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고주몽 21

등록 2003.02.24 18:02수정 2003.02.24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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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많지도 않은 나이에 늙었다는 말을 들었는데 어디 그런지 여기서 한판 씨름이라도 벌여 보는 게 어떠냐?"

협부의 말에 무골이 몸을 이리저리 풀며 앞으로 나섰다. 오이가 크게 야단을 치며 협부를 말렸다.


"이 사람! 도와주신 분들에게 이 무슨 실례냐! 더구나 여기 이러고 있다간 말갈족들이 또 언제 들이 닥칠지 모른다."

"공의 말씀이 맞습니다. 서둘러야 합니다."

재사와 주몽마저 나서자 협부는 마치 봐줬다는 듯이 무골에게 눈을 흘겼고 무골 역시 입가에 미소를 흘리며 협부를 빈정거렸다.

서둘러 말갈족 지역을 빠져나온 일행은 늦은 식사와 함께 휴식을 취하기 위해 잠시 멈추어 섰다. 토끼고기로 배를 불린 뒤 낮잠에 빠져든 일행을 뒤로하며 주몽은 팽팽이 조여놓은 활시위를 풀고 손질을 하고 있었다. 재사가 슬그머니 다가와 주몽의 곁에 앉았다.

"공자께서는 목적지를 정해 놓으셨는지요?"


주몽은 활을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재사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실은 그냥 남쪽으로 길을 잡고 가는 것일 뿐입니다. 다만 내 뜻이 올바로 전해지지 않고 다른 일행도 두고 온 가족 생각 때문인지 갈피를 못 잡고 있군요."


"어떤 뜻을 가지고 계십니까?"

"남쪽으로 내려가 새로운 나라를 개척하는 것입니다. 부여 같이 좁은 곳에서는 제 꿈을 펼칠 수가 없습니다."

재사가 허허 웃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 사람의 속내가 자못 궁금하니 도발적인 언사로 한번 떠봐야겠다.'

재사는 정색을 하며 주몽의 말에 반박하듯 얘기했다.

"부여가 왜 좁은 곳입니까? 사방이 수 천리로 뻗어있으며 한(漢)나라의 황제조차 국상 때마다 관을 지어 오는 등 그 세력도 강성합니다. 공자께서 가시는 남쪽이 사람들 얘기로는 무주공산(無主空山)이라고 하나 한(漢)나라의 야심만만한 인물들이 터를 잡으려 오는 데다가 옥저, 비류, 행인 등 이미 터를 잡고 힘을 키우고 있는 맥족(貊族)의 나라도 있습니다. 공자께서는 현실을 외면하려 길을 떠나는 것이 아니옵니까?"

주몽은 전혀 동요됨이 없이 재사의 말에 대답했다.

"부여가 좁다는 것은 영토가 아니라 그곳에서 실권을 잡고 있는 사람들의 됨됨이에 있소. 또, 한나라가 우리 맥족(貊族)에게 전혀 이로움이 없거늘 그들과 통교하여 이권을 내주니 대등한 관계라고는 하나 실속이 없소. 남쪽으로 말할 것 같으면 조선의 옛 땅인데 이젠 너도나도 자기 땅이라 우기며 다투고 있으니 빈곳이나 다름없소. 그 땅을 다시 하나로 합치는 것이 진정한 다물(다시 얻은 옛 땅이란 뜻)이오."

재사는 주몽의 뜻이 넓고 포부가 원대한 것을 보고 자신의 속내도 밝히기로 마음먹었다.

"전 주몽공자를 알고 있습니다. 유화부인께서 북부여를 떠날 때에 아이를 임신한 채 쫓겨났으며 그 아이의 아비는 바로 해모수왕의 둘 째 아들이신 불리지라고 합니다. 공자께서는 왕족의 피를 타고나신 겁니다. 물론 티를 안내고 계시지만 알고 계신 사실이겠지요."

주몽은 이 말을 듣고서도 놀라지 않았다. 평생 유화부인이 아버지에 대해 그 이름조차 언급하지 않을 정도여서 주몽으로서는 처음 듣는 말이었지만 그 이유가 원망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대접받지 못하는 처지에 자신이 왕족이라는 거만함만이 어려서부터 몸에 배이면 하등 좋을 것도 없었고 이는 대소왕자를 상대하면서 뼈저리게 느껴왔던 점이었다. 더구나 주몽이 가지고 있는 이상은 왕족으로서의 자존심 회복이 아니라 모든 이가 더불어 살아가는 새 국가의 건설이었다.

"그런 소리하지 마시오. 이젠 아무 상관없는 일이외다."

재사는 주몽이 자신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개의치 않았다.

"공자께서 갈곳이 있사옵니다. 여기에서 모둔곡을 넘어 비류수 근방에 이르면 좁으나 세력을 키울 수 있는 곳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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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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