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함께 하는 소설가 한승원

"바다는 우리 생명과도 같고 우리 삶의 가장 근원적인 생명체"

등록 2003.03.09 16:55수정 2003.03.11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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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한승원
소설가 한승원김성철
8일 오전 9시, 전남 장흥군 안양면 율산마을 '해산토굴'(海山土窟)에서 창작활동 중인, 소설가 한승원(韓勝源.64세)에게 전화를 걸어 인터뷰를 요청했다.

오후에 인터뷰를 하기로 약속하고 고흥에서 승용차로 10시 30분에 출발, 보성을 거쳐 장흥 '해산토굴'에 12시 30분에 도착했다.


정좌하고 있는 모습
정좌하고 있는 모습김성철
율산마을 뒷산자락에 터를 잡은 '해산토굴'에서 전방을 주시하니, 저 멀리 득량도. 소록도가 보이고, 가까이는 수문포. 회진포가 시야에 들어 왔다.

응접실로 초대받아, 바다소설의 무대가 되었던 득량만을 바라보면서, 고등학교 때 읽었던 소설 <앞산도 첩첩하고> (77년 창작과비평사 간) 책을 가방에서 내보이자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런 말이 없었다.

소설가 이문구 선생님이 타계(24일)하자 서울을 다녀온 후, 그 상심이 가시지 않았는지, 피곤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지만 2시간 가량 정좌자세를 취하며 끝까지 인터뷰에 응했다.

- 서울생활을 청산하고 '해산토굴'까지 오게된 계기는?
"바다는 우리 생명과도 같고 우리 삶의 가장 근원적인 생명체가 나오지요. 그래서 바다를 잘 알면 우리 삶의 원형을 알 수 있게 됩니다.

'해산토굴' 앞에서
'해산토굴' 앞에서김성철
예전에는 시골 사람들이 무조건 상경하였지만, 지금은 그렇지가 않아요, 서울에 살다보면 누구나 환멸을 느낄 겁니다, 개 같은 것들이 개 같은 소리를 짖어도 들어야 하는데, 여긴 그런 개 짖는 소리 안 들립니다. 조용히 명상하면서 창작에 몰두 할 수 있어 좋습니다."


- 바다가 이끄는 힘이 있습니까?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서울에 살다가 시골로 가면 자존심이 상할 것이라는 잘못된 편견을 갖는데, 각박한 서울생활을 하다보면 편협 된 생각에 의해 사고의 폭이 좁아 들지요.

시골에 살다보면 느림의 정서가 몸에 배입니다. 내가 느려서 재주를 넘지 않으니, 다른 사람들이 재주 넘는 것이 다 보여요. 내가 재주를 넘으면 내가 어지러워서, 다른 사람들의 재주를 볼 수 없어요. 바다는 여성적입니다 섬은 남성적이고요, 그래서 여성이 주체가 됩니다. 저기를 보세요.(득량만을 가리키며) 저 바다도, 저 들판도 서울의 축소판이고, 서울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이 이 우주에 담겨져 있습니다.

해산토굴 정경
해산토굴 정경김성철
- 이 곳에 살다보면 정보 문화에 소외되지 않습니까?
"97년에 내려와 지금까지 살고있지만, 현재는 서울에 살아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지요. 여기서도 모든 정보를 공유할 수 있고 우주와 교통 교각하면서 작품을 쓰고 있습니다. 작성된 원고가 있으면 우체국에까지 가지 않고도 인터넷을 통해 출판사에 우송 할 수 있고, 각종 이메일도 다 볼 수 있거든요. 지금은 글로벌시대라서 시공구분 없이, 모두가 한 울타리 안에 있습니다."


- 인터넷을 자주 하십니까?
"저가 인터넷 하는 것이 서툴러요. 저의 홈페이지 봤더니 무슨 그런 불법광고물이 판을 치는지, 그래서 후배를 시켜 폐쇄시켜 버렸어요. 인터넷은 믿지를 못하겠어요. 믿음이 가지 않아요."

'해산토굴'에서 내려다본 안개낀 득량도
'해산토굴'에서 내려다본 안개낀 득량도김성철
- 정보화 시대에 인터넷을 통해 작가와 독자간에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게 이뤄져야 하지 않습니까?
"사이버 공간에서 만나는 것보다는 진정한 독자라면 책을 통해 만나야 합니다."

- 초기작품 속에는 어민들의 치열한 삶과 한(恨)을 다루고 있는데요?
"전투 지향적인 삶을 살다보면 자기 자신을 놓치는 경우가 있지요. 노동자가 노동현장에서 싸우는 것만이 전투적이냐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농부나 어부나 이보다 더한 치열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경제개발 논리에 밀려 이런 문제들을 소홀하게 다루거나 외면하는 것은 죄악에 속합니다.

