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쇄원의 광풍각과 제월당.안병기
혹 전라남도 담양에 있는 조선시대 최고의 園林(원림)이라는 소쇄원에 가보셨는지요? 광풍각, 제월당 같은 아담한 정자가 서 있고 애양단 담장 아래로 굽이쳐 흐르는 맑은 계곡물, 그리고 그 계곡을 건너가는 대숲 사이로 위태로이 걸린 다리라는 뜻의 透竹危橋(투죽위교). 어느 것 하나 취하고 버릴 게 없는 참 빼어나게 아름다운 정원이지요. 그곳에 가본 적이 있는 당신은 어쩌면 정원이 없는 동춘당의 단조로움에 무척 심심해할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전의 당신은 마치 보물찾기라도 하듯 곧잘 보이지 않는 것의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의미 밖에서 의미를 찾아내곤 했었다는 생각이 납니다.그나저나 왜 항상 봄 같으라는 堂號(당호)를 가진 이곳 동춘당에는 저 소쇄원처럼 멋진 정원이 없는 것일까요? 봄이 깃들 마땅한 장소가 눈에 띄지 않는 것 일까요?
오늘도 동춘당은 그런 의문에 아무 대꾸도 없이 그저 단정하게 앉아 있을 뿐 입니다. 균제미와 애써 치장하지 않지만 단아한 모습. 아마도 조선의 강골 선비 송준길의 기품이 이러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얼핏보면 쓸쓸하기까지 한 이곳에 행여 숨겨진 아름다움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선비정신이 아닐런지요?
동춘당에 없는 것은 정원 뿐만이 아니랍니다. 이곳엔 아예 굴뚝 조차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당신도 십장생이나 매난국죽이 아롱 새겨진 황후의 침전이었던 경복궁 교태전 후원 아미산 굴뚝 보셨지요? 화려함에 걸맞게 그 높이마져도 煙家(연가)를 제외하고도 260cm나 된다는 굴뚝. 그 굴뚝에서 쑥대머리처럼 헝클어져 흩날리던 것은 단지 굴뚝 연기 뿐이었을까요? 어쩌면 황후의 고독은 너무나 심오해서 길고 오랜 연소의 과정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는 우스운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