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고주몽 20

등록 2003.02.23 17:34수정 2003.02.23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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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다. 한 떼의 말갈족들은 주몽일행을 반원 형태로 둘러싸고 있었다. 그 중 지휘자로 보이는 자가 칼을 뽑아 들고선 앞으로 나서 주몽일행에게 소리쳤다.

"부여족이 왜 우리 영토에 들어와 사냥을 하는가!"


오이가 앞으로 나섰다.

"우린 사냥을 하러 온 것이 아니라 여길 지나가는 것뿐이다."

말갈족의 지휘자가 코웃음을 쳤다.

"그렇다면 너희들은 우리 영토를 탐색하기 위해 보내진 첩자들이 분명하다! 무기와 말을 내어놓으면 목숨만은 살려주마."

주몽일행은 말에도 오르지 못한 채 포위되어 있었고 하인들 몇몇은 무기조차 없어 몽둥이를 들고 있는 상태였다. 압도적으로 불리한 지경이지만 모두들 말갈족에게만큼은 굴할 수 없다는 자존심으로 뭉쳐 있어 전혀 주눅든 표정들이 아니었다.


"그럴 수 없다."

말갈족의 지휘자는 오이의 대답을 듣자 한번 손을 휘저었다. 말갈족들은 화살을 잰 채 거의 무방비 상태인 주몽일행을 압박해 나갔다. 그때 뒤편에서 함성소리와 함께 또 다른 한 무리의 인마가 달려왔다.


"너희들은 함정에 걸렸다! 모두 도륙해 주마!"

부여족의 복색을 하고 앞에서 창을 휘두르는 젊은 장수의 말에 놀란 말갈족의 지휘자는 서둘러 몸을 피하기 시작했다. 그 장수는 말갈족을 더 이상 쫓지 않고 주몽일행에게와 말에서 내렸다. 그가 이끈 무리들은 대략 10여기 정도로 방금 전의 말갈족들을 압도할 수는 아니었다. 이로 인해 주몽과 오이는 한눈에 그의 기지와 임기응변이 상당함을 알 수 있었다.

"구해주셔서 감사하오. 저희들은 부여에서 용납되지 못해 떠돌이 신세가 된 사람들이오."

오이가 감사를 표하며 사람들을 하나하나 소개할 때 젊은 장수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주몽을 소개할 때만큼은 눈이 딱 멈추었다.

"혹시...... 유화부인의 아들 주몽이시오?"

"그렇소만 절 아시는지요?"

"아닙니다. 그냥 주워들은 바가 맞는가 하고......"

은근슬쩍 말을 눙친 젊은 장수는 자신의 일행을 소개했다.

"우린 북부여에서 온 사람들입니다. 남쪽에 살기 좋은 땅이 있다는 얘길 듣고 이곳의 말갈족 눈에 띄지 않으려고 낮에 숨어 자고 밤에 길을 지나던 중에 불빛을 보고 오다가 이렇게 만나게 되었습니다. 전 재사라고하고 이쪽은 무골, 이쪽은 묵거라고 합니다."

재사의 양옆에서 힘깨나 쓸 듯이 보이여 말 그대로 무골(武骨)인 무골과 백면서생으로 보이는 묵거가 인사를 올렸는데 그들의 눈은 모두 주몽을 향하고 있었다. 마리는 그들이 주몽을 대하는 태도가 오이에게 와는 달리 자못 정중함을 보이는 것에 심정이 불편해져 한마디를 툭 내뱉었다.

"그런데 그대들은 어찌하여 북부여를 떠나 이 먼 곳까지 오게 된 것이오? 우리는 핍박을 받아 이렇게 쫓겨다녀 참으로 한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소만."

말이야 정중했지만 '당신들이 이런 곳까지 오게 된 데에는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는 속내가 담겨 있었다. 묵거가 앞으로 나서 대답했다.

"우리는 원대한 뜻을 품고 스스로 고난을 택한 것이오. 다른 이의 핍박이 있다면 좁은 시야로 우리를 우습게 보는 것밖에 없었소."

되레 은근슬쩍 면박을 당한 마리의 얼굴이 이제 막 떠오르는 햇빛 탓인지 붉게 보였다. 이번에는 협부가 나섰다.

"보아하니 모두들 아직 어린 나이로 보이는데 용케도 여기까지 왔구려."

재사 쪽에서 무골이 나서 호탕하게 웃으며 맞받아 쳤다.

"글쎄 올시다. 그쪽에는 늙으신 분들이 용케도 여기까지 왔구려."

"뭐라!"

협부는 순간적인 감정을 마리처럼 참고 있지는 않았다. 가뜩이나 이런 애송이들의 도움을 받은 것도 자존심이 상하는 판에 자신이 지휘자로 여기는 오이를 은근히 무시하는 듯 하여 한번 실력을 보여주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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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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