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짜장' 소스만 먼저 먹은 내 친구

<고향의 맛 원형을 찾아서8> '짜장면' 이야기

등록 2003.02.19 23:30수정 2003.02.20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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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짜장'만 먹으면 입맛이 짜증내지 않을까요 너무 짜다구요? '짜장면'만 너무 많이 먹다 보면 이걸 가지고 '간짜장'이라 생각할 수도 있으니 시골 아이들에겐 꼭 일러 주시기 바랍니다.

'짜장'만 먹으면 입맛이 짜증내지 않을까요 너무 짜다구요? '짜장면'만 너무 많이 먹다 보면 이걸 가지고 '간짜장'이라 생각할 수도 있으니 시골 아이들에겐 꼭 일러 주시기 바랍니다. ⓒ 김규환


서울서도 '짜장면'(자장면)을 시켜 먹을 때마다 '육남'이라는 친구 생각이 난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12년을 함께 다녔던 촌놈 '육남'이. 이 친구와 나는 마을도 같고 고교시절 3년 동안 기숙사 생활도 같이 해서 한 가족이나 다름없다. 성격 파악도 마친 상태다. 열 살 때 학교 들어가서 22살 때 대학에 들어간 여섯 째 사나이 '육남(六男)'이 동생 이름은 '칠남(七男)'이다. 나는 친구 형을 오남이 형이라고 한다. 친구가 공부도 나보다 잘 했다. 그런 육남이와 나에게 '짜장면'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우리는 한 날 한시에 처음 '짜장면'을 맛보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인 1979년 여름 방학 때 '과학실험실기대회'에 나간 게 그 맛난 '짜장면'과의 대화를 시작하게 된 계기다. 전날 둘은 광주 선생님 댁에서 하루를 묵고 우리 학교 대표로 화순읍까지 가서 하루를 꼬박 봉숭아 줄기를 잘라 현미경으로 관찰하며 세포 모양을 그리고, 암석을 손으로 만지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살펴가며 이름을 잘도 맞춰나갔다.

점심 때 선생님께서 "우리 밥 먹으러 가자"라고 해서 따라가 보니, 우리가 맨날 먹던 밥에 돼지고기 조금 썰어 넣어 국물만 푸짐한 '김치국'에 말아 먹기를 바랬는데, 선생님은 우리에게 추억을 만들어 주시려고 그랬는지 그날은 중국집에 데려가 주셨다.

‘곱빼기’라고 시켜 주신 그 양이 지금 보면 대단하지만 당시에는 둘 배를 채울 리 만무했다. 그래도 만족이었다. 도시 구경 몇 번 해봤던 친구들이 자랑 삼아, 때론 석 죽이면서 늘어 놓았던 그 쫄깃하고 감칠나게 휘감기는 '짜장면'을 우리도 먹어 봤으니 꿀릴 게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우린 그렇게 해서 처음 '짜장면'을 알아 나갔다.

'짜장면' 한 그릇씩을 먹어 치운 우리는 힘이 나서 오후엔 더 영특함을 발휘하게 되고 성적 우수자로 뽑혀 전남 본 대회에 나가게 되었다. 그 대회와 관련하여 나는 중학교에 들어간 뒤에야 이성호 과학기술처 장관 상(賞)을 받기까지 했다.

a '간짜장'은 왜 '짜장' 먼저 나오고 면발 나중에 나와서 친구를 골탕먹이는지 모르겠네요. 사장님 앞으론 같이 좀 내 주세요. 꼭 부탁합니다. 면을 번갯불에 삶으면 가능한 일 아닌가요?

'간짜장'은 왜 '짜장' 먼저 나오고 면발 나중에 나와서 친구를 골탕먹이는지 모르겠네요. 사장님 앞으론 같이 좀 내 주세요. 꼭 부탁합니다. 면을 번갯불에 삶으면 가능한 일 아닌가요? ⓒ 김규환


몇 년이 지났을까 고등학교 3학년 때 일이다. 추억이라면 추억이고 에피소드라면 에피소드랄 수 있는 재미있는 일을 나는 기어이 같이 벌이고 말았다. 두 번째이다시피 한 '짜장면'과의 대화는 처절했다.


학생회 총무부장이었던 나와 여학생회장, 학생주임이셨던 올챙이 배를 달고 다니셨던 교련 선생님, 그리고 학생회장이 된 육남이까지 네명이서 ‘스승의날’을 기념하여 담양 창평에서 버스를 타고 광주까지 선생님들 선물을 사러 나갔다.

우리는 신생학교 입학 5회였다. 총무부장이었지만 500여명 동기들에게 들어오는 돈은 뻔했다. 멋모르기도 했지만 마땅한 대안이 없던 터라 선생님이 안내해 주는 광주 교원공제회관에 가서 남자 선생님께는 양말, 여자 선생님께는 '스타킹' 하나로 때우기로 했다. 마땅한 꺼리를 찾지 못하여 고민하다가 선물 사는 사람이 부담 없는 걸로 하기로 합의를 본 것이다.


쇼핑이랍시고 촌 놈들이 할 건 아무 것도 없다. 광주가 고향인 여학생회장과 선생님을 따라 다니는 일 밖에 없었다. 총무부장이라고 했던 일이 지갑만 들고 다녔으니 이 일을 아는 친구가 있을까 두렵기 까지 하다.

