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골산에서 떠올린 충무공 이순신

등록 2003.02.28 02:10수정 2003.06.17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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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마을 앞에서 바라본 금골산

마을 앞에서 바라본 금골산 ⓒ 김문호

봄방학을 맞아 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을 즐기는 중 3학년 아들녀석을 재촉하여 금골산에 올랐다. 금골산이 있는 전남 진도군 군내면 일대는 임진왜란에서 정유재란까지 일인들을 충무공 이순신이 강강술래와 급물살을 이용하여 나라의 운명까지도 절망적이었던 불리한 전세를 승리로 이끈 대첩지 울둘목과 노적봉 등 민중에 희망을 심어준 전설이 곳곳에 널려 있는 곳이다.

a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금골산. 사자가 앉아서 진도의 관문 녹진을 굽어 보고 있다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금골산. 사자가 앉아서 진도의 관문 녹진을 굽어 보고 있다 ⓒ 김문호

금골산은 진도의 관문 녹진에서 4km 지점의 금골리 뒷산으로 북쪽에서 보면 평범하고 해발 193m의 낮은 산으로 상굴산이라고도 부른다. 마을 뒤편은 100m 가량의 기암절벽이 기묘하고 웅장하게 병풍처럼 둘러 처 있고 사이마다 송송 뚫어진 바위구멍에는 20여년 전까지만 해도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산비둘기가 서식하여 장관을 연출했었다.


a 국가 보물로 지정된 금골산 오층석탑

국가 보물로 지정된 금골산 오층석탑 ⓒ 김문호

진도사람들은 이 산을 영험이 있는 산으로 신성시하기도 하고 혹은 발광하여 사람들에게 해를 끼친다하여 산 기운을 다스리기 위하여 산밑에 16나한을 세우고 67칸의 해언사 절을 직기도 했었다. 지금도 금성초등학교 안에는 국가보물 529호로 지정된 오층석탑이 단아한 모습을 보여줘 지난 역사를 상상할 수 있게 한다.

산을 오르자 봄을 재촉하는 야생초가 새파란 속잎에 부끄러운 듯 꽃망울을 터트리고 절벽에는 야생 석란이 위험스럽게 바위를 붙들고 있다.

정상에 올라 사방을 조망하면 멀리는 목포 시야바다가 보이고 가까이 서북쪽으로는 일인과의 전투에서 군량미로 위장하기 위해 이엉을 이었다는 독굴산 노적봉과 아군의 군대가 많음을 보이기 위해 매일 아침 저녁 쌀뜨물을 대신하여 회색토를 울둘목에 풀어 왜군의 사기를 떨어뜨려 도망치게 했다는 죽전리 백토광산이 한눈에 보인다.

북쪽으로는 망금산 전망대와 해남 우수영이 보인다. 진도의 관문 녹진 앞 바다 명량해협은 바닷물의 흐름이 우뢰와 같은 소리가 4km까지 들린다고 하여 '울둘목'이다. 이곳은 이순신이 12척의 배로 300여척의 왜선을 물리친 세계의 해전사에서도 기록을 찾기 힘든 대첩지이다.

a 절벽 바위에서 자생하는 란

절벽 바위에서 자생하는 란 ⓒ 김문호

밤이면 여인네들은 남장을 하고 횃불을 들고 망금산 강강술래 터에서 둥근 원을 그리며 뛰어다니며 강강술래를 부르며 군대로 위장하여 왜병들이 육지로 상륙하지 못하고 물 속의 원귀가 되었다.


일본 사람들은 아이들이 울음을 그치지 않으면 '울두 울두'하면 당장 그친다고 한다. 울둘목에서 수많은 일본 군인들이 죽어 울둘목은 아직까지도 그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기 때문이란다.

충무공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왜군의 탄약을 소비시키기 위해 띄배와 짚섬배를 만들어 야간을 이용 관솔불을 생 대나무 위에 올려놓아 대나무 타는 소리를 총소리로 오인한 왜군들의 총질로 탄약을 허비하게 만들었다.


현재 진도대교가 놓여진 해남과 녹진 사이 물목에 쇠사슬을 연결하여 조석간만의 조류 차이를 이용하여 일본 병선을 모조리 뒤엎었다고 한다. 그러나 300m 폭에 쇠줄을 팽팽히 연결하기는 현대 과학으로도 쉽지 않을 터이다.

a 정상에서 바라본 독굴산의 노적봉

정상에서 바라본 독굴산의 노적봉 ⓒ 김문호

a 녹진 전망대와 해남 우수영

녹진 전망대와 해남 우수영 ⓒ 김문호

a 민중들의 희망이 담겨 있는 설화의 진원지 울둘목과 망금산의 강강술래지

민중들의 희망이 담겨 있는 설화의 진원지 울둘목과 망금산의 강강술래지 ⓒ 김문호


a 정상에서 10여m를 내려가야 마애여래상이 나온다

정상에서 10여m를 내려가야 마애여래상이 나온다 ⓒ 김문호

이런 현실을 인정할 때 당시 계속되는 전란으로 인해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절망에 빠진 민중들의 삶에 희망을 불어넣은 사람은 충무공 이순신이었다.

곧 이순신은 진도민중들에게는 새로운 희망이요 메시야였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순신의 대첩 승전보는 진도 곳곳에 설화를 남겨 종교적 숭배로까지 이어졌다.

이 정도의 이야기는 40대 이상의 진도사람들에게는 상식에 속한다. 1970년대 초반 무렵 소년시절 한 여름밤 보리거적에 둘러앉아 아버지로부터 귀가 닮도록 듣고 또 들었다.

요즈음 아이들도 부모로부터 이순신에 대한 설화를 들어본 적이 있을까. 정보통신이 아무리 발달하여 정보에 능하다고 해도 훌륭한 조상들의 영웅담을 듣지 못한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a 인간의 허황된 욕심을 일깨우는 마애여래상

인간의 허황된 욕심을 일깨우는 마애여래상 ⓒ 김문호

정상에서 암벽을 타고 절벽을 20m 내려가면 굴이 나오고 상단 벽에는 마애여래상이 음각되어 있다. 가슴부위에는 커다란 배꼽이 깊이 파져 있는데 이곳에는 스님과 처사가 생활했다. 부처의 배꼽에서 하루 2인분의 쌀이 나와 그것으로 연명하며 도에 정진했다.

그런데 어느 날 손님이 찾아와 식량이 부족하자 욕심 많은 스님은 더 많은 쌀이 필요하여 배꼽을 꼬챙이로 찌르자 '주르륵' 나온 후 다시는 쌀을 내지 않았다. 욕심 많은 중생들에게 자족하는 생활을 가르치는 교훈적인 전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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