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가 대선 전 대북송금 시인했다면 노무현은?"

[한나라당 당권 주자 연쇄인터뷰(2)] 이재오 의원 ③

등록 2003.03.07 18:07수정 2003.03.07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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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정리/ 구영식 최경준 기자
사진/ 이종호 기자, 동영상/ 오마이TV 김정훈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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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이종호

한나라당 당 대표 경선 출마를 가장 먼저 공식 선언한 이재오 의원은 6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개인의 '호불호'를 떠나 이 시대의 흐름이 노무현을 선택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그러나 "만약 대선 전에 김대중 대통령이 (대북송금 사건을) 시인했다면 노무현씨가 대통령 될 수 있었을까"라고 반문한 뒤 "야당이 너무 오만해서 제대로 여당의 부정부패와 권력의 음모를 공격하지 못한 것 때문에 지난 대선에서 패배했다"고 주장했다.

"정부에 민주화운동 출신들이 많이 들어간 것은 역사의 발전"

- 노무현 대통령의 등장에 대해 의미를 부여한다면.
"시대의 흐름으로 봐야 하지 않나. 노 대통령에 대한 내 개인의 '호불호'를 떠나서 이 시대의 흐름이 노무현을 선택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 운동권 출신이 신주류로 등장하고 있다는 평가가 있는데.
"운동권도 다양하다. 60·70년대 반독재 민주화 투쟁의 흐름이 80년대 중반부터 이념화되면서 다양화됐다. 4·19 항쟁이 반독재 민주화 투쟁이었다면 6·3 항쟁은 반군부독재 민주화 투쟁에다 민족의 자주문제가 가미된 운동이었다. 우리는 그 때부터 30년간 내내 운동권 재야에 있었던 사람이기 때문에 노무현 정부가 운동권의 흐름 전체를 수용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60·70년대 운동했던 사람이 아닌 80년대 이후 학생운동에 참여했던 사람 중 일부가 참여하는 것이니까 운동권 출신 전부를 수용하고 있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민주화 운동했던 사람들이 많이 들어간 것은 역사의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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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이종호

- 지난 대선 패배의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국민의 마음을 읽는 데 실패했다. 노력을 더 많이 했어야 했는데 노력을 안하고 자만했다. 대선 이후 60일 동안 침묵한 이유는 패했으면 말이 없는 것이 당연했기 때문이다. 무슨 말을 하겠나. 한나라당 사람들은 각자 자기가 한 만큼 책임을 느껴야 한다."

- 대선패배 원인에 대해 네거티브 전략 때문이라는 평가가 있는데.
"그 말은 잘못됐다. 김대중 정부는 5년 동안 한나라당에 대해 네거티브 전략을 써왔다. 세풍 끝나면 안풍, 안풍 끝나면 또 무슨 풍, 계속해서 네거티브로 일관했다. 이회창 전 총재나 한나라당이 붙어서 싸우지 않으면 안되게 만들었다. 우리는 야당이기 때문에 제대로 네거티브 전략을 못쓴 것이다. 또 제대로 폭로를 해도 검찰이 수사를 하지 않았다.

만약 대선 전에 김대중 대통령이 (대북송금 사건을) 시인했다면 노무현씨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을까. 그래서 한나라당 공격이 철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내가 강하게) 나가려고 하면 '안된다. 가만둬도 되는데 뭐 자꾸 하느냐'며 (주위에서) 말렸다. 만약에 대선 전에 무고죄로 김대업씨를 구속했다면 결과가 이렇게 됐겠는가. 그런 점에서 나는 전혀 부끄럽지 않다. 야당이 너무 '다 됐다'고 오만해서 제대로 여당의 부정부패와 권력의 음모를 공격하지 못한 것이다. 제대로 공격 못해서 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와서 한나라당이 공격을 너무 했다고? 현장에서 몸으로 싸워보지 않은 사람의 말이 귀에 들어오겠나. 웃고 마는 것이지.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지금 김대중 정부가 물러났으니 더 말하지 않겠지만 내가 총무할 때 수많은 자료와 정보가 입수돼 있었다. 나와 함께 민주화 운동했던 사람들이 이렇게 부패하면 안된다는 차원에서 내가 분노한 것이다."

"내가 97년 신한국당 경선에서 이회창 후보를 공격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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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이종호

- 97년 신한국당 경선 당시 이 의원은 기자회견을 통해 이회창 후보의 병역문제를 공격하지 않았나.
"그 당시 내가 이수성 전 총리의 기획단장을 맡았는데 민주당으로부터 정보가 넘어왔다. 그래서 내가 경선 때 공론화하지 않으면 본선에 가서 민주당이 가만 두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박관용 사무총장이 내부의 문제라고 해서 덮었다. 만약 당시 한나라당 경선 때 그것을 문제화했다면 본선에서의 민주당 공격이 희석됐을 것이고, 대선에서도 패하지 않았을 것이다."

- 그 때는 문제를 삼다가 이번 대선 때는 사실 병풍을 방어하는 입장에 섰는데.
"내가 들어가 이회창 총재와 생활하면서 전말을 보니까, 두 아들 군대 안보낸 것에 대해 여러 가지 말은 있을 수 있지만 무슨 비리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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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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