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곶감 안 가져 가셨어요"

등록 2003.02.27 22:49수정 2003.02.28 11:21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경북 상주! 처음 가보는 길이었다. 자연 경관이 그런대로 잘 보존된 전형적인 농촌형 도시였다. 그곳에 좋은 벗들도 있고, 청소년 교류사업 답사도 있고 해서 짧지만은 않은 여정에 나섰다.


4시간여를 내달린 다음에야 도착지인 상주에 도착할 수 있었고, 마중 나온 후배와 함께 청소년들이 묵어야할 곳인 농업인학교 숙소로 방문할 수 있었다. 이곳은 폐교를 농민회가 농림부로부터 예산지원을 받아 체험학습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시켜 놓은 곳이었다.

아담하게 자리잡은 숙소, 그곳은 청소년들의 집합교육을 하기에 정말로 적합한 곳이었다. 특히 유기농사를 비롯해 환경사업에 대해 청소년들이 직접 체험하고 공부할 수 있는 그런 곳이기도 해서 우리는 더욱 기대를 가지고 안내자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리고 발길을 옮겨서 상주시자원봉사센터 실무책임자를 만나 구체적으로 '어떻게 연합사업을 펼쳐 나갈 것인가'라는 주제를 가지고 논의를 시작했다. 그리고는 서로 도·농간 사회복지네트워크 사업으로 모범을 세우자면서 부푼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자리를 옮겨 우리는 예전에 함께 일했던 후배의 자치방에 가서 잠시 쉬기로 했다. 자활후견기관에서 일하는 또다른 후배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곳에서 30여분을 기다린 끝에야 내가 보고자 했던 그 친구는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서는 다짜고짜 큰절을 하는 것이었다. "그동안 평안하셨냐"는 인사와 함께 나와 그는 30대를 같이 하고 있다. 그야 이제 30줄에 들어섰고 나는 30 끝자락에 섰지만, 그렇다고 해서 큰절을 받을 만큼 나이 차이가 나는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는 나에게 큰절을 올리는 것이다.


나에 대한 그리움, 반가움 그런 것 따위를 큰절에 담아 표현하는 것이라고 여겨졌다. 그 후배가 나와 헤어지고 이곳에 내려와 산 지 벌써 2년여 남짓됐다. 난 그 후배를 그의 고향으로 돌려보내면서 참으로 아쉬운 맘을 금할 수 없었다. 그처럼 사회복지에 대한 열정을 다른 이를 통해 보지 못했고, 비록 서글픈 일이 있더라고 이를 감추고 기꺼운 모습으로 살려고 했던 그였기에, 내가 좋은 울타리는 아니더라도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그런 울타리라도 되겠다 다짐했던 그런 후배였기에 그를 떠나보내는 마음을 더더욱 남달랐다.

사회복지계가 워낙 부침이 강한 곳이라, 이직율도 높고, 잠시 스쳐 지나가는 그런 인연들인 곳이지만, 그래도 그의 성실함과 낙관성은 잊지 못할 친구로 자리잡게 한 그만의 독특한 장점이었다.


그런 그 후배를 이곳에서 수년만에 재회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또 저녁을 먹기 위해 자리를 옮겼다. 저녁을 대접한다고 인삼 송어회를 먹자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차를 타고 송어양식장 시설을 갖춘 한 가든으로 갔다.

몇 순배가 돌았다.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후배는 자활후견기관에서 맡은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참으로 농사꾼이 다 되어있었다. 곶감 제조사업을 한다고 감나무를 심고, 감도 깎고, 그런 일들을 한단다. 며칠 전에는 감나무에 비료도 주고 말이다. 농촌지역이라 그런 일들이 주종을 이루는 것이 자활사업단의 일상생활일 것이다.

그러다보니 그는 사회복지사라기보다는 농사꾼이 되어 버렸다. 손에는 군살이 배어 버렸고, 얼굴 또한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 여기까지도 놀라운 일이었는데, 더더욱 놀라운 것은 그가 받는 봉급이었다. 차포 떼고 이달 봉급이 75만원 남짓한다는 것이었다. 그 봉급을 받으면서도, 부천에서 좋아하는 선배가 왔다고 그 봉급의 10%가량 되는 술값을 내겠다는 것이었다.

난 그럴 수가 없었다. 물론 오기 전에 그들을 만나면 고생한다는 말과 함께 저녁식사를 낼 요량으로 그만한 돈을 가지고 온 터라, 그들의 성의에도 불구하고 이럴 수가 없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묵묵히 사회복지의 한 길을 가는 그런 친구에게 위안은 못할망정 말이다.

그의 신접 살림집에도 가보았다. 웬만한 전등은 꺼놓는단다. 하기야 그 박봉으로 두 내외가 살려면, 그렇게 절약을 하지 않으면 안될 터였다.

다음날 우리는 부천으로 올라오기 위해 차비를 차렸다. 그런데 이 친구가 못내 아쉬웠던지 곶감 상자 5개를 자원봉사센터 후배에게 주면서 나에게 꼭 드리라고 주더란다. 그러나 나는 그 성의를 뿌리쳤다. 먹은거나 진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들은 그 곶감이 남아서 주는 것이라고 했지만, 사업장에서 판매용으로 쓰는 곶감인데 그냥 가져 왔을리는 없었다. 그가 곶감 원가라도 지불해야 했을 것이었다. 그 돈이 얼만데, 머리 속으로 계산이 되는 그 후배의 한 달간의 빈궁함과 달콤한 곶감의 맛과 맞바꿀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난 단호하게 그 곶감을 거부했다. 올라오면서 맘이 편치 않았다. 그 친구의 성실함에 비해 그는 흡족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상태였다고 나는 생각했기 때문이다. 투박해진 두 손과 작업복 차림의 옷, 도시지역의 사회복지사들과는 대조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그에게는 많은 장점이 있었고 일도 잘해서 더욱 안타까웠다.

"부장님, 왜 곶감 안 가져 가셨어요. 꼭 가져 가시라니까요."
"먹은 거나 진배없다."
"왜 안 가져가셨는지 부장님 맘 다 압니다."
잠시 말문이 끊어졌다. 그리고 목소리에도 힘이 없었다.
이내 마음을 가다듬었는지 이 후배는 "부장님, 건강하세요.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목청껏 소리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 친구의 장점이었다. 그러나 왠지 그가 안쓰러웠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아버지 금목걸이 실수로 버렸는데..." 청소업체 직원들이 한 일 "아버지 금목걸이 실수로 버렸는데..." 청소업체 직원들이 한 일
  2. 2 "부영, 통 큰 기부로 이미지 마케팅... 뒤에선 서민 등쳐먹나" "부영, 통 큰 기부로 이미지 마케팅... 뒤에선 서민 등쳐먹나"
  3. 3 깜짝 등장한 김성태 측근, '대북송금' 위증 논란 깜짝 등장한 김성태 측근, '대북송금' 위증 논란
  4. 4 오빠가 죽었다니... 장례 치를 돈조차 없던 여동생의 선택 오빠가 죽었다니... 장례 치를 돈조차 없던 여동생의 선택
  5. 5 '바지락·굴' 하면 여기였는데... "엄청 많았어유, 천지였쥬" '바지락·굴' 하면 여기였는데... "엄청 많았어유, 천지였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