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길도댐 공사, 문화재법 위반

강제윤의 보길도 편지

등록 2003.03.12 12:16수정 2003.03.18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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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문화재청장 공문

문화재청장 공문 ⓒ 강제윤

단식 3일째, 몸도 마음도 점차 가벼워져 감을 느낍니다. 10년만에 다시 하는 단식이라 시작 전에는 약간의 걱정도 없지 않았지만 막상 돌입하고 나니 견딜 만합니다.

어제(3월 10일) 문화재 청장에게서 공문(문서번호 사적 86743-405)이 왔습니다. 공문에서 문화재 청장은 "보길도 윤선도 유적지 댐 증축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는 우리청과 아직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었다"고 했습니다.

문화재 보호법을 위반하고 보길도 댐 증축 공사를 강행하던 완도군의 위법 사실을 문화재 청장이 공문으로 확인해 준 것입니다. 완도군에서는 문화재청의 지시로 보길도 댐 공사를 일시 중지했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여전히 낙관적이지 못합니다.

어제 SBS 촬영 팀과 보길도 댐 증축 반대 활동을 촬영했습니다. '물은 생명이다'라는 프로에서 '댐, 봄 가뭄의 대책이 될 수 있는가'라는 제목으로 만드는 프로그램인데 처음에는 약간의 우려 때문에 촬영에 응할까 고민도 했지만 제작진이 댐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인 것 같아 응했습니다.

전날 촬영 팀이 완도군의 입장을 듣기 위해 군청에 들렀었는데 완도군청 상수도 계장이 보길도 촬영현장까지 따라왔더군요. 기존의 댐 부근에서 상수도 계장에게 항의를 했지요.

가뭄에는 42만 톤짜리인 이 댐에도 물이 차지 않아 제한급수가 불가피한데, 150만 톤 규모로 증축한들 물이 차겠느냐. 가뭄에는 무용지물이 되지 않겠느냐. 더구나 급수인구가 세 배 이상 늘어나고, 여름 피서철 20여일 동안만도 20만 이상의 관광객들이 몰려오는데 그때는 대책이 없지 않느냐.

가뭄으로 물이 차지 않으면 완도에서 배로 물을 실어다 날라 댐을 채우겠느냐. 굳이 고산의 문화유적을 훼손까지 해가면서 가뭄에 대책 없는 댐 증축을 해야만 하겠느냐. 해수담수화시설을 하면 문화재도 보호되고, 가뭄에도 안정적인 물 공급이 가능하지 않겠느냐.

그랬더니, 상수도 계장은 "우리는 물 공급에 문제가 없다고 본다. 문제가 있을지 없을지는 댐을 증축해봐야 알지 않겠느냐. 일단 공사를 끝내 보고 문제가 생기면 그때 가서 해결하자. 그러니 일단 댐 공사를 해보자. 문제가 발생하면 내가 책임지겠다." 그러더군요. 그래서 제가 말했지요.


"그게 말이 되는 소리라고 생각하느냐. 계장님은 그렇게 돈이 많으냐. 문제가 생기면 책임진다니. 대체 무엇을 책임지겠다는 말이냐. 공사비 270억원을 물어내겠다는 것이냐. 게다가 한번 훼손된 문화 유적지는 어떻게 복원할 수 있단 말이냐."

얼마나 무책임한 태도입니까. 어이가 없어서 화도 나지 않더군요. 그러면서 상수도 계장은 주민들의 의견을 더 듣기 위해 공사를 21일까지 중단하기로 했다고 말했습니다.


문화재보호법 위반에 따른 문화재청의 제지로 공사가 중단된 것을 마치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중단한 것처럼 말이지요.

완도군에서 이달 21일까지만 공사를 중단하고 그후에 다시 시작하겠다는 것은 실상 주민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적당히 문화재청과 협의하여 공사를 강행하겠다는 뜻에 다름 아닙니다.

하지만 공사 재시작 여부는 완도군청에서 결정할 사항이 아닙니다. 문화재보호법에 따르면 행정관청은 문화재 전문가 3인 이상의 문화재 훼손여부 검토 결과를 토대로 문화재청의 현상변경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이미 법을 무시하고 공사를 강행했던 완도군은 문화재청의 허가가 나와야만 공사를 시작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법 절차를 무시한 채 공사를 강행하겠다는 것이지요.

