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66

별은 지고 (1)

등록 2003.03.04 14:40수정 2003.03.04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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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별은 지고

천의장에 난입하여 모든 식솔을 비명횡사케 한 흉수들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던 북의는 설사 자신이 지옥에 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복수하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흉수들을 예사롭지 않은 무공의 소유자였고, 자신은 무공이라곤 전혀 모르는 백면서생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선택한 방법은 복용하기만 하면 일약 절세고수로 변모할 수 있는 북명신단(北溟神丹)을 제련하는 것이었다.

그것의 주된 원료를 찾기 위하여 입김마저 얼어붙을 듯한 동토를 헤매기를 삼 년! 간신히 만년빙극설련을 찾은 그는 그곳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이 년을 기다렸다. 아직 덜 익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해서 얻은 만년빙극설련실(萬年氷極雪蓮實)은 북해의 냉기를 무려 삼천 년이나 흡수한 것이다. 실로 엄청난 음기를 지닌 극음지물(極陰之物)이었다.

따라서 사내의 몸으로 그것을 복용한다면 주화입마보다도 더한 처절한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다 한 덩이 얼음으로 화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여인이라 할지라도 예외가 아니다. 제아무리 강한 음기를 지녔다 하더라도 그것의 냉기를 제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복수를 하기 위해서 반드시 북명신단을 만들어야 하는 북의는 고심 또 고심을 하였다. 그러나 천하제일 음기를 지닌 만년빙극선련실과 음양조화를 이룰 물건은 세상에 없는 듯하였다.


있다면 전설처럼 전해지는 극양의 기운을 지닌 영물들과 하늘에 떠 있는 태양, 그리고 엄청난 화력을 지닌 화산뿐이었다. 영물은 삼천 겁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하는 엄청난 인연이 있기 전에는 구경조차 할 수 없는 것들이다.

사실 북의가 만년빙극설련실을 얻은 것만으로도 엄청난 기연을 만난 셈이다. 그런 물건이 있다는 것만 알고 막연히 북해로 향했다가 그야말로 우연히 찾은 것이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건 북의는 북명신단을 제련하는 것을 반쯤 포기하고 있었다. 방법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복수를 해야한다는 생각만은 버리지 않고 있었다.

그러던 중 문득 떠오르는 상념이 있었다. 극음과 극양은 완전히 반대되는 성질이지만 극과 극은 서로 통한다는 것이다.

며칠 후 북의는 무엇인가를 들고 길을 떠났다. 그런 그가 당도한 곳은 수만 마리나 되는 뱀들이 엉켜있는 사왕곡이었다.

사왕곡은 입구가 곧 출구인 곳이다. 두 개의 절벽이 차츰 오므라들면서 만들어진 호로곡과 같은 계곡이었던 것이다.

높이가 무려 백 장이나 되는 절벽 역시 위로 올라 갈수록 좁아지고 있었다. 그런 절벽의 위에는 무성한 송림이 있다. 그러므로 사왕곡은 바람이 거의 불지 않아 계절의 변화 멈춘 듯 사시사철 훈훈한 기운이 감도는 곳이다.

뱀들은 추운 겨울이 되면 동면에 드나 이곳은 그럴 필요가 없는 곳이다. 눈이 와도 절벽 위의 송림이 그것을 막기에 밑으로 떨어지는 법이 없었다. 솟구치는 열기에 의하여 녹은 물은 절벽을 타고 흘러내리는데 바닥에 닿을 때쯤이면 냉기를 잃을 정도이다.

북의는 사왕곡의 지형을 면밀히 살핀 뒤 수십 개의 틀을 설치하였다. 그것은 한번 들어가면 밖으로 나올 수 없도록 만들어 진 것으로 맨 아래에는 생쥐들이 들어 있었다.

다음 날, 틀 속에는 여러 마리 뱀들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쥐들은 살아 있었다. 뱀이 드나들지 못할 정도로 촘촘하게 엮은 또 다른 틀 속에 갇혀 있기 때문이었다.

뱀에게도 귀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퇴화하여 소리를 들을 수는 없다. 대신 지면을 통한 진동에는 매우 민감하다. 그리고 후각(嗅覺)은 매우 발달되어 있다. 뱀이 혀를 날름거리는 것은 냄새 입자를 운반하기 위해서이다.

그렇기에 겁에 질린 쥐가 찍찍거리면서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는 소리와 냄새를 맡고 계속하여 틀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쥐들의 숫자와 뱀의 숫자가 비슷해지자 잡아먹을 수 있도록 중간에 있던 틀을 잡아 당겼다. 그러자 쥐들은 즉각 잡혀 먹혔다. 도망가고 싶어도 도망갈 데가 없기 때문이었다.

며칠 후 북의는 갇혀 있던 뱀들을 풀어 주었다. 그러자 즉각 다른 뱀들을 잡아먹기 시작하였다. 독약 먹인 쥐를 잡아먹었기에 미쳐버린 것이다.

풀 중에는 광마초(狂馬草)라고 하는 풀이 있다. 이것은 말들이 좋아하는 풀과 아주 비슷하게 생겼는데 말이 이것을 먹으면 미쳐서 날뛰기에 광마초라 하는 것이다.

