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국민 섬기는 참여정부냐?"

[현장] 장애인들, 대통령 면담요구... 경찰이 행진 막아 격렬시위

등록 2003.02.26 22:14수정 2003.02.27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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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사 앞에서 평화행진을 가로막는 경찰에 맞서 장애인들이 격렬히 항의하고 있다
한국일보사 앞에서 평화행진을 가로막는 경찰에 맞서 장애인들이 격렬히 항의하고 있다석희열
장애인이동권연대(공동대표 박경석 외) 소속 회원과 대학생 등 100여명은 26일 오후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교통수단 이용 및 이동보장에 관한 법률'(안) 제정과 에바다문제 해결을 위한 노무현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서울 안국동 한국일보사 앞에서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장애인이동권연대 김기룡 선전국 차장은 이날 시위와 관련 "우리는 사회적 차별 해소에 대한 의구심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고 전제하고 "장애인들이 집단적으로 의사표시를 했을 때 노 대통령의 의지가 어떨지에 대한 하나의 시험대가 될 것"이라며 "차별에 대한 우리의 우려를 노 대통령에게 분명하고도 확실하게 해두려는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혜화동 교차로에서 집회를 마친 장애인들이 청와대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있다
혜화동 교차로에서 집회를 마친 장애인들이 청와대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있다석희열
한편 서울 종로구 혜화동 교차로 인도에서 사전집회를 마친 장애인이동권연대 소속 회원 등 집회 참석자들이 버스로 안국동 한국일보사 앞에 도착하자 미리 대기하고 있던 경찰 3개중대 병력은 앞뒤에서 이들을 그물처럼 에워싸면서 길을 막고 나섰다.

이에 장애인이동권연대 박경석 공동대표와 민주노동당 김혜경 부대표 등이 청와대까지 평화적인 행진을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줄 것을 요구하였으나 경찰은 불법시위가 예상된다는 이유를 들어 차도와 함께 인도까지 겹겹이 봉쇄하며 이들의 요구를 일축했다.

흥분한 시위대들이 경찰과 심한 몸싸움을 벌이며 대치상황이 계속되자 경찰에서는 "인도로 올라가면 길을 열어주겠다"고 시위대에 제안했고, 박경석 공동대표는 "인도로 휠체어가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느냐? 열린사회 참여정부라고 하더니 경찰은 아직도 그대로"라며 1개 차선을 따라 청와대까지 평화행진을 할 수 있게 길을 열어줄 것을 거듭 요구했다.

장애인이동권연대 박경석 공동대표가 길을 열어줄 것을 경찰에 요구하고 있다
장애인이동권연대 박경석 공동대표가 길을 열어줄 것을 경찰에 요구하고 있다석희열
양측간의 몸싸움을 지켜보던 박경석 공동대표는 부상자가 발생하면서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격렬해지자 "경찰이 헬멧을 벗고 방패를 치운다면 우리도 인도로 올라가겠다"고 제안한 뒤 차도에서 인도로 올라가자 경찰은 또 다시 "청와대 비서실이 지금 이사중"이라는 이유를 들어 길을 열어주지 않았다.

약속과는 달리 경찰이 사람이 다니는 길마저 겹겹으로 가로막고 나서자 박경석 공동대표는 "노무현 대통령 취임을 축하하기 위해 꽃다발을 전하고 면담요구서를 전달하기 위해 인도를 열어달라는 것"이라며 "국민을 대통령으로 모시겠다는 노무현 정부에게 축하 꽃다발을 전달하려는데 왜 종로경찰서가 막아서느냐"고 몰아붙였다.


종로경찰서 관계자는 "청와대 비서실이 지금 이사중이다. 그래서 면담요구서를 받아줄 책임자도 없는 것으로 안다. 단체가 아닌 대표 한 사람이 면담요구서를 전달하러 간다면 도와줄 수도 있다"며 "하지만 집단행동은 불법이기 때문에 막을 수밖에 없다"고 시위대의 행진불가 방침을 거듭 밝혔다.