쇼핑을 마치고 선생님께서 밥을 먹으러 가자고 하셨다. 선생님 수업시간에 놀고 장난치기에 바쁘다 보니 시험 시간에 다시 배워야 하는 나였지만 누구보다도 아껴주셨고 나는 또 선생님을 종처럼 따랐던 관계다. 이 선생님이 변두리 식당도 아닌 지금은 없어졌다고 어렴풋이 들었던 광주 번화가 충장로 2가 쯤에 있는 으리으리한 ‘가든백화점’ 맨 꼭대기로 우리를 안내 했다.

저녁 7시나 되었을까 허기진 상태인 터라 가장 빨리 나올 수 있는 요리집을 찾다 보니 결국 중화 요리집에 가게 되었다. 차림표를 보고서 각자 주문을 하게 된다. 선생님 '짜장면', 조민자 여학생 회장 짬뽕, 육남이와 나는 한참 때라 '간짜장 곱빼기'를 각각 시키게 되었다.

물을 한 잔씩 따라 마시면서 그날 결산을 간단히 하고 있었다. 옛 잠바를 하나씩 걸치고 갔던 오월 어느 날 시골 촌놈들이 '짜장면' 먹으러 나왔다 싶게 초라했던 남학생 둘 중 한 명인 나는 내심 같이 간 나머지 두 사람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조금 지나자 제일 먼저 밥 그릇 같이 오목한 플라스틱 그릇에 거무튀튀한 양념 같기도 하고 무슨 보조재료 같은 소스가 두 그릇 나왔다. 먹어도 되는 그 그릇에 담긴 그것이 '짜장'이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을 보고서도 따뜻한 것 아니면 잘 먹지 않던 나는 선생님이 먼저 드셔야지 하면서 눈치를 보고 예의를 차리느라 잠시 주춤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친구가 처음 본 긴 젓가락을 들고 벌컥벌컥 먹어대기 시작했다. 말릴 틈도 없었다. “아차!” 아니다 싶었다. 삽시간에 먹어치운 그릇엔 다시 뭔가 채워져야 하는 상황으로 돌변하고 말았다. 양파에 춘장을 곁들여 돼지고기를 섞어 볶은 짜장 소스를 하나도 남김없이 먹어치우고 마는 그 아이.

같이 갔던 사람 나머지 세 사람은 웃지도 못하고 아무소리 없이 쳐다보고 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입이 딱 벌어지고 말았다. 한참 시간이 흘렀다. 이윽고 직원이 짬뽕과 그냥 '짜장'을 들고 오더니 우리가 주문했던 '간짜장' 면발을 가지고 나왔다. 그때도 친구는 무슨 영문인지, 자신이 무슨 일을 벌였는지를 모르고 있었다.

선생님 께선 나즈막하게, “여기요, 이 학생이 배가 고파서 그런지 미리 다 먹었네요. 새로 짜장 좀 갖다 주실 수 있어요?”

“예, 갖다 드리겠습니다.”

몇 가지 비리를 알고 있던 나는 식사를 마치고 그 친구를 놀려대기 시작했다. 여학생회장도 거들었다. 한참 흉 아닌 흉을 보는데 친구가 사정을 했다. 절대 학교 가서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부탁을 한다.

“알았어…안 하면 될 거 아냐.”
“육남이 이야기를 절대 여학생들에게 얘기 안 할 거야!”

a 우동이 그래도 변함 없는 줄 알고 즐겨 먹었는데 요즘엔 영 맛이 아닙니다. 그 맛있던 우동은 다 어디 가고 맹탕 국물만 주는지요? 조개 좀 듬뿍 넣어주세요. 우동과 '짜장'이 그래도 중국집 주 메뉴 아닌가...

우동이 그래도 변함 없는 줄 알고 즐겨 먹었는데 요즘엔 영 맛이 아닙니다. 그 맛있던 우동은 다 어디 가고 맹탕 국물만 주는지요? 조개 좀 듬뿍 넣어주세요. 우동과 '짜장'이 그래도 중국집 주 메뉴 아닌가... ⓒ 김규환


그 뒤로 나는 철저히 보안을 유지했다. 친구 아내에게도 발설하지 않았다. 오늘이 최초 발언이다.

그런데 모를 일이다. 그 여학생은 말이 좀 많기로 알려진 바 정말 아무 말 않고 지나갔을지 말이다. 그 해 학력고사를 마치고 우리 남학생 둘과 친했던 키가 제일 크고 국어, 한문을 가르쳤던 선생님과 그 여학생을 대동하고 무등산에 시간 나면 올라 다녔는데 고교를 졸업하자마자 이듬해 결혼을 해서 잘 살고 있단다.

‘짜장면!’ '자장면'이 표준어라고 우겨도 난 '짜장면'이 맞다고 말하고 싶다. '자장면'이 표준말이라고 우기고 싶다면 '설탕'을 당장 '설당'이라고 고치라. ‘雪唐’을 발음 하면 ‘설당’이다. 요즘 말을 보면 일관성이라고는 한 군데도 없다.

국어사전을 찾아봐도 이게 한국 국어사전인지, 한국의 낱말을 조금 추가하여 외국사전을 번역하여 놓았는지 모를 정도로 외래어가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사람들이 '짜장면'과 우동에 그렇게 물리고서도 다시 찾는 이유는 촌놈이 한 번 먹고 나면 ‘홍어’ 요리를 먹어보고 평생 잊지 못해 다시 찾는 전라도 사람들처럼 '짜장면'도 땡기는 데가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아저씨, 추억의 '짜장면' 하나 추가요~"

덧붙이는 글 | 이런 친구가 그립다.

덧붙이는 글 이런 친구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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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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