이런 우리의 삶에 대해 깊이 성찰하면서 문학으로 승화시켜 나가야지요. 문학은 개인적인 영원 속에서의 이루어진 창조물이라고 봅니다."

'해산토굴'에서 내려다 보이는 수문포해수욕장
'해산토굴'에서 내려다 보이는 수문포해수욕장김성철
- 현실참여 하는데 소극적이라며, 비판받은 적은 없습니까?
"이 늙은이가 촛불시위에 참여해야만 되는가요, 세상을 좁은 시야로 보거나 편협하다 보면, 일방통행이 되겠지요, 조용히 앉아 있다고 해서 눌러 앉아 있는 것이 아니지요, 실제로는 우주에 참여하고 있어요, 세상은 다함께 더불어 상생해야 하는데, 지금 미국을 보세요, 부시가 아프칸을 초토화시키고 나서 이라크를 때려부수려 하잖아요. 생명을 죽이는 것은 멸망입니다. 상생을 위해 우주적인 삶을 갖고, 열심히 글 쓰는 것이 역사의 소명입니다."

- 소설 <당신들의 몬도가네> 읽어보면, 80년 5월에 대해 심한 자괴감을 표출한 것 아닙니까?
"그때 살아남은 자들이 죽은 자에 대한 부채감 이라 할까요...안순누나, 기춘이, 기성이, 모두 이 시대의 아픈 산물이죠."

- 질곡의 역사를 살아오시면서 삶과 문학이 왜곡된 부분은 없습니까?
"자기 스스로 감추고 허위를 내보여서는 진실에 도달할 수 없지요. 출세를 위해 출신지도 바꾸는 세태이지요. 예술가는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드러내고 진실 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문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1900년대를 거쳐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우리 문학에 대해 깊은 반성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 문학이 군사독재정권을 거쳐오면서 삶의 근본을 잃어버렸어요. 이제는 물적 비대함보다는, 우리 삶에 대해 원형적인 문제들을 다루면서 삶의 철학으로 발전시켜 나가 야죠."

서재에서 꺼낸 <앞산도 첩첩하고> 책
서재에서 꺼낸 <앞산도 첩첩하고> 책김성철
- 얼마 전에 타계(2.25일)하신 이문구 선생님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문구와 나는 61년에 미아리에 있는 서라벌예대에 문예창작과에 입학하여 공부를 했어요. 동인활동은 하지 않았지만 작품실기 시간에는 같이 발표를 했지요. 박상륭, 이건청, 밀양에 살았던 이재금과 같이 다녔고, 조세희는 1학년 다니다가 2학년 때 경희대로 전학 갔어요.

문구 부친은 양반가문 이였는데 평등 이상주의를 꿈꾸다가 남로당 간부가 되었어요. 문구는 넷째 아들 이였는데 그의 부친과 형들이 일찍 돌아가시고, 문구를 돌보던 할아버지 마저 돌아가시자 어린 나이에 실질적인 가장이 되었어요. 막노동을 전전하며 그렇게 힘들게 살면서도 서라벌예대를 다니면서 동리(김동리)선생의 수재자가 되었거든요. 사제지간에 서로 이념 정치적 노선이 달랐지만 서로가 필요로 했고 상생을 했지요.

문구는 동리 선생을 이용하거나 배반하지 않았어요. 중요한 건 동리가 반공주의자였지만, 범부(김동리 형)가 민족주의자라서 친일은 하지 않고, 순수문학을 이여 나갔지요. 문구는 그 순수문학 정신을 계승 발전 시켜 나갔어요."

80년 5월 광주항쟁 소설집
80년 5월 광주항쟁 소설집김성철
- 소설가 중에 한 분이 조선일보에 칼럼을 기고했다가 배척을 당한 사실을 아십니까?
"저는 한겨레신문 딱 한 가지만 봐요. 그래서 그런 사실이 있었는지 조차도 몰라요."

- 노무현 참여정부가 출범초기부터 역풍에 흔들리는데, 이 점에 대해서?
"개혁의 대세는 흐름입니다. 국민들의 파워가 이를 뚫고 나갈 것입니다.

- 앞으로 작품구상이라든지 계획은?
내일 모레쯤 <초이스님>이 출간되고, 동화 <어린별> 집필중에 있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 현관에 걸린 '해산토굴'의 뜻을 묻자, "해산은 호이고, 토굴은 토굴속에 들어가 창작에만 전념하겠다는 뜻" 이라면서 <오마이뉴스>대해 깊은 관심을 표명했다.

