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고주몽 38

등록 2003.03.15 13:20수정 2003.03.15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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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류국의 왕 송양은 자신의 행차에 쓰일 기치와 휘장을 둘러보며 흡족해했다. 자신이 왕위에 오른 이후로 이렇게 공을 들여 행차를 준비한 적이 없을뿐더러 다른 나라의 땅에 발을 들여놓는다는 것 또한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폐하 아뢰올 것이 있사옵니다."


해위가 송양의 곁으로 바싹 다가와 일렀다.

"저들이 우리를 끌어들인다는 것은 결코 좋은 뜻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마땅히 이에 대비해서 무기를 숨기고 들어가 대응해야 할 것입니다."

송양은 크게 웃으며 해위의 말을 물리쳤다.

"저들이 그렇게 간교한 수작을 부려 나를 해친다고 해도 우리 백성들이 이를 따르지 않을 것이오. 비류수가는 복병을 숨겨놓기에도 적당하지 않은 곳이니 미리 정찰을 해둔다면 능히 대비할 수 있을 것이오."

송양도 인물은 인물인지라 생각하는 바나 담력이 아랫사람과는 달랐다. 해위는 그렇지 않다며 옛 고사를 얘기했다.


"옛 중원의 송(宋)나라에서는 양공(襄公)이 자국의 영토 안에다가 제후들을 모아 회의를 개최하고 맹주가 되려 했습니다. 이를 아니꼽게 본 초(楚)나라에서는 대군을 동원해 송나라를 공격했습니다. 초나라가 송과의 국경인 홍수 부근까지 진군해 왔을 때 송나라에서는 이미 방어진을 구축하고 기다리고 있었고 그 앞에서 초군은 대열이 혼란된 상태로 강을 건너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을 본 자어라는 신하가 '우리 군사의 수가 적지만 적이 강을 다 건너기 전에 공격하면 이길 수 있습니다.'라고 진언했사오나 양공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에 초군은 간신히 강을 건넜지만 좀처럼 전열을 정돈하지 못하고 있었고 이에 자아가 다시. '이때야말로 공격할 때입니다.'라고 재촉을 했으나 양공은 여전히 들은 채도 하지 않았습니다. 초군이 모든 진열을 정돈했을 때 양공은 공격명령을 내렸고 병사의 수가 적은 송군은 크게 패하고 말았습니다. 자어가 왜 자신의 말을 듣지 않았냐고 묻자 송양은 '군자는 상한 자에게 더 큰 고통을 주지 않으며, 머리가 흰 노병을 포로로 하지 않는다. 내 비록 망국의 자손일지라도 대열을 갖추지 않은 적을 향해 북을 치지 않는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주군께서는 이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송양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대의 비유가 절묘하나 내 생각과 같은지 우선 부위염의 말을 듣고 싶네."

부위염은 옆에서 떫은 표정을 짓고 있다가 마지못해 대답했다.

"그때 자어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하옵니다. '치욕스러웠던 과거를 밝히고 전쟁을 가르치는 것은 적을 죽이기 위함이다. 만일 상처를 더하게 하는 일을 마음 아프게 생각한다면 처음부터 상처를 입히지 않으면 될 것이요. 노병을 포로로 하지 않으려면 처음부터 항복하면 된다.' 제 생각도 그러하옵니다만......"

부위염의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송양은 무릎을 탁 쳤다.

"그대의 뜻 또한 나와 같구려! 미리 대비해서 나쁠 것은 없지 않소!"

부위염은 '지금 우리는 고구려와 전쟁을 벌이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란 말을 뒤로 삼켜야 했다.

이런 고민은 고구려도 마찬가지였다. 가짜 왕궁을 세우는 일은 어렵지 않게 끝났지만 병사들을 동원해 기습해야 한다는 월군녀의 말은 차츰 영향력이 커지고 있었다. 심지어는 오이조차 저들이 어찌 나올지 모르는데 미리 대비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조언을 하기도 했다. 묵거는 한사코 말렸다.

"이번 일은 먼저 칼을 뽑아드는 쪽이 지는 것입니다. 저들이 행여 힘으로 나갈 것을 택했더라도 능히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묵거의 말에 주몽이 마음을 돌리지 않자 월군녀는 자신의 심복 장수인 소조를 불러 가만히 일렀다.

"비류수까지 다다르는 길에 수풀이 우거진 곳이 딱 한곳 있다. 그곳에 50기의 경기병을 데리고 매복하고 있다가 비류국의 왕이 오거든 단숨에 목을 베어 가지고 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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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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