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학도 장애인의 ‘작은 승리’

나이 때문에 입학 거부당했던 김문재씨

등록 2003.03.12 18:56수정 2003.03.12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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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장애인 교육시설인 전남 영암의 한 특수학교에서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입학을 거부해 논란이 됐다. 목포시 상동에 사는 김문재(43)씨 등 시각장애인 3명은 영암군 삼호면에 있는 특수교육시설인 은광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지난해 11월 원서를 냈었다.

하지만 김씨 등은 한달 뒤인 12월 이 학교로부터 전남도교육청의 특수교육 운영규정에 따라 나이가 많기 때문에 입학 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a 시각장애 등 중복장애로  몸이 불편한 김문재씨.

시각장애 등 중복장애로 몸이 불편한 김문재씨. ⓒ 정거배

그러자 김씨와 목포경실련 등 사회단체는 나이를 이유로 장애인 입학을 금지한 것은 헌법에 보장된 교육받을 권리와 평등권을 침해한 조치라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하기에 이른다.

전남도교육청이 만들어 놓은 장애인 대상 특수교육운영 계획에는 연령제한을 유치원생은 만5살 이하, 초등부는 17살까지 그리고 중학교는 만 20살 이하로 입학제한을 두고 있다. 또 고등교육과정은 중학교 졸업자로 만 23살까지만 입학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나이제한 삭제 권고

이에 대해 당사자들은 장애인이 아닌 일반인들에게는 나이에 관계없이 각급 학교에서 입학을 허용하고 있는데 반해, 장애인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교육기회를 박탈하는 것은 인권침해라고 주장했다. 전남도교육청이 이런 지침을 마련한 이유는 나이가 많은 장애인이 함께 있게 되면 학습 분위기 등 수업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결국 국가인권위원회는 전남도교육청에 대해 김씨를 포함한 시각장애인 3명의 입학을 허용하도록 권고함으로써 결말이 났다. 이와 함께 국가인권위원회는 조만간 전체회의를 열어 나이가 많은 장애인 입학제한을 규정하고 있는 관련지침을 폐지할 것을 의결 한 뒤 교육인적자원부와 전남도교육청에 통보하기로 했다.


이밖에 이런 규정은 없어도 암묵적인 관행으로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장애인들의 교육기회를 제약하고 있는 사례에 대해서도 교육인적자원부가 조사하도록 요청하기로 했다.

왼쪽 팔 등 중복장애 시달려


마흔이 넘었음에도 고민 끝에 배움을 선택하게 된 김문재씨. 김씨는 시각장애(장애5급)과 지체장애(장애2급)라는 중복장애인이다. 시력장애는 선천적이라고 한다. 그가 어렸을 때는 시력에 이상을 느끼지 못했다. 중학교에 입학 한 뒤 칠판의 글씨가 가물가물 해지는 것을 알았다.

그때서야 눈에 이상이 있다고 판단한 김씨는 병원을 찾았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좀 더 일찍 증상을 알았으면 수술요법을 통해 치료가 가능했을 것이라는 의사의 말을 뒤로 한 채 병원 문을 나서야 했다. 지난 78년 16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그는 중학교를 졸업 한 뒤 진학을 포기하게 된다.

집안의 경제적인 어려움도 있었지만 시력 때문에 더 이상 수업을 받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당시에는 지역에 시각 장애인을 위한 특수교육시설이 있지도 않았다. 세상을 알기 전인 청소년 시절에 그는 장애인이라는 굴레를 쓰고 사회로 나왔다.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돈벌이에 나섰지만 이마져 여의치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교통사고까지 당하게 된다. 20여년 전 그는 뺑소니 차에 치어 다친 왼쪽 팔을 회복하기 위해 4차례에 걸쳐 대수술을 받았다. 무려 4년 동안 병원신세를 져야만 했다.

가전 수리점 운영하기도

그러나 결국 시각장애에 이어 왼쪽 팔을 제대로 못쓰게 되는 지체장애까지 겹치게 된다.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소아마비를 앓았던 부친을 기억하고 있는 김씨에게는 장애가 세상과 격리시키는 사실을 알기 시작했다. “적은 돈을 벌더라도 일을 해야 사는 맛이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에 그는 일터를 찾았다.

그러나 한쪽 손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실정이어서 그를 채용 할 회사는 없었다. 김씨는 “차라리 손은 온전하지만 다리가 불편한 사람은 취업하기가 쉬운 면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취업을 포기한 대신 병원치료를 받던 4년 동안 전자제품 수리관련 공부를 했던 경험으로 10여년 전 목포시내에 전파사를 차렸다.

열심히 살기 위해 불편한 몸으로 냉장고 등 큰 물건을 뒤척이며 수리도 했다. 하지만 이 일도 점점 어려워졌다. 소비자들이 가전업체 등 제품회사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추세로 바뀌고 제품이 몇 차례 고장 날 경우 고쳐 사용하기 보다는 새것으로 교체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이다.

그는 7년 만에 전파사 일을 접을 수 밖에 없었다. 그 후 특별한 돈벌이 없이 집에서 지내게 됐다. 장애인에게 주어지는 30만원 안팎의 생활보조비로 그는 한달 생활을 꾸린다. 어머니도 있지만 나이 많은 처지에 모친과 함께 사는 것도 짐이 될 것이라고 판단한 김씨는 15평규모 아파트에서 혼자 지내고 있다. 부자유스런 몸 때문에 혼자 사는 것도 힘든데 학교공부를 결심하기까지 많은 고민이 필요했다.

짐 되지 않기 위해 혼자 살아

김씨는 “사회단체 등에서 활동하다 보니 짧은 지식으로는 한계가 있어 늦었지만 진학을 결심했다”고 한다. 그러나 어렵게 결정한 만학의 꿈은 우여곡절을 거치게 된 것이다. 그는 “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교가 나이를 제한한다는 것은 미쳐 생각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지난해 12월 학교측으로부터 입학불허를 통보받은 뒤 밤잠을 설쳐야 했다. 장애도 서러운데 특수학교의 문턱이 높다는 현실을 확인 한 뒤부터 더욱 답답 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국가인권위원회 도움으로 입학하게 됐지만 그가 넘어야 할 세상의 장벽은 아직도 많다고 생각하고 있다.

김씨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공부할 의욕을 갖고 있는 장애인들에게 좋은 사례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목포경실련 김종익 사무국장은 “인근에 장애인을 위한 직업 재활시설이 없는 실정이어서 앞으로 정부차원에서 대책을 세웠으면 한다”고 역설했다.

김씨가 어렵사리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됐지만 고민거리는 남아있다. 기대했던 것 만큼 배울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정부가 장애인을 위해 생계비를 지원하는 것도 좋지만, 장애인들이 사회에 복귀 할 수 있도록 재활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에 관심을 가져 주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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