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73

북명신단 (3)

등록 2003.03.13 00:24수정 2003.03.13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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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오! 네가 이회옥이라는 말 도둑놈이었느냐?"

마굿간 귀퉁이에 앉아 졸고 있던 장한 역시 퉁명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말 도둑 운운하는 것을 보니 이미 소문이 퍼진 모양이었다.


"말을 잘 다룬다고 호법께서 이곳에 배속시키셨지만 여긴 여기대로 규율이 있다. 오늘부터 그만 두라고 할 때까지 말똥을 치워라. 만일 지저분하면 즉각 벌을 받게 될 것이다. 알았느냐?"
"예!"

너무도 살벌하였기에 이회옥은 짧게 대답하였다. 이럴 때 토를 달면 돌아오는 것은 매 뿐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날 이후 이회옥은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말똥을 치웠다. 이른 새벽부터 해가 저물 때까지 치웠지만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었다. 허리가 휠 지경이었지만 불평하거나 내색하지 않고 묵묵히 말똥을 치우면서 분위기를 살폈다.

이회옥는 순순한 혈통을 지닌 순종 대완구는 태극목장에만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철마당에는 무려 일천오백여 마리에 달하는 대완구들이 있었다.

사람의 직급에도 고하가 있듯 말에도 등급이 있다. 대완구가 특급이라면 당나귀는 최하급에 속한다. 최상급인 대완구는 웬만한 사람보다도 나은 대접을 받았다.


그것들은 무림천자성의 최고위 수뇌부들과 순찰원의 고수들, 그리고 정의수호대의 대주들에게만 제공된다 하였다. 그러면서 만일 티끌만치라도 말에 이상이 생기면 작살날 줄 알라 하였다.

이 말에 이회옥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대완구라면 어릴 때부터 같이 생활했기에 누구보다도 습성이나 특성을 잘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상이 생기고 싶어도 생길 수 없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배가 고팠던 이회옥은 별 생각 없이 당근을 씹으며 바닥에 건초를 깔고 있었다. 대완구들이 다른 말들보다도 더 청결한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너, 이리 와봐!"
"예?"

"지금 입에 물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
"이, 이건 다, 당근인데요…"

"이런 빌어먹을 놈이? 야, 임마! 너 뒈지고 싶어? 어디서 감히… 어떤 놈이 너 더러 그걸 먹어도 좋다고 했냐?"
"예? 그, 그게…"

"당장 대가리를 박는다. 실시! 말을 먹이려고 준비한 것을 중간에서 가로 채? 어쭈구리…? 이 쥐방울만한 놈이? 어서 대가리 안 박아? 지금 나하고 한번 해 보자는 것이야?"
"앗! 아, 아닙니다. 바, 박습니다."

이회옥이 허겁지겁 바닥에 머리를 박자 처음 철마당에 배속된 날 보았던 장한은 그렇지 않아도 심심하던 차에 잘 되었다는 듯 괴소를 베어 물고 있었다.

"야, 임마! 제일호법이 뒤를 봐준다고 눈에 뵈는 게 없냐?"
"예? 무, 무슨 말씀이신지…?"

"어쭈 이놈이…? 누가 모를 줄 알아? 순찰원에 있던 비천혈영이 네놈을 이리로 보냈다는 걸 모르는 줄 알아?"
"……!"

"제일호법은 네놈에게 망아지들을 돌보게 하라 하셨지만 난 그렇게 못한다. 흥! 네놈은 죽을 때까지 오로지 말똥만 치우게 될 것이다. 알겠어?"
"……!"
"어쭈! 이놈이 이젠 대답도 안 해? 아니꼽냐? 꼬우면 일찍 들어오지. 일찍 들어왔으면 이런 꼴 안 당하잖아."

철마당은 당주 휘하에 스물여덟 개의 향(香)이 있다. 각 향에서 각기 일천여 마리의 말을 관리하는데 제일향과 제이향에만 대완구가 배속되어 있다.

이곳에는 마리 당 은자 사천 냥은 족히 나가는 대완구를 조련하는 곳이기에 철마당에서 가장 말 다루는 솜씨가 뛰어난 자들이 배속되어 있다. 이러한 제일향과 제이향에는 철칙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나중에 배속된 자는 먼저 배속된 자의 명령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언제부터인지 먼저 배속되었다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기득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뒷짐을 진 채 머리를 박고 있던 이회옥은 땀을 비 오듯 흘렸다.

제일향에 배속된지도 어느덧 한 달이 넘었다. 그 동안 숱하게 대가리를 박았지만 이상하게도 이것만은 적응이 되지 않아 머리를 박고 있으면 땀이 쏟아졌다.

"흥! 네놈이 비천혈영의 광마(狂馬)를 길들였다고? 흥! 보나마나 무슨 수작을 부렸겠지? 대체 무슨 수작을 부렸기에 우리가 그토록 길들이려 해도 들일 수 없던 놈을 길들인 것이냐?"