게다가 완도군청이 최근에 만들어 배포한 '보길도 상수도 시설 공사 추진 현황'에 따르면 보길도 주민들이 대안으로 주장하는 해수 담수화 시설을 크게 왜곡하고 있어, 주민 의견과는 상관없이 그대로 댐 공사를 추진할 계획임을 여실히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추진 현황'에는 해수담수화 시설의 장단점을 비교 적시했는데 장점은 단 두 줄뿐이고, 단점은 그보다 다섯 배나 많이 적고 있습니다. 하지만 완도군청이 해수 담수화의 단점이라고 말한 부분 또한 사실을 크게 왜곡하고 있습니다.

군청자료에는 "국내에선 1일 200톤 이상 규모의 생산 시설이 없으며 급수 인구 300명 내외의 일부 유인도서에만 시설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심각한 왜곡입니다. 이미 유동인구 포함 급수인구 2600여명인 제주도의 우도에서는 하루 1000톤 규모의 생산 설비가 가동되고 있습니다.

유동인구 포함 급수인구 3800명인 제주의 추자도에서도 500톤의 담수시설이 가동 중에 있으며 올해 다시 500톤 규모의 담수설비가 추진되고 있습니다.

a 댐이 들어설 예정인 부용동

댐이 들어설 예정인 부용동 ⓒ 강제윤

완도군청 자료에는 또 "수원 시설 등 대체 수자원 확보가 어려운 최악의 중동 국가나 작은 도서 낙도에 단기간 사업 효과를 도모 하고자 하는 사업으로 본 지역과는 전혀 현실적으로 맞지 않는 사업"이라고 주장합니다. 이 또한 사실 관계의 심각한 왜곡입니다.

담수화 시설은 중동국가만이 아니라 가까운 일본에만도 400 여 개가 있고, 미국, 캐나다, 대만, 싱가포르, 스페인 등 많은 나라에서 가동중입니다.

일본 오끼나와현의 경우 이미 1일 4만 톤 규모의 담수화 설비가 가동중인데, 우리나라의 수자원 공사에서는 대규모 담수화 설비 도입을 위해 견학까지 다녀온 상태입니다. 환경부에서도 금년에만도 도서지역 11곳에 해수 담수화 시설을 추진할 계획으로 있습니다. 거기에 추자도도 포함되는데 완도군에서는 아마 추자도는 우리 나라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오는 3월14일부터 일본의 사가 현에서는 '세계 물 포럼'이 열릴 예정입니다. 세계의 많은 도서 국가들이 참가하는 이번 '세계 물 포럼'의 의제가 바로 '해수담수화'입니다. 이렇듯 세계각국은 수자원확보를 위해 해수 담수화로 가고 있는 추세인데 완도군만이 시대를 역행하여 문화재와 환경 파괴, 물 부족을 초래할 댐 건설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보길도 주민들은 물이 생명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깊이 절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길도 사람들은 가뭄에 물 부족을 초래할 댐 증축을 반대합니다. 반대 또한 막연한 반대가 아니라 명확한 대안이 있는 반대입니다.

촬영을 끝내고 돌아가던 SBS 촬영팀의 PD가 그러더군요. 많은 곳을 다녀봤지만 보길도 주민들처럼 이렇게 평화롭게 반대 운동을 하는 분들은 처음 봤다구요. 제가 그랬지요. 법을 수호해야할 행정관청인 완도군청은 법을 위반해 가며 공사를 강행했고 주민들은 완도군청이 법을 지키라고 호소하는 것에서 이번 싸움의 본질이 드러나고 있다.

누가 더 도덕적인가는 명백해졌다. 우리는 어떠한 폭력에도 반대한다. 우리는 앞으로도 평화롭고 자기 희생적인 투쟁을 할 것이다. 보길도의 많은 주민들의 마음이 또한 저와 같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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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섬 활동가입니다. 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으며,<당신에게 섬><섬을 걷다><전라도 섬맛기행><바다의 황금시대 파시>저자입니다. 섬연구소 홈페이지. https://cafe.naver.com/islan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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