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밖의 여성가장

여성가장에 대한 현실적 지원 및 정책개선이 필요

등록 2003.03.06 18:25수정 2003.03.06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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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실직여성가장 취업교육 중 제빵교육을 받고 있는 여성들

실직여성가장 취업교육 중 제빵교육을 받고 있는 여성들 ⓒ 강곤

얼마 전만해도 3월 8일이 ‘세계여성의 날’인 줄 아는 사람은 몇몇에 불과했다. 그렇지만 요즘 들어서는(여성부도 생기고 여성의 지위가 높아지면서?) ‘여성영화제’를 비롯한 쏠쏠한 구경거리들이 이 때를 맞추어 준비되고 진행된다.

그만큼 우리 사회 ‘여성’은 변화해왔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여성의 지위변화, 여성의 사회참여가 장관의 숫자로 낙찰되는 듯한 모양이 씁쓸한 것도 사실이다. 여성장관, 혹은 여성총리가 그러한 변화의 상징적 지표이자 계기는 될 수 있겠지만 전체 여성에 대한 인식과 정책, 사회전반에 대한 구조적 개선이 뒤따르지 않을 때 그것은 단지 한낱 “제스처”에 지나지 않는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변한만큼 가정에서의 역할도 변했다. 그리고 그 그늘에는 급속도로 늘어난 ‘여성가장’이 자리잡고 있다. 얼마 전만 해도 생소한, 실질적으로 가계를 책임져야 되는 여성가장의 수는 빠르게 늘고 있으며 연령 또한 젊어지는 추세다. 하지만 우리가 쉽게 텔레비전으로 접하게 되는 이들의 모습은 전문직의 ‘똑똑’하고 능력 있는, 그래서 남자만 빼놓고는 삶의 여유를 즐기는 여성들이다. 그렇지만 텔레비전 드라마 밖 대다수의 여성가장은 그렇지 못하다.

여성부의 발표에 따르면 총 이혼건수는 총 혼인건수의 3분의 1을 넘어선지 오래이며 20세 미만의 자녀를 두고 이혼한 경우가 70%에 이르고 있다. 따라서 학생 자녀를 둔 여성가장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중 저소득 모부자복지법에 의해 지원을 받는 가정은 불과 30% 정도이다.

모부자복지법은 배우자와 사별 또는 이혼하거나 배우자가 장애로 인해 장기간 근로능력을 상실한 경우, 배우자가 가출하였거나 실종, 장기복역 등에 처한 경우 등으로 일정 재산과 월소득이 기준에 미달할 때 저소득 모자가정으로 선정, 자녀학비 및 아동양육비를 지원하게 되어있다. 하지만 자녀학비는 중학생과 실업계 고등학생의 수업료와 입학금에 국한되고 아동양육비도 1인당 하루 525원에 불과하다.

보다 큰 문제는 여성가장의 자립·자활의 능력을 키울 수 있는 사업에서 나타난다. 여성부는 지난달 발간된 ‘2002 여성백서’에서 실직여성가장의 자영업 창업을 위해 107억원을 지원하였으며 여성가장실업자에 대한 취업훈련을 실시하는 한편, 여성가장을 고용하는 사업주에 대해서도 10여억원을 지원, 여성가장 고용을 촉진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문제는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여성가장의 창업지원비용이 저소득 모자가정의 자녀학비 및 양육비로 지원되는 95억원을 넘어서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여성가장의 취업교육은 1차에 한하여 40만원이 지원되는 것이 전부이다. 이에 대해 여성가장 취업훈련을 담당해온 관악여성인력개발센터 박대복 부장은 “가계를 책임지고 있는 여성가장에게 40만원은 넉넉하지도 않을 뿐더러 1차 교육과정에만 한정돼 2, 3차에서는 취업훈련을 스스로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실직여성가장 80~90%가 전업주부였음을 감안할 때 현실적으로 1차 교육 후 바로 취업 되는 일이 드물다는 점에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박대복 부장의 말대로 “생활에 여유가 있는 여성가장은 2, 3차 교육까지 받는 반면 그렇지 못한 여성가장은 교육기회 자체가 박탈되는 현실”이라면 이에 대한 정책적 개선안이 시급하다. 한편 여성가장 고용에 따른 사업주 지원도 고용안정센터를 통해 채용된 여성가장 1인당 월 60만원을 6개월간 지급하게 되어있지만 홍보 부족 등 여타의 이유로 실적은 미비한 실정이다.

이러한 여러 문제들에 대해 여성단체 한 관계자는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여성가장 취업관리와 함께 여성을 대상으로 한 의식교육이 중요하다”며 일상적인 관심과 노력을 주문했다. 또한 “여성이 가진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고 여성의 사회 참여율을 높이는 것이 선진국 도입의 관건이라는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중요한 것은 여성 명망가 몇 명의 출세나 관계 진출이 아닌 보다 여성 전반에 대한 지위가 향상되고 그로 해서 우리 사회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특히나 사회 안전망이 극도로 불완전한 우리 사회에서는 텔레비전에 등장하는 능력 있고 여유 있는 여성들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그렇지 못한 대부분의 여성들에 대한 지원대책과 정책개선이 우선되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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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기록에 관심이 많다. 함께 쓴 책으로 <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 줘>, <여기 사람이 있다>, <나를 위한다고 말하지 마>, <다시 봄이 올 거예요>, <재난을 묻다>, <말의 세계에 감금된 것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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