뱀은 육식을 하지 채식을 하지 않는다. 따라서 뱀에게 광마초를 먹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하여 북의는 쥐들이 좋아하는 곡식에 광마초의 즙을 뿌려 두었다. 하여 갇혀 있던 쥐들은 미쳐 있었다. 그러니 그것을 먹은 뱀들 역시 미친 것이다.

그래서 풀어놓자마자 다른 뱀들을 잡아먹기 시작한 것이다. 다시 며칠 후 또 생쥐들이 든 틀을 설치하였다. 그렇게 하여 수백 마리에 달하는 미친 뱀들을 만들었다.

틀에서 풀려난 놈들이 다른 뱀들을 잡아먹었기에 그대로 둔다면 얼마 안 가 사왕곡에서 뱀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이럴 즈음 계곡 깊숙한 곳에 있던 화관홍선사가 나타났다. 놈 역시 나타나자마자 뱀들을 잡아먹기 시작하였다. 불과 한 시진만에 수백 마리에 달하던 뱀들이 화관홍선사의 뱃속으로 사라졌다. 놈의 먹이가 바로 뱀이었던 것이다.

배부르게 먹은 놈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리고는 며칠 후 다시 나타나 또 뱀들을 잡아먹었다. 전에는 워낙 많은 수효의 뱀들이 있었기에 이렇게 하여도 큰 차이가 없었으나 이번엔 달랐다.

미친 뱀들 때문에 뱀의 수효는 현저하게 줄어 든 것이다. 대략 석 달 가량이 지나자 사왕곡에는 화관홍선사 이외에는 없었다. 미처 날뛰던 뱀들마저 놈의 뱃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이럴 즈음 북의는 노루의 목을 긴 끈으로 묶고 있었다. 화관홍선사를 유인하기 위함이었다. 노루가 마음먹고 도망가면 덩치 큰 화관홍선사로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 그렇기에 노루가 속력을 낼 수 없도록 조절하기 위하여 묶은 것이다.

사왕곡에서는 놈을 상대하기엔 위험부담이 크기 때문이었다. 그랬다가는 잡기는커녕 놈의 먹이로 전락할 것이기 분명하다. 그렇기에 만일의 경우 도주하기 편한 밖으로 유인하려는 것이다.

더 이상 잡아먹을 뱀이 없자 화관홍선사는 밖으로 나왔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노루로 유인하자 놈은 즉각 뒤를 따랐다.

노루로서는 생사가 걸렸으나 목에 묶인 끈 때문에 멀리 도망갈 수 없었다. 그러던 중 북의는 끝을 놓치고 말았다. 더 이상 노루의 행동을 통제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낙심천만한 북의는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다시 화관홍선사를 잡으려면 꽤 오랜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할 것이라 생각한 때문이다. 그러던 중 놀라운 사실을 알고 벌떡 일어났다.

놓친 끈이 화관홍선사의 이빨에 걸려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따라서 노루는 멀리 도망 가려해도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태로 며칠 동안 도주하던 노루는 너무도 지쳐 결국 잡아먹히고 말았다.

그 장소가 공교롭게도 북의가 머물던 거처 부근이었던 것이다. 노루를 잡아먹은 화관홍선사는 오랜만에 포만감이 드는지 똬리를 틀고 있었다.

뱀은 사람과 달리 먹이를 먹더라도 씹어서 먹을 수 없다. 그렇기에 그냥 통째로 잡아먹고 소화액을 분비시켜 소화한다. 이럴 때에는 별 움직임이 없는 법이다. 그리고 포만감 때문에 경계심도 약간 떨어진다.

이 순간을 노리고 있던 북의는 조심조심 다가가 검을 찔러 넣는 데 성공하였다. 그리고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제 북명신단을 제련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탕약에 있어서는 천하제일이라 자타가 공인하던 북의지만 모르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사람과 뱀은 신체 구조가 다르다는 것이다. 그는 검으로 찌르면 몸부림치다 죽을 것이라 생각하였던 것이다.

한편, 화관홍선사는 포식을 한 후 느긋하게 있던 중 지독한 고통이 느껴지자 즉각 반응하였다. 잠시 후 북의는 화관홍선사의 몸통이 죄어오자 비명을 지르며 검으로 마구 찌르고 있었다.

다 잡았다 생각하여 방심하다 화관홍선사에게 잡힌 것이다. 고통스러웠지만 자신을 해한 인간을 용서할 수 없던 화관홍선사는 더욱 세게 죄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 길지 못하였다.

엄청난 압력이 전해져오자 고통과 위기감을 느낀 북의가 혼신의 힘을 다하여 검을 휘둘렀기 때문이었다. 결국 화관홍선사는 죽고 말았다. 너무도 많은 실혈(失血)을 하였기 때문이었다.

몸통을 죄던 압력이 사라지자 북의는 재빠르게 움직였다. 하지만 멀리 갈 수는 없었다. 거의 반나절에 걸친 대혈전 때문에 완전히 탈진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북의는 대경실색하며 공포에 질리지 않을 수 없었다. 화관홍선사의 독아(毒牙)가 종아리를 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혼절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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