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과 치정 사이 - 그 경계선은 어디인가?

클라라 해리스 사건을 본다

등록 2003.02.17 07:23수정 2003.02.17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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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주 휴스턴에서 발생한 클라라 해리스(Clara Harris) 멀세이디 사건에 대한 재판이 지난주 금요일날 결말이 났습니다. 그보다 하루 앞선 목요일날은 유죄평결이 났고, 금요일날 형량이 확정된 것입니다.

a 세칭 멀세이디(Mercedes) 살인사건의 클라라 해리스. 20년형의 중형이 확정선고되자 기어이 울음을 터뜨렸다. 오른 쪽 해리스피고를 부축하는 이는 변호사.

세칭 멀세이디(Mercedes) 살인사건의 클라라 해리스. 20년형의 중형이 확정선고되자 기어이 울음을 터뜨렸다. 오른 쪽 해리스피고를 부축하는 이는 변호사. ⓒ Pat Sullivan, pool

20년. 클라라 해리스가 지금 마흔다섯살의 한창 나인데, 형기를 다 채우면, 예순다섯살 노인이 되어서야 밝은 세상에 다시 나오게 됐습니다.

검찰의 논고에 따르면 치과의사인 클라라 해리스는 정부(情夫)와 함께 있는 역시 치과의사인 남편 데이비드 해리스의 모습을 보고는 분을 참지 못해서 그대로 남편한테로 차를 돌진시켜서 남편을 쓰러뜨리고 세번씩이나 쓰러진 남편 몸위로 차바퀴를 굴린 것으로 돼 있습니다.

당초에 배심숙의가 길어질 것으로 여겨졌던 것하고는 달리, 배심원들은 불과 여덟시간 만에 의견일치를 봤고, 결국 종신형까지를 선고할 수 있는 Murder(살인)혐의에 대해서 클라라 해리스에게 유죄평결을 내린 바 있습니다.

클라라 해리스의 변호인은, 해리스부인이 순간적으로 정신이 나간 상태에서 사리분별을 할 수 없었고 따라서 우발적인 사건이라는 요지의 변론을 했고, 피고인 클라라 해리스 역시 자신은 단지 남편의 정부로 밝혀진 게일 브릿지스양의 차를 들이받으려 했을 뿐이었다고 변명했지만, 배심원들은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은 셈입니다. 정부인 게일 브릿지스양은 클라라 해리스가 남편과 함께 운영해 왔던 치과클리닉의 리셉셔너스트였습니다.

클라라 해리스에게 20년의 형이 확정된 2월14일은 마침 밸런타인데이이자, 해리스 부부의 열한번 째 결혼기념일이었습니다. 또 해리스부인이 남편 해리스씨를 역살한 그 호텔은 바로 이 부부가 11년전 결혼식을 올린 바로 그 호텔이었습니다.

재판정에서 클라라 해리스는 자신은 남편을 다시 자기 곁에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 지방제거수술과 유방확대수술을 했고, 그리고 항상 고분고분한 처신을 하려고 노력했으며, 직장도 그만 두고 남편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고 했으나, 정작 그런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 남편이 정부와 손을 잡고 있는 다정한 모습을 보고는 견딜 수가 없었노라고 털어놓았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사건 당일 클라라 해리스는 정부 게일 브릿지스양과 호텔 로비에서 머리끄댕이를 잡아당기는 몸싸움을 벌인 것이 목격되기도 했는데, 당시 해리스 부인이 운전하던 멀세이디에 타고 있던 의붓딸, 열일곱살난 린지 해리스양이 해리스부인한테는 결정적으로 불리한 증언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검찰측은 배심원들에게 피고를 감옥에 보내달라고 요구했으나 형량을 특정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물론 변호인은 해리스부인의 우발범행을 내세워 집행유예를 호소했습니다. 이에 배심원단이 20년형과 벌금 10000불을 선고했는데, 10년형이 넘으면 텍사스주법 상 집행유예가 불가능한 것으로 돼 있습니다.


특히 고인이 된 데이비드 해리스의 부모까지, 그러니까 해리스 부인의 시부모까지 며느리편에 서서 선처를 호소하는 가운데, 변호인단은 네살난 두 쌍동이 아들들의 양육을 위해서라도 해리스부인을 집행유예로 처리해줄 것을 호소했고, 정작 고인도 그것을 바랄 것이라는 감정호소작전을 사용했으나, 배심원단은 이를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검찰측은 이에 대해서 잔혹한 살인사건의 단죄에 아이들을 볼모로 이용하려 한다고 비난했습니다.

우리 한인사회에서도 뉴욕지역과 로스엔젤레스지역에서 거의 비슷한 시기인 올해 연초에 소위 치정에 얽힌 살인사건이 서너건 발생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애정과 치정 사이를 생각해 봅니다.

아낌없이 주는 아가페적인 사랑이 아닌 바에는 사랑은 본질적으로 광기라는 말이 있습니다마는, 애정이 깊어진 사이 상대방이 다른 길을 가려할 때는 웬만히 성숙한 정신이 아닌 다음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분노로 마음에 균형을 잃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감정이 자칫 잘못 관리될 때는 치정사건으로 발전하고,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참사로 결말이 날 수 있습니다. 특히 의지가지 없이 서로만을 바라보고 사는 이민사회일수록 이 부분 예측불능의 폭발성을 잠재하고 있을 수도 있다 여겨집니다.

따지고 보면 이같은 문제는 비단 치정에만 국한되는 문제는 아니고, 범위를 넓혀서 보면, 결국 '분노관리'의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마치 정상적인 연소를 통해 대륙간을 날을 수 있는 분량의 비행기 연료가 트윈타워를 폭발시켜 주저앉히듯이, 실패한 분노관리는 여러 사람들의 인생에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주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순간적인 격노의 결과치고는 너무 엄청난 사건에 당해서, 우리 한인사회의 모습이 오버랩됩니다. 정작 유죄평결때까지는 감정의 변화를 보이지 않던 클라라 해리스가 20년 형이 확정되자 변호인의 팔에 쓰러지는 것을 보면서, 어쩔 수 없이 약한 인간의 모습도 보았습니다.

애정과 치정 사이, 그 경계선은 어디일까? 대답이 쉽지 않은 질문을 던져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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