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칡넝쿨우리꽃 자생화
"우리 낼 아침에 칡 캐로 가자"
"그라모 내가 곡괭이하고 푸대하고 갖고 올끼니까, 니는 수군포(삽)하고 호매이(호미)하고 낫을 갖고 나온나"
"니는 몇 시에 아침 묵노?"
"무성티에 해가 촛불맨치로(촛불처럼) 깜빡거릴 때 묵는다 아이가"
"그라모 낼 무성티 꼭대기에서 해가 마악 꼬리를 뗐을 때 똥뫼산으로 나온나"
우리 마을 주변에는 야트막한 산에서부터 400-500미터 남짓한 산들이 무척 많았다. 사방팔방이 산이었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김해평야처럼 확 트인 곳이 한군데도 없었다. 가까운 비음산에 나무를 하러 올라갔다가 우리 마을을 바라보면 산이 마치 수호신처럼 큰 울타리를 치고 우리 마을을 보호해 주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어마어마한 울타리 안에 펼쳐진 들판에는 야트막한 산들이 마치 자라처럼 들판 곳곳을 헤엄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또 들판 곳곳에 옹기종기 골뱅이처럼 붙어있는 마을을 언뜻 바라보면 마치 조그마한 고깃배들이 들판 위를 이리저리 떠다니며 그물을 던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해마다 이맘 때, 봄방학을 하면 우리 마을 아이들은 동이 트자마자 비음산과 배꼽을 마주대고 있는 대암산으로 칡을 캐러 갔다. 대암산은 당시 우리가 비음산과 더불어 '무성티' 라고 불렀던 산이다. 하지만 우리들이 나무를 하러 갈 때에는 주로 무성티의 북쪽인 비음산 꼭대기로 갔고, 칡을 캘 때에는 반드시 무성티의 남쪽인 대암산 중턱으로 갔다.
"오늘은 가리칠(칡)로 캐야 될낀데"
"가리칠로 캔다꼬? 가리칠 캐는 기 울매나 에러븐(어려운) 일인지 니는 아나? 나는 나무칠이라도 많이만 캤으모 좋것다"
"그래도 기대로 가꼬 가야 쪼맨한 기라도 하나 안 캐것나"
"그라지 말고 고마 동삼을 캔다 캐라"
대암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비음산으로 올라가는 길과 달랐다. 그리고 길이 비좁고 몹시 가파로웠다. 하지만 나무 한 짐을 등에 지고 400-500미터가 넘는 산을 넘나들었던 우리들에게 그런 길은 신작로처럼 보였다. 이전부터도 우리들은 산에 오르락내리락 하다가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어서 다녔기 때문이었다.
해마다 우리들이 칡을 캐러 가는 장소는 거의 비슷했다. 우리 마을에서 새칫골과 철로를 지나 한동안 걸어가면 과수원과 젖소를 키우는 농장이 하나 있었다. 그 농장을 지나 곧장 올라가면 대암산 솔밭이 나왔고 우리들은 그곳에서 잠시 쉰다. 그곳에는 저절로 생겨난 제법 넓은 잔디밭이 있었고, 그 아래에는 고드름이 주렁주렁 매달린 계곡이 있었다.
그 계곡에는 우리가 '별똥' 이라고 부르는 빠알간 열매가 열리는 보리수나무가 제법 많았다. 간혹 재수가 좋으면 고드름을 따먹으며 목을 축이다가도 얼어붙은 별똥을 따먹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늦가을에 따먹는 것처럼 그런 새콤달콤한 맛이 나지 않았다.
"어! 칠 찍을라. 살살 캐라"
"에이~ 이거는 나무칠 아이가"
"괘않타. 나무칠은 칠이 아이라꼬 누가 그라더노"
"가리칠로 캐야 될낀데"
"와? 니 가리칠 캐가꼬 그 가시나 줄라꼬 그라제?"
"뭐라카노. 인자 그 가시나도 제법 컸다꼬 내하고 말도 잘 안할라칸다"
칡을 캘 때에도 요령이 필요하다. 칡넝쿨이 있다고 해서 그냥 무조건 땅을 파는 것이 아니다. 우선 이리저리 엉킨 칡넝쿨을 잡고 천천히 따라가면 이내 칡넝쿨이 줄줄이 달린 칡뿌리를 찾을 수 있다. 그러면 일단 칡넝쿨을 낫으로 모두 자른다. 이때 조심해야 한다. 마른 칡넝쿨은 생각보다 몹시 질기기 때문에 그리 쉬이 잘라지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