꽃산하 놔두고 어디를 가는가
명천(鳴川) 이문구 형 영전에

꽃산하 놔두고 어디를 가는가/명천(鳴川) 이문구 형 영전에

아침 뜨락을 거닐면서 보니 춘란의 꽃대들이 소복차림 하고 올라오던데, 매화 산수유 철쭉 복숭아 살구나무들이 부산스럽게 꽃망울 터뜨릴 준비들을 하고 있던데, 이 사람 명천, 자네 미구에 펼쳐질 향기로운 꽃천지 떨쳐두고 어디를 그렇게도 황망히 가려 하는가.

미아리 고개마루 한쪽에 자리한 서라벌예대 강의실 드나들던 것, 동리선생이 “이 학생은 장차 탁월한 스타일리스트가 될 것”이라고 자네를 예언하던 것이 엊그제같은데, 우리들 벌써 하늘과 땅을 사이에 두고 헤어지려 한단 말인가. 내가 지금 왜 억장 무너지게 하는 이 슬픈 글을 써야 하는 것인지, 워드프로세서의 자판을 팽개쳐버리고 통곡을 하고 싶네.

명천 형, 자네 이것을 아는가. 나는 그 학교 옆의 돌산을 혼자서 거닐며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곤 하는 자네 모습을 늘 보았었네. 형은 그 시절부터, 마치 제비가 흙덩이와 마른 풀 오라기들을 물어다가 차지게 버무른 다음 침을 묻혀가면서 정교하게 집을 쌓아올리듯이 문장 하나하나를 쓰곤 했는데 그것이 그러한 부지런과 성실성으로부터 비롯되었을 터이네. 그리하여 우리나라 문학지도에다가,충청도 사투리를 맛깔스럽고 그윽하고 섬세한 정감이 슴배인 언어로 승화시켜 깊이깊이 새겨놓았네.

해방공간의 이념 갈등 속에서 아버지와 형들이 줄줄이 비명에 가고 유일한 비막이인 할아버지마저 쓰러지고 나자 하릴없이 한 집안의 소년가장이 되어버린 자네의 행장과 소설가로서의 대성은 입지전적인 일로 기록되어 마땅할 터이네.

1960년대 70년대,80년대의 군사독재정권의 터널을 관통해오면서 명천 형은 많은 어려운 일들과 관련을 맺고 있었지. 어떤 일이 하나씩 가시적으로 드러난 다음 그 이면을 더듬어보면 반드시 자네가 숨어 연출가 노릇을 하고 있었네. 명천 형은 자네의 소설 제목인 ‘매화 옛등걸’처럼 무수한 가지들을 뻗어 이런저런 새들이 날아와 놀고 깃들게 하곤 했네. 더러 소졸들이 들깨 참깨 구르는 재주를 부리려 하면 형은 순수한 성정이 무기일 뿐인 선승이 되어 악(喝)소리를 치곤 했네. 그러면서도 형은 거칠고 높은 목소리만이 아닌, 아름답고 고운 무늬로 직조된 웅숭깊은 순수한 예술세계를 펼쳐보이곤 했네.

이제 더욱 완숙해진 유려한 문장으로 삶의 드높은 구경을 보여주리라고 모두들 기다리고 있는데 ,그 먼 하늘길을 서둘러 떠나가려 하다니 이 무슨 흰 햇살 쏟아지는 한낮의 벽력같은 일인가.

형이 앉았던 자리가 너무 넓고 크게 텅 비어버리네. 형이 없는 그 빈 자리에서 우리는 어떻게 마음을 다잡아야 하는가. 떠남이 머무름이고 머무름이 떠남이라고, 자네 떠나갔지만 사실은 우리들의 영혼의 행간에,이 세상의 갈피갈피에 슴배어 머무르고 있다고 위안을 할까.

명천 형. 따지고 보면,먼저 가고 나중 가는 차이가 있을 뿐,결국에는 자네나 나나 모두 가야 할 그 명명한 곳 아닌가. 이승에 남아 있는 자들은 자네를 보내는 지금 슬픔에 겨워 있지만 오래지 않아 다들 일상으로 돌아가 하던 일들을 부지런히 이루려 할 것일세. 형의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딸도 한동안은 힘들겠지만 점차 마음 추스리고 듬직하게 자기 길 잘 헤쳐나갈 것일세.

명천 형,에끼 무정한 사람,자네 가고자 하는 길 부디 잘 가소. 뒤돌아보지 말고 훌훌 떠나가 명명한 저 세상에서 복락을 누리게나.(국민일보 2003년 02월 26일 참조) / 한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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