래)로  바뀌고 방음벽이 쳐 졌다.

꽃동네 정문 앞 기존도로(맨 위)에서 도로가 한 번 바꿨고(중간) 다시 지금의 굽은 도로(맨 아래)로 바뀌고 방음벽이 쳐 졌다. ⓒ 심규상

- 꽃동네가 왜 땅에 욕심을 내고 있다고 보는가.
"동양 최대의 성지를 만들겠다는 허욕 때문인 듯하다. 평당 3만원 하는 땅을 10만원씩 퍼주고 돈을 물쓰듯하며 사들인다. 농지는 1인당 소유한도가 정해져 있으니까 농지위원들을 매수해 동의하게 한다. 내버려두면 충북의 땅을 다 사들인다고 덤빌 것이다.

꽃동네는 현재 맹동면의 땅 대부분을 사들였다. 실제 내가 몇 년 전 등기소를 오가며 찾아낸 오 신부 명의의 땅만 137필지, 5만3천여평에 이른다. 소유지만도 음성읍, 삼성면, 맹동면, 금왕읍 등 인근 읍-면에 망라해 있다. 이미 대한민국 속의 꽃동네가 아닌, 꽃동네 속의 대한민국이다. 선거부정은 그 예다."

"동양 최대 성지 만들겠다는 허욕이 땅 매입 부추긴 듯"

- '선거부정'이란 지난해 지방선거 때의 일을 말하는 건가.
"작년 지방선거 때 (부정선거 문제가)겉으로 불거진 것일 뿐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오 신부는 전두환 노태우를 돕는 등 선거 때마다 나서 왔다. 특히 도의원, 군의원은 꽃동네 뜻대로 좌지우지된다. 1천여 표 내외에서 당락이 좌우되는데 꽃동네가 바로 이 표를 쥐고 있다. 문제는 인지능력이 없는 사람들까지 투표하는데 있는데, 대부분 특정 한 사람에게 몰표가 간다.

내가 직접 목격한 일인데 기표소에 수녀가 들어갔다 나왔다 한다. 한마디로 오 신부가 밀면 당선되고 눈밖에 나면 낙선이다. 이러니 후보자들이 너나없이 '표 거지'가 되고 당선되면 '꽃동네 종'이 될 수밖에 없다. 인근 주민들이 땅도, 주권도 모두 꽃동네에 빼앗겨 왔다고 말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a

ⓒ 심규상

- 처음의 기대와 다르게 꽃동네 문제가 왜 이렇게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고 보는가.
"모두 역대 정권들이 그렇게 만든 거다.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이 바로 이렇게 만들었다. 대통령과 영부인이 방문해 추켜세우니 도지사도 군수도 경찰서장도 손을 못대는 치외법권 지대가 돼버린 거다. 온갖 비리가 만연해도 손 못 대고... 뒤늦게 꽃동네를 바로세운다고 나선 건데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고 있는 셈이다. 이곳 경찰은 꽃동네에 들어갈 때 마치 어디 못갈 데 가는 사람처럼 잔뜩 주눅이 들어 눈치보면서 들어간다."

"얻어먹는 사람이 도와주는 사람 위에 군림하는 현실"

- 꽃동네를 둘러싼 문제가 어떻게 해결해야 한다고 보나.
"지금의 꽃동네가 원래의 꽃동네가 되도록 해야 한다. 만약 비리가 있다면 이를 비호하지 말고 책임자인 오 신부를 법대로 처리해야 한다고 본다. 이 지역 사람들은 땅 빼앗기고 주권 빼앗기고 몸으로 부정부패를 겪으며 살아왔다. 검사가 맘먹고 달려들면 모든 부정이 금방 드러날 것이다. 오 신부를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이야말로 법치국가로 가지 않겠다는 얘기와 같다.

(꽃동네)시설에 있는 오갈 곳 없는 사람들 위해 좋은 일도 해오지 않았느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 걸로 안다. 그렇다면 내 아버지의 병을 고치기 위해 살인했다고 하면 그것도 모두 모두 용서해야 하는가. 더구나 꽃동네는 이미 충북 최고의 재벌이고 부자다. '님비'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는데 땅 빼앗기고 주권을 빼앗겨 봐라, 그래도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오나. 참고 용서하는 데도 한도가 있다."

- 꽃동네에 대해 바람이 있다면.
"얻어먹는 사람이 도와주는 사람보다 더 잘 살고 군림하는 것은 균형이 깨진 거다. 균형과 조화를 이루게 하는 것이 바로 꽃동네 문제의 해결책이다. 아래 시는 지난 98년 꽃동네 방음벽 문제로 싸우면서 오 신부를 직접 겪어보고 당시 심정으로 쓴 거다."

지나치게 달면 쓰고
너무 익어 구린내가 난다
바람을 좋아하면 태풍에 날아가고
불이 아궁이를 벗어나면 재앙이 된다
목마를 때 생수지 홍수는 재난이고
적당히 먹으면 맛이나 과식은 질병이다
균형을 잃으면 쓰러지고
하늘은 내려앉지 않는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2. 2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3. 3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4. 4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5. 5 "이러다 임오군란 일어나겠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대통령 "이러다 임오군란 일어나겠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대통령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