인도를 따라 행진을 하고 있는 장애인들...그러나 이 행렬은 5분만에 경찰에 의해 저지당했다
인도를 따라 행진을 하고 있는 장애인들...그러나 이 행렬은 5분만에 경찰에 의해 저지당했다석희열
시위대들은 이같은 경찰의 방침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폭력경찰 앞세우는 참여정부 기만이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격렬하게 항의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과의 물리적인 충돌로 부상자가 발생하자 경찰은 시위대와 대치한 지 1시간만인 오후 3시34분경에 인도를 터주었으나 5분만에 다시 길을 막았다.


경찰의 태도에 격분한 박경석 공동대표는 "노 대통령이 사회적 차별 금지법을 제정하려고 한다는데 오늘 이 자리에 와보니 믿을 수가 없다"며 "참으로 슬프다. 이것이 정말 국민을 대통령으로 섬기겠다는 열린 정부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노무현 대통령에게 전달할 수 없게 된 꽃다발을 박경석 공동대표가 경찰에 건네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에게 전달할 수 없게 된 꽃다발을 박경석 공동대표가 경찰에 건네고 있다석희열
박 대표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전달하기 위해 가지고 온 꽃을 들어보이며 "이 꽃은 노 대통령이 아니라 종로경찰서에게 전달해야 될 것 같다. 이 꽃이 땅바닥에 떨어지는 날 우리의 분노는 폭발할 것"이라며 "설사 지금 우리가 이 자리를 떠난다고 해도 더 큰 분노가 되어 반드시 이 자리에 다시 올 것"이라고 울분을 토로했다.

박 대표는 이어 "노무현 정부가 열린정부 참여정부라고 해서 혹시나 하고 왔는데 역시나 경찰이 막아섰다"면서 "노무현 정부에 대한 우리의 기대가 컸던 만큼 오늘 이 분노는 두고두고 한이 될 것 같다"며 "그렇지만 노무현 정부는 언젠가는 우리들의 요구에 답을 해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애인이동권연대 소속 회원들은 이날 참여연대 앞 횡단보도에서 기습적으로 시위를 벌였다
장애인이동권연대 소속 회원들은 이날 참여연대 앞 횡단보도에서 기습적으로 시위를 벌였다석희열
지리한 대치상황이 2시간 동안 계속되자 장애인이동권연대 소속 회원 60여명은 "아직 점심도 못 먹었다. 종로경찰서 식당으로 가서 점심이나 먹자"며 종로경찰서로 이동하던 중 참여연대 앞 횡단보도를 점령하여 플래카드를 펼치며 기습적으로 시위를 벌였다.

이 자리에서 박경석 공동대표는 "종로경찰서는 청와대로 가는 길을 보장하라"고 요구하고 "우리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 우리는 끝까지 투쟁할 것이며, 결코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쇼에 놀아나지는 않을 것"이라며 노무현 정부에 대한 서운함을 드러냈다.

시위를 마친 뒤 지하철로 귀가하려는 장애인을 경찰이 휠체어를 들어 도와주고 있다
시위를 마친 뒤 지하철로 귀가하려는 장애인을 경찰이 휠체어를 들어 도와주고 있다석희열
상황이 심각해지자 경찰은 "이것은 불법시위다. 해산하지 않으면 전원 연행하겠다"고 경고방송을 한 뒤 즉각 병력을 동원하여 강제로 시위대를 차도 밖으로 끌어냈다. 경찰에 의해 인도로 강제로 끌려나온 시위대들은 경찰이 주변을 에워싼 가운데 정리집회를 마친 다음 오후 5시 40분경 자진 해산했다.

덧붙이는 글 | 장애인이동권연대에서 제시한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교통수단 이용 및 이동보장에 관한 법률'(초안)과 노무현 대통령 면담요구서는 장애인이동권연대 홈페이지(http://access.jinbo.net/)에서 볼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장애인이동권연대에서 제시한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교통수단 이용 및 이동보장에 관한 법률'(초안)과 노무현 대통령 면담요구서는 장애인이동권연대 홈페이지(http://access.jinbo.net/)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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