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봄이 고프다

양재동 꽃시장에서 만난 봄 이야기

등록 2003.03.09 23:34수정 2003.03.10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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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씨내라니아, 화분 하나에 3천원 안팎이다.

씨내라니아, 화분 하나에 3천원 안팎이다. ⓒ 김은주

토요일(8일)과 일요일(9일), 3월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맞으며 저는 우울했습니다. 따뜻한 남쪽에서 20년 이상을 살았기 때문에, 서울 사는 동안 종종 만나게 되는 3월의 눈에 영 적응이 되질 않았던 거지요. 꽃 피고 새 울어야 할 춘삼월에, 꽃바람이 불어도 시원찮을 판에 눈이라니. 남쪽에서 들려오는 동백꽃 소식에, 홍매가 향을 발하기 시작했다는 소식또한 제 마음을 달뜨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바야흐로, 봄에 대한 그리움으로 허기가 질 지경이었습니다.

멀리 갈 수 없다면, 꿩 대신 닭이라고 꽃시장에라도 가야겠다고 마음 먹은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a 꽃시장을 찾은 사람들

꽃시장을 찾은 사람들 ⓒ 김은주

양재동 화훼 단지에는 저 같은 마음으로 찾아온 이들이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작년 한 해 매출이 500억을 넘었다고 하는군요. 초록의 생명력이 살아 있는 것들을 곁에 두고 싶은 도시인의 마음은 다 똑같은가 봅니다.

“하나 들여가세요. 1000원밖에 안 해요.”

분화 온실 매장을 걸어가다 보니 앙증맞은 화분을 권하는 사람들 목소리가 발목을 잡습니다.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하다 보니, 걸음이 더뎌집니다. 화사한 난 화분들, 향이 좋은 천리향에, 삐죽삐죽한 선인장까지……. 이 곳에선 눈 내리는 3월 같은 건, 먼 나라 이야기가 되고 맙니다.

a 가랑코에.

가랑코에. ⓒ 김은주

a 이 꽃 역시 가랑코에의 일종이다.

이 꽃 역시 가랑코에의 일종이다. ⓒ 김은주

“아빠, 이제 그만 가자.”

아버지 팔에 매달려 온몬을 비트는 꼬마 아이는, 아직은 꽃의 향연을 즐길 나이가 못 되는 모양입니다. 화분에 코를 박는 아버지를 자꾸만 문으로 끌어가는 뒷모습을 훔쳐 보기도 하고, 다정한 노부부의 꽃시장 나들이가 보기 좋아서 한참을 쳐다보기도 했습니다.


꽃을 옆에 두고 있어서인지, 시장 사람들의 심성 또한 다른 곳보다는 한결 여유롭습니다. 사진을 찍어도 되겠느냐 물어 본 꽃집 주인들 전부가 흔쾌히 허락을 해 주시는군요.

꽃들을 눈으로 어루만지기를 한 시간쯤, 그제서야 봄을 그리던 마음이 조금쯤 가라앉아 주었습니다. 이젠 3월 말이 되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되지요. 구례로 가는 기차를 예매해 놓고, 2년 전 3월에 그랬던 것처럼 화엄사와 산동 마을과 화개를 거쳐 꽃나들이할 날을 기다리려 합니다. 그 때 내 마음을 한없이 요동치게 했던 남도의 봄꽃 사진 몇 장을, 님들께 드리고 싶습니다. 저처럼 봄이 고픈 분들의 마음 건강을 위해서 말입니다.


기꺼이 받아 주실는지요?

a 화엄사 마당의 매화나무 한 그루, 그 자태에 반하지 않을 강심장이 어디 있으랴.

화엄사 마당의 매화나무 한 그루, 그 자태에 반하지 않을 강심장이 어디 있으랴. ⓒ 김은주

a 봄을 머금은 목련 꽃송이, 그 송이 터지는 순간 한 계절이 새로이 열리나니.

봄을 머금은 목련 꽃송이, 그 송이 터지는 순간 한 계절이 새로이 열리나니. ⓒ 김은주

a 산수유로 유명한 구례 산동 마을 들어가는 길, 그 노오란 꽃송이들이 빛보다 더 고왔더랬다.

산수유로 유명한 구례 산동 마을 들어가는 길, 그 노오란 꽃송이들이 빛보다 더 고왔더랬다.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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