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넘게 걸린 초등학교 입학준비

등록 2003.03.11 09:16수정 2003.03.11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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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4일 발달장애 어린이인 딸 하은이가 서울 우이초등학교에 입학하였다. 다른 아이들 보다 2년 늦은 아홉살에 입학한지라 반에서 제일 키가 크면서도 굼뜬 아이가 되었지만, 내 딸이 학교에 입학하여 다니고 있다고 생각하니 열흘이 지난 지금도 신기할 뿐이다.

지난 2월에는 한햇동안 즐겁게 다녔던 유치원도 졸업하였다. 물론 4년 넘게 겨우 마쳐온 조기교실, 어린이집, 유치원에서도 만만치 않은 어려움들이 있었는데, 초등학교를 보내면서 막연한 기대감이 들기도 하고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발달장애 아들을 같은 초등학교에 보내 통합교육을 해온 선배 자모님은 입학식에 찾아와서 축하해주면서도 이제 '본격적인 고생 시작' 이라며 이것저것 당부해주신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장애인 가족, 특히 아이를 따라 매일 학교에 출석할 수밖에 없는 부모들이 다 그런 심정일 것이다.

입학하고 한 주일이 지나서 아내와 나는 먼저 안도의 한숨부터 내쉬었다. 앞으로 어떨지는 모르지만 공교육의 출발인 초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아직까지 장애아동들을 늘 따라다니는 이렇다할 사건(?)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장애인 네 명 가운데 세 명은 아직도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을 잘 알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내는 아이를 데리고 가서 교실 밖에서 기다리는 생활을 하면서 요통이 도지는 등 벌써부터 고통을 하소연한다. 다른 부모들도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을 따라 다니지만 그분들은 한두달이면 끝날 것이다. 신변처리와 등하교 능력이 불안한 딸아이를 따라 아내는 언제까지 교실 안팎에서 기다리며 초초하게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려할지 모른다.

이런 어려움을 예상하여 우리 부부를 비롯해 많은 장애아동 부모들은 특수교육보조원 등 통합교육 기반을 빨리 제도화 해달라고 공청회를 열고 국회, 교육부, 각급 교육청 등에 수차례 요청해왔지만 대답은 미미했다. 교육당국은 두 해 동안 시범운영이 필요하다며 조금씩 예산을 늘려가겠다는 계획이니 답답한 노릇이다.

입학 전에 학교 선생님과 있었던 안타까운 사연도 있었다. 지역사회에서 교류하던 교사들과 장애아동 교육에 대해 협력하고자 의견을 나눠 왔었다. 내 딸이 입학한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교사 한 분은 전교조의 '장애아동 담임맡기 운동'에 맞춰 언제라도 장애아동 담임을 맡겠다며 방학동안 특수교육을 공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선생님은 작년에 있었던 '3학년 학력진단평가'에 협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교육청으로부터 징계발령을 받고 다른 학교로 가야만 했다. 과연 교육현장에서 학부모와 교사간에 이뤄지던 자연스런 협력에 대해 징계발령을 낸 교육행정가들은 알기나 할까?

다행스럽게도 내 딸을 아는 선생님이 선뜻 담임을 맡아 주셨는데, 오랫동안 장애아동 참교육을 열심히 실천해온 분이었다. 장애 어린이를 초등학교에 보내는 학부모들은 취학전 보육과 교육차별 경험을 뼈저리게 느낀 나머지 좋은 선생님만을 만나게 되기만을 고대하게 된다.


학부모들은 제도적인 특수교육 지원이 없는 가운데 담임교사의 역할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아직도 장애아동 교육은 학교현장에서 제도적으로 뒷받침되지 되지 못하고 교사 개인의 헌신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주기도 한다. 이는 또 다른 차별이자 희생을 낳는다.

그래도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담임을 맡은 선생님을 만나 교육 동반자가 되어 교사, 학부모간 장애인 교육 협력 사례를 만들어 전파하자고 제안하려고 한다. '장애인 참교육', 대안교육의 희망을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지나간 이야기들도 빼놓을 수 없다. 비록 내 딸은 뒤늦게 학교에 들어감으로써 장애 유아기를 졸업하고 말았지만, 어린 장애유아들이 당하는 보육차별, 유치원 교육차별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딸 아이를 대신해 장애 어린이의 유치원 입학 거부 등 교육차별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한지 6개월이 되어 가는데도 좀더 기다려달라는 답장만 받았다.

그런 사이에 교육부는 '장애아동 무상교육' 원칙이 사립 유치원에서도 보장하도록 한다는 지침을 내려 보냈고, 복지부는 '장애아동 무상보육'을 전면화한다는 시책을 내놓았다. 이미 관련 당국자들은 빠져나갈 구멍들을 마련해 놓은 것이다.

그러나 정작 '사회적 약자' 중의 약자인 장애 유아들에게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과 평등권을 침해해온 우리 사회의 오랜 악습에 대한 반성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또한 무상교육·무상보육 이전에 장애어린이 인권 차원에서 먼저 차별이 철폐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어느 행정가의 입에서도 들어보지 못했다.

장애인 참교육을 열망하는 부모들이 내리는 결론은 장애아동 인권을 그저 '기다림과 예산'에 종속시켜온 행정가들을 믿고 한없이 기다릴 수는 없다는 것이다. 장애 어린이의 초등학교 입학 준비에 4년이 넘는 눈물겨운 노력이 필요했다는 의미를 교육당국자들은 부디 깨닫기를 바랄 뿐이다.

또한 아무것도 모르는 듯이 천진스럽기만한 내 딸을 보며 생각해본다. 그 아이는 발달장애 유아로서 수차례의 입학과 보육 거부를 당한 지난날 무엇을 느꼈을까? 4년에 걸친 배우기를 통해 겨우 어린이 티가 나는 얼굴로 처음 가본 초등학교 교실에서는 무엇을 바라보았을까?

지난 4년 동안 나는 장애인 딸아이의 눈으로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진면을 보게 되었다. 또한 그걸 바꿔 달라는 수 많은 아이들의 아우성을 여전히 듣고 있다. 우리 어른들이 사랑하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면, 아마도 돌들이라도 소리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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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장애인부모연대 <함께웃는날> 편집위원 장애인교육권연대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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