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고주몽 28

등록 2003.03.04 18:08수정 2003.03.04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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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졸본의 계로부는 결코 고립된 존재는 아니었다. 그들은 곧 가까이에 있는 다른 세력의 존재를 인지하게 되었고 모든 게 미흡한 단계에서 필연적으로 우호적인 자세를 취하게 되었다. 그 중 제법 큰 것이 졸본의 동쪽에 있는 소노부란 존재로서 이백 여명이 모여 사는 씨족사회였고 작은 촌락 수십 개가 소노부와 연관을 가지고 있었다.


졸본의 농토는 개간이 잘되지 않았고 그나마 수확을 기다리기에도 멀었기에 계로부는 사냥으로 잡은 짐승의 고기와 가죽을 소노부로 가져가 곡물과 바꾸곤 했다. 오래지 않아 계로부 사람들의 사냥 실력이 뛰어나다는 소문이 퍼졌고 소노부에서도 계로부 사람들에게 그에 합당한 후한 대접을 해주었다.

소노부의 지도자는 연타발(延陀勃)로서 아들 없이 세 딸을 두고 있었다. 첫째 딸과 사위는 몇년 전 있었던 말갈족의 습격 때 잃고 비류와 온조라는 두 손자만 남겼다. 둘째 딸은 월군녀라고하며 세 딸중 가장 재색이 뛰어나다는 얘기를 듣고 있었다. 연타발도 월군녀를 가장 아끼고 있었으며 항상 언니의 두 자식을 제 자식처럼 돌보는 그를 대견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이런 연타발에게 주몽은 더없이 훌륭한 신랑감으로 눈에 찍혔다.

하지만 그가 몰래 알아본 바로는 주몽은 이미 혼인한 상태이며 다만 급하게 고향을 떠나온 관계로 아내를 데리고 오지 못했다는 것뿐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주몽이 다시 아내를 데리고 오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눈치 챈 연타발은 이리저리 주몽을 떠보기 위해 월군녀에게 직접 주몽의 접대를 시키는 등 마음을 떠보고 있었다. 월군녀도 주몽이 싫지는 않아 아버지의 뜻을 적극적으로 따르고 있었다.

"이러다가 평생 이 좁은 졸본천가에 뼈를 묻는 거 아니오?"

협부가 예의 그 툴툴거림을 다시 드러낸 것은 동부여에서 부분노의 도움으로 식솔들이 옮겨온 지 삼개월 정도가 지나서였다. 막 첫 추수가 시작될 즈음이라 바쁜 사람들의 귀에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새 울음소리만도 못한 넋두리였지만 주몽 또한 마음이 급하기는 협부 못지 않았다. 주몽은 몰래 재사에게 자신의 이런 급한 속내를 털어놓았지만 재사의 말은 짧고도 단호했다.


"아직 그렇게 급하게 마음을 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이곳에 터를 잡은 지 오래지 않아 주변 촌락과 이렇게 친분을 쌓은 것도 장족의 발전을 이루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짧아도 삼 년, 길면 십 년을 내다보아야 합니다."

재사가 주몽에게 불안스럽게 느끼는 점은 의외로 이런 급한 마음에 있었다. 묵거는 노자의 말을 인용해 주몽을 달래었다.


"노자에 이르기를 '큰 네모는 모서리가 없으며 큰그릇은 늦게 만들어진다(大方無隔 大器晩成)'는 말이 있습니다. 큰 인물은 짧은 시간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부디 작은 것에 뜻을 두지 마십시오."

주몽은 이들의 말을 수긍하고 앞으로 군주로서 갖추어야 할 교양을 쌓기 위해 묵거와 밤늦도록 우리 고래로 전해오는 사서와 묵거가 한(漢)나라에게 들여온 책을 열심히 탐독하곤 했다.

졸본천가의 논이 황금색으로 뒤덮이고 벼 베는 사람들의 손길이 바빠질 무렵 흉흉한 소문이 들리기 시작했다. 몇 년전 이곳을 휩쓸었던 말갈족 무리가 수확기를 틈타 또다시 쳐내려 온다는 소문이었다. 이미 말갈족에게 딸과 사위를 잃은 바 있어 그에 원한이 깊은 연타발은 각 촌락에 사람을 보내어 공동으로 이에 대처하기로 마음먹었다. 이 소식은 계로부에도 전해져 주몽은 재사, 오이와 함께 소노부로 가서 대책을 논의했다.

"그들은 수많은 기병으로 단숨에 쳐내려 오며 독 묻은 화살을 병기로 즐겨 사용합니다. 이에 비하면 이리 졸본천의 촌락들은 그들에 비해 사람의 수는 많으나 싸움을 모르며 말의 수도 부족합니다."

연타발의 의견은 현실이 이러니 말갈족이 치고 올 부근에 목책을 세우고 방비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모두들 연타발의 뜻에 동조한다는 듯 말이 없자, 주몽이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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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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