이 말을 들은 이회옥은 지난 한 달간 조련사들이 왜 자신을 그토록 못살게 굴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네놈이 그 미친 말을 길들였다고 해서 우리가 얼마나 야단을 맞았는지 아느냐? 빨리 말해라! 대체 무슨 수를 써서 그 미친 말을 길들인 것이냐?"
"……!"

이회옥은 내심 실소를 머금었다. 사실 비천혈영이 데리고 온 망아지는 훌륭하게 길들어 있었다. 다만 사람을 태우기만 하면 미친 듯이 날 뛴다는 것이 문제였다.

처음엔 정도가 덜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정도가 점점 심해져 나중에는 조련사들이 가까이 다가가기만 해도 물어뜯거나 뒷발로 걷어차려고 하였다. 그렇기에 광마라 불렸던 것이다.

처음 비천혈영으로부터 대완구를 길들이라는 명령을 받은 이회옥은 며칠 동안 건초 등 먹이를 주면서 면밀히 살폈다.

그것은 야생인 상태에서 생포된 것이 아니었다. 다시 말해 사람의 손에 의하여 어릴 때부터 자란 망아지였다. 그렇다면 아무런 이유 없이 그처럼 흉폭할 수는 없다 판단하였다. 하여 며칠 동안 살피기만 하였다. 말이 날뛰는 이유는 단 세 가지뿐이다.

무엇인가를 보고 놀랐을 때와 몹시 귀찮게 굴었을 때, 그리고 병들었을 때였다. 사람도 병에 걸렸을 때 누가 와서 계속하여 귀찮게 굴면 역정을 낸다. 말도 그와 같은 것이다. 하여 혹시 어디 불편한 곳이 없는가를 살폈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도 이상을 발견할 수 없었다.

여전히 신경질적인 상태였기에 먹이를 주면서 아주 조금씩 가까이 다가갔다. 그렇게 보름 정도가 지나자 망아지는 더 이상 이회옥을 경계하지 않았다. 올라타려는 기색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이후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살펴보다가 이상한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말 등에 작은 상처가 아문 흔적이 보인 것이다. 무성한 털 속에 있기에 웬만한 관찰력으로는 발견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이 무엇인가를 살피던 이회옥은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잠시 후 그는 안장의 안쪽을 면밀히 살피고 있었다.

그런 그의 입가에는 회심의 미소가 어려 있었다. 안장의 안쪽에 바늘 하나가 들어 있었던 것이다. 평상시에는 보이지 않으나 사람이 올라타면 그 무게에 의하여 대략 반 촌 가량이 삐져 나오게 되어 있었다.

비천혈영의 안장은 금박이 입혀져 있는 극상품이었다. 그렇기에 다른 것으로 교체하지 않고 계속 그것은 얹었던 것이다. 따라서 사람이 탈 때마다 예리한 침이 튀어 나왔기에 미친 듯이 날 띈 것이다.

이것이 계속되자 나중에는 안장을 얹지 않거나 다른 안장을 얹었을 때에도 미친 듯이 날뛰었다. 사람이 타기만 하면 통증이 느껴진다는 학습이 된 것이다.

아무튼 이회옥은 바늘을 제거한 뒤 안장을 얹고 사람이 올라타도 아무런 통증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쳤다. 그렇기에 비천혈영이 무사히 탈 수 있었던 것이다.

"어쭈! 어서 말 안 해? 무슨 수작을 부렸는지 어서 말해!"

말 다루는 것만큼은 이 세상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자부하던 장한은 이회옥이 어떤 방법으로 길들였는지가 몹시 궁금했었다. 지금껏 묻지 않은 이유는 알량한 자존심 때문이었다.

그러나 궁금함을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물어보려 오던 중 당근을 먹고 있는 것을 보고 일부러 트집을 잡은 것이다. 그리고는 그 동안 체면 때문에 묻지 않았던 것을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묻고 있는 것이다.

"으으으! 바, 바늘…"
"뭐라고? 방금 뭐라고 했냐? 다시 말해 봐!"

"으으으! 바, 바늘…"
"뭐? 바늘이 어떻다고? 에이, 빌어먹을 놈! 일어나서 말해봐!"

장한의 말에 이회옥은 한숨을 몰아쉬며 일어섰다. 그에게 있어 머리를 박고 있는 것은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휴우…!"
"허튼 수작 부리면 작살날 줄 알아! 어서 말 해봐! 어떻게 아무리 해도 말을 안 듣던 어떻게 그 미친 말을 길들였냐?"
"말이 그런 건 안장에 바늘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이회옥은 하나도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이야기하였다. 이야기를 모두 들은 장한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한번이라도 안장을 자세히 살펴보았다면 비천혈영이 내걸었던 은자 이백 냥을 상금으로 받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화월루(花月樓)에 있던 춘홍이를 기적(妓籍)에서 빼내 알콩달콩 정겹게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을 그렇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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