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선 보다 어색한 농기계와의 만남

이 농기계가 나를 타락 시키지는 않은까 걱정

등록 2003.03.28 07:47수정 2003.03.28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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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잠들기 전부터 다시 로타리를 칠까 고심했다. 새벽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떠올린 생각도 그것이다. 그러면 세 번째가 되는데, 밭을 세 번씩이나 갈아엎는다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다. 서투른 기계조작으로 밭이랑을 제대로 타지 못했다는 게 자꾸 마음에 걸린다.


'아세아 다목적관리기'. 이 농기계를 사기까지 얼마나 망설였는지 모른다. 그 망설임의 여파는 지금도 계속된다. 기계 값도 기계 값이지만 7년여동안 계속 괭이 한 자루로 농사를 지어왔는데 이제 와서 기계를 밭에 들인다는 게 내 신념이 무너진 것 같기도 하고 생태농업의 오점이 된 것 같기도 하다.

처음 동네 이장이 하지감자 놓느라 며칠 째 괭이자루 휘두르는 내게 감자는 올해 몇 평이나 할 거냐고 물을 때는 별 생각 못했었다. 또 무슨 훈수를 하시려고 저러나 싶으면서도 한 150여 평 심어 볼까 한다고 했더니 대뜸 한다는 말이 로타리 치라는 것이었다. 200평에 3만 5천원이면 잡초까지 말끔해 진다는 것이다. 돌이켜 생각하면 이장의 잡초까지 말끔해 진다는 말에 내가 덜컥 걸린 것 같다.

1차로 50여 평에 감자를 놓으면서 북주기를 두 번은 해야 되는데 딱 그때에 비라도 온다면 어쩌지? 그때는 베어 깔 풀도 별로 없을 땐데 어쩌지? 겨울에 긁어 놓은 가랑잎이나 솔가지들도 모자랄 텐데 무엇으로 덮어주지? 내내 이 걱정이었었다.

이미 밭에 보란 듯이 무슨 아우성처럼 돋아나고 있는 잡초들이 이미 내 기를 꺾어 놓고 있는 터라 더 내가 흔들렸는지도 모른다. 지난겨울 탐독했던 가와구치 요시카즈(川口由一)의 저서와 한살림에서 나온 후쿠오카 마사노부 책을 뒤지면서 풀과 함께 짓는 농사법을 다시 점검 해 보았다. 흔들리는 나를 붙들기 위한 저항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봐야 내가 지금까지 해 왔던 농사법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았다. 귀농운동본부에서 나오는 책들과도 대동소이 한 내용이다. 올해는 자신이 없었다. 노동력에서 도저히 따라 갈 자신이 없었다.

이때부터 근 1주일 정도는 경운기에서 관리기로, 관리기에서 전문로타리 대행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오락가락했다. 이장은 경운기 대가리만 사서 하라고 했다. 관리기보다 힘이 세다는 것이다. 10마력은 너무 크고 8마력짜리로 사라고 했다. 농협 융자조건까지 자세히 설명했다. 단일 품목을 심는 법이 없이 삼사십 가지나 되는 품목을 무슨 백화점처럼 다양하게 섞어짓는 나는 그때그때 필요한 만큼 밭을 일군다.


대형기계를 불러다 로타리 쳐 봐야 감자 심고 나머지 땅은 풀이 무성해질게 뻔하다. 경운기나 관리기를 사기로 작정한 결정적인 이유가 이 때문이다. 내가 필요한 만큼 땅을 일구기 위한 것이다.

여러 작물을 섞어짓기를 하는 것은 병충해 방지와 토양 보존 목적이다. 양지작물과 음지작물 또는 냄새가 진한 작물과 유약한 작물 등 궁합이 맞는 작물끼리 한 이랑씩 심으면 우선 병충해가 예방된다. 키가 작은 고구마 밭이나 콩밭에 키가 엄청 큰 수수를 듬성듬성 심거나 밭 둘레로 병풍처럼 옥수수를 심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섞어짓기를 하는 가장 큰 목적은 노동력을 분산시키기 위한 것이다. 단일 품목은 노동력이 집중되기 때문에 파종이나 김매기 추수 등 모든 과정에서 기계에 의존하여야하고 비닐이나 제초제의 유혹이 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가 경운기와 경합을 벌인 끝에 관리기로 낙착을 보게 된 것은 내 밭은 힘 센 기계가 필요 없다는 생각이었다. 7년 유기농사로 땅이 워낙 부드러워져 있어서 관리기 부속장치도 쟁기는 사지 않고 로타리기와 골 타는 장치만 사기로 했다. 관리기를 사기로 한 여기가 끝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으랴.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이때부터 중고냐 새것이냐. [아세아]냐 [국제]냐 아니면 더 싼 [대동]이냐를 놓고 농기계센타를 돌아다니고 시운전도 해보고 다른 귀농 선배들에게 묻기도 하면서 결국 가격이 2 십만 원 가량이나 차이가 났지만 국제관리기를 제치고 아세아관리기를 선택했다. 그것도 새것으로.

농협에서 대리점 사장이랑 130만원 대출 신청서를 작성하고 별도로 현금 70만원을 건네면서 나는 내가 타락하는 거 아니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기계를 들이면 기름 들고 수리비 들고 엔진오일 사야하고 지렁이랑 땅개랑 다 죽고 빚 늘고 그러다보면 돈 되는 농사 쪽으로 마음이 기울게 되는 것이 악순환 된다고 믿어 왔기 때문이다. 농사지어서 이 관리기 값 200만원 어떻게 버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작년 봄에 받은 농자금을 기한 내에 못 갚고 지금 연 15% 연체이자가 붙고 있는데 봄이 되니 농사는 지어야 하고 갑자기 가슴이 콱 막히는 기분이었다.

관리기는 샀지만 절대 비닐은 치지 않겠다. 관리기도 최소한으로만 사용하겠다고 몇 번 씩 다짐을 하면서 감자 심을 곳에 로타리 작업을 했다. 군청 농업기술센타 직원이 나와서 자세하게 사용법을 설명 해 줬는데도 이랑이나 고랑이 삐뚤빼뚤 해서 로타리를 두 번째로 쳤는데 신기하게도 잡초가 다 뽑혀나서 일단은 후련했다. 구굴기를 달아서 골타기를 하다가 오른쪽 구굴기가 빠져 도망을 치길래 로타리 축이 부러졌나 가슴이 철렁했지만 다행이 핀만 빠져 달아난 것이었다. 귀농선배가 한 말이 떠올랐다. 농기계는 워낙 무식하게 만들기 때문에 엔진오일 자주 갈고 비만 안 맞히면 니 평생 쓴다고 했던 말이.

며칠 전 따 놓은 씨감자 눈에서 싹이 제법 났지만 세 번째가 될지도 모를 로타리 작업을 또 할까 말까 망설이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이랑과 고랑이 삐뚤거리는 것은 전혀 문제가 아니다. 가와구치 요시카즈 책에 의하면 처음에 두둑을 칠 때는 쟁기로 밭을 갈 수 밖에 없는데 이랑의 넓이를 제각각으로 다양하게 만들라고 했다.

그 이유는 두고두고 재배 할 작물들을 머릿속에 떠 올리면서 좁은 이랑 넓은 이랑에 섞어짓기를 어떤 어떤 작물들로 할 것인지 또한 윤작까지 고려 할 때 이랑이 어떤 모양새들로 만들어져야 하는지 설명된 대목이 기억나서이다. 그러면 두 번 다시 밭에 기계를 넣지 않고 그 이랑들을 유지한 채 농사부산물로 피복만 하면서 농사를 지을 수 있을 것 같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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