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에서 이슬람을 만나다

중앙 이슬람 성원에서

등록 2003.03.16 16:03수정 2003.03.16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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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앞에서 본 이슬람 성원의 모습

앞에서 본 이슬람 성원의 모습 ⓒ 김은주


봄비가 내리는 일요일(16일) 오전, 이슬람 사원에 다녀왔다. 토요일(15일) 밤, 광화문을 지나다가 반전 집회에 여념이 없는 이들을 지나온 것도 내가 그 곳에 가는 데 한몫 했을 것이다. 전경들에게 둘러싸인 채, 교보문고 앞 길에서 옹색한 집회를 벌이고 있는 그네들을 나 역시 구경꾼처럼 스쳐 지나가고 있었던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기도 했겠지.

이슬람 사원은 용산구 한남동에 자리잡고 있다. 정식 이름은 '중앙 이슬람 성원'이다. 9.11테러 직후에는 한국인이 그 곳을 들어가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경찰이 출입을 통제했다던 그 때로부터 6개월여가 지난 지금, 그 곳으로 가는 내 발길을 머뭇거리게 하는 것은 이유를 알 수 없는 두려움에 긴장하고 있는 스스로에 대한 답답함 뿐이다.


a 그림 같은 아랍의 글자, 이 곳에 들어오는 이들을 축복하는 말일 것이라 짐작만 할 뿐.

그림 같은 아랍의 글자, 이 곳에 들어오는 이들을 축복하는 말일 것이라 짐작만 할 뿐. ⓒ 김은주


한남동의 이슬람 성원은 1976년에 세워진 건물이다. 부산, 경기도 광주, 안양, 전주에도 성원이 세워져 있다고 한다. 하얀 색 건물에 기둥은 이슬람 고유의 무늬로 장식되어 있는데 입구에 씌어 있는 아랍어와 함께 이 곳이 어디인가를 분명히 말해 주고 있다.

내가 성원에 들어섰을 때는 마침 예배 시간이라 바깥에 나와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주로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의 이주 노동자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다. 문 밖에서도 그이들이 예배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내는 소리인데도 웅성웅성대거나, 시끄럽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적과 고요를 더 깊어지게 만드는 소리로 여겨진다. 아마도 코란을 함께 읽고 있는 듯 했는데, 빗소리에 녹아드는 그 소리가 좋아서 한참 동안 귀를 대고 있었다.

a 여자 우두실(화장실)의 모습이다. 아랍 사람들의 특별한 습관 덕분에 휴지나 휴지통은 볼 수가 없고 대신 변기 옆에 수도 시설이 아주 잘 되어 있다.

여자 우두실(화장실)의 모습이다. 아랍 사람들의 특별한 습관 덕분에 휴지나 휴지통은 볼 수가 없고 대신 변기 옆에 수도 시설이 아주 잘 되어 있다. ⓒ 김은주


성원 안에 들어가는 것은 상관없으나, 예배실까지 들어가는 것은 싫어할 수도 있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거기까지 가서 건물만 보고 돌아올 수는 없었다. '여성 전용'(예배실 들어가는 입구도 남자와 여자가 따로였다. 이슬람이니까.)이라고 써 있는 문을 통과해 2층으로 올라갔다. 발소리 죽여서 살금살금 올라갔더니, 너른 예배실에 5, 6명의 사람들이 둥그렇게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신자도 아니면서, 호기심으로 기웃대는 내 주제가 죄송스러워서 그냥, 문 밖에서 한참 동안 앉아 그이들이 나누는 음악 같은 아랍어를 들었다.

a 지난 12월, 광화문에서 만난 늘봄이. 제법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지난 12월, 광화문에서 만난 늘봄이. 제법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 김은주


"…죽으려고 그곳에 가느냐는 물음들에 이렇게 대답하곤 했습니다. 살기 위해 간다고, 더불어 살기 위해. 인간방패가 되려고 길을 떠나냐고 묻는 이들에게 이렇게 답했습니다. 평화의 증인이 되기 위해 간다고. 파괴자가 아니라 파괴당하는 자의 눈으로, 죽이는 자가 아니라 죽어가는 자의 눈으로, 전쟁을 일으킨 남성이 아니라, 상처입고 희생당하는 여자와 아이의 눈으로 파헤쳐지고 오염될 그 오랜 강과 대지의 눈으로, 하루 아침에 잿더미가 될 그 오랜 바그다드 문명의 눈으로 그 전쟁을 기록하고 싶습니다. 해서 저는 살고 싶습니다. 살아서 돌아오고 싶습니다.…"


그 음악 속에서 영신 언니 얼굴을 떠올렸다. 지난 3월 6일 이라크를 향해 떠난 늘봄, 시원 두 아이의 엄마 영신 언니가 불쑥, 눈앞에 나타났다. 제대로 살기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이라크로 떠나간 많은 사람들, 그이들도 그 곳에서 이 음악 같은 말을 듣고 있으려니, 했다.

지난 겨울, 광화문에서 만난 늘봄이는 촛불 한 자루를 소중하게 가슴에 품고 그 너른 아스팔트 길을 엄마와 함께 걷고 있었지. 평화를 위해 떠난 엄마의 길을 다 이해할만큼 자라지 못했으니까 많이 울 수밖에 없을 녀석이 떠올라서 괜시리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했다.


성원 밖으로 나왔을 때도 여전히 비는 내리고 있었다. 예배를 마친 사람들이 기둥 언저리에 기대 서서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서 있다. 광화문에서 만나는 누구에게라도 'NO WAR!'를 외쳐 댄다는 누군가처럼, 그이와그렇게 인사할 배짱은 내게 없어서 그냥 눈인사만 나누고 돌아서 나왔다. 이라크에, 이슬람 땅 전부에 평화가 빗물처럼 내리는 그런 날이 오기를 기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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