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터지지만 나는 감자를 심는다

한 해 첫 농사는 감자농사다

등록 2003.03.19 05:55수정 2003.03.20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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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특별했던 올해의 감자파종


어두운 창고 속에서도 봄이 온것을 알고 싹이 제법 자라 있었다.
어두운 창고 속에서도 봄이 온것을 알고 싹이 제법 자라 있었다.전희식
며칠 전에 감자파종을 했는데 올해는 여러 가지 면에서 특별했다.

우선 날짜 선택에 있어서 각별했다. 3월 10일과 11일 이틀 동안 괭이 한 자루로 50여 평 밭에 감자를 심었다. 이날을 나는 제법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 왔었다.

3월 10일과 11일은 생명역동농법에서 말하는 뿌리작물을 심는 날이었던 것이다. 이제까지 파종을 할 때는 꼭 달이 차기 전에 하고 추수는 달이 기울기 시작할 때 했었다. 그래야 발아가 잘 되고 수확물이 쉬 썩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년 가을부터 접하기 시작한 독일의 유명한 교육자이자 생명역동농업의 창시자인 루돌프 슈타이너 박사는 태양계의 운행과 지구광물의 상관관계로까지 농사의 영역을 넓혀 설명을 했고 나는 크게 공감이 되었었다.

특히 <자연과 사람을 살리는 길>이라는 저서에서는 지구과학이나 천체학 측면에서 우주생명의 탄생과 생장, 그리고 소멸을 경이로울 정도로 잘 분석해 놓았다. 목성과 토성의 공전주기가 농사에 미치는 영향과 파종시기를 선택하도록 하고 있다. 이것이 생명역동농사력이다. 매년 독일에서 발행된다.


지난달 말에 정농회 사무국에서 올해의 생명역동농사력 3,4월치를 보내 왔을 때부터 나는 밑줄을 쳐 놓고 이날을 기다렸던 것이다. 이 생명역동농사력은 할머니가 다 된 슈타이너 박사의 외동딸 마리아 툰(Maria Thoun)이 수십 년 전부터 제작을 해 왔는데 그녀가 몇 주 전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 속으로 고인의 명복을 빌었었다.

이날 일찍 나는 노심초사하며 보관해오던 씨감자 박스를 내왔다. 저온에 잘 보관해야 감자가 썩거나 싹이 나 버리는 일이 없기에 일반 농가에서 씨감자를 보관하기가 쉽지 않지만 무슨 작물이든 제 땅에 난 것을 제 땅에 심는 게 제일 좋다. 씨감자를 신경 써서 보관해온 것도 이 때문이다. 달력을 봤더니 음력으로 이월 초여드레였다. 파종하기에 기가 막히게 좋은 날이다.


감자농사를 더 늘려 잡은 이유

감자를 하나씩 논 위로 재를 한 주먹씩 놔 주었다.
감자를 하나씩 논 위로 재를 한 주먹씩 놔 주었다.전희식
날짜뿐 아니고 올해 감자농사는 규모에 있어서도 파격적이다. 다시 100여 평이나 더 심을 작정이다. 작년에 감자 맛이 워낙 좋다보니 주변에서 먹는 사람마다 칭찬이 자자했었다. 어제 야마기시공동체 농장에서 씨감자 두 박스가 추가로 도착했다. 작년에도 이 종자를 갖다 심었었다. 다들 남작이란 종자를 심어서 소출을 많이 내지만 이 수미라는 종자는 소출은 적지만 잘 썩지 않고 2기작도 가능하다. 올해는 감자농사로 벌이도 좀 잘 해 볼 생각이다.

여러 가지로 새로운 시도를 하는 셈이다 보니 작업과정 하나하나에 신경이 많이 쓰인다.

기름 사용하는 기계는 종류를 불문하고 밭에 들이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역시 괭이로 골을 다듬고 두둑을 쳤다. 가급적이면 땅을 많이 파지 않는 선에서 지표토가 손상되지 않게 했다. 6년 가량 완전 유기농을 하다보니 땅이 부드럽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여름에 나는 잡풀들도 이전만큼 독하지 않다. 제초제 치는 밭은 잡초들이 내성이 생겨서 얼마나 억센지 모른다.

괭이로 하다 작은 호미로 바꿨다. 감자 북을 하고나서는 모아 둔 낙엽들을 골고루 펴줄 작정이다. 작년에 감자밭아랑 고추밭을 너댓 번이나 매면서 허리가 끊어지는 줄 알았다. 겨울 동안 낙엽을 틈만 나면 긁어모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겨울 동안 아궁이에서 모아 두었던 재에다 감자 눈 딴것을 버무려 두고 거름을 먼저 놨다. 거름 역시 우리 생태화장실에서 만들어낸 똥을 소재로 하여 각종 농사부산물을 썩힌 것이다. 거름공장에서 사다 쓰는 사람들도 있는데 믿을 수가 없다. 폐타이어 조각이 나오기가 일쑤라고 한다.

감자를 하나하나 거름 위에 한 뼘 간격으로 놓은 다음에 재를 한 리어카 끌고 와서 감자 씨 있는 곳에다 한 주먹씩 놔줬다. 이래야 감자가 잘 자리는 영양분이 된다. 재는 작물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영양소지만 해충에게는 독이다. 재를 오래 만지다 보니 장갑 속으로 스며들어서 땀과 섞이면서 손이 좀 따가워졌다.

어떤 식으로든 생산에 참여해야 할 텐데

일을 각자 하지만 새참을 같이 먹는다
일을 각자 하지만 새참을 같이 먹는다전희식
생명역동농사력은 달이 기울기 시작하는 음력 보름 이후부터는 뿌리작물의 파종시기가 참 까다롭다. 3월 20일 오전 8시나 또는 21일 오전 5시에서 6시 사이. 25일 밤 23시. 이렇게 나와 있다. 이 시간을 최대한 맞춰 심어야겠다.

유기농에서 최근 보급되고 있는 탄소농법을 올해는 나도 시도해볼 생각이다. 밭에 100m 간격의 삼각형 위치에 서너 자 깊이로 땅을 파서 숯을 묻는 농사법이다. 탄소와 규소가 땅 속에서 하는 역할에 대해서도 생명역동농법에서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하늘기운의 통로라고 한다.

농사란 이렇게 할 때 비로소 농자는 천하지대본이라고 큰 소리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땅과 공기 그리고 물이나 여러 곤충 등 우주 삼라만상의 생명기운이 성해진다. 사람의 삶도 자연의 공격을 받지 않게 될 것이다.

얼마만큼 소득을 얻느냐는 현실적인 문제가 남아 있다. 내 정성과 노력, 나아가 우주와의 소통이 시장에서 달랑 가격표 하나로 평가되는 것은 거부한다. 그렇다고 똑 소리 나는 대안이 마련되어 있지는 않다. 작년에 내가 지은 농산물 중심으로 쇼핑몰을 하나 만들까 하다가도 이런 점 때문에 포기했었다.

상품의 질과 가격으로만 평가되는 자본주의 시장은 참 야만적이다. 그래서 감자의 생산과정에 어떤 형태로든 참여한 사람에게 이 감자를, 내 땀과 정성을 나누고 싶은 것이다. 화폐 이상의 그 무엇을 소통하고 싶은 것이다. 쉬운 일은 아니다. 오늘도 유기농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전남 장성 한마음 공동체에 모여 이런 문제에 대해 종일 의논을 했었다. 비자본주의적인 시장을 어떤 식으로 만들까 하는 문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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