틱낫한 스님과 함께한 3일간의 명상수련

들이 쉬면서 평안이요. 내 쉬면서 미소라

등록 2003.04.01 00:52수정 2003.04.01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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틱낫한 스님과 그의 제자 분들. 그리고 참석한 300명의 수련자들과 함께 나는 3일간 천안의 국립청소년 수련원에서 명상수행을 했다. 명상수련에 대한 일반인들의 선망 또는 냉소와는 달리 틱낫한 스님과의 명상수행은 쉽고 단순한 것이었다. 쉽고 단순한 가운데 삶의 깊은 이치가 큰 울림으로 참석자들의 가슴에 메아리쳤다.

3일째 되는 마지막 날의 마지막 순서였던 5계 수계식은 모든 참석자들의 자발적인 참여 속에서 장관을 이루었다. 그토록 쉽고 부드러우면서도 큰 산처럼 단단한 모습이 틱낫한 스님의 캐릭터로 각인되는 3일이었다.


숨쉬기부터 다시 배우다

이곳에서의 수행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 너무나도 소중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예 잊고 사는 것들을 하나하나 되살리는 연습이었다고 할 수 있다. 숨쉬기, 걷기, 말하기, 밥 먹기, 웃기 등을 배웠다. 컴퓨터하기, 자식 키우기, 듣기, 운전하기, 전화하기 등도 배웠다. 우리의 수행은 입을 닫기, 귀를 열기, 나를 일깨우기, 부모와 화해하기 등에서도 진전을 보았다. 그렇다고 신입사원을 대상으로 실시되는 매너리즘에 빠진 예절교육이었다는 말은 아니다.

지금까지 전혀 읽어 본적 없는 말이나 전혀 들어 본적 없는 가르침은 단 하나도 없었다. 내가 모르는 것이 새삼스레 등장하지도 않았다. 다만 잊고 있던 것들이었다. 내 본성에 다 있는 것들을 단지 잃었기 때문이라고 틱낫한 스님은 일깨워 주었다.

나는 흙 묻은 괭이를 던져놓고 바지가랑이도 제대로 털지 못한 채 버스와 기차를 몇 번씩 갈아타고 수련장으로 갔었다. 나는 다짐했다. 3일간은 세상 걱정 다 내려놓고 틱낫한 스님을 시봉하는 행자처럼 살아야지. 뭘 배워서 그걸로 세상살이 잘 해 봐야지 하는 생각일랑 접어두고 그곳에서의 3일이 지상에서 제일 행복한 인생이 되게 하자. 온전히 집중하고 충분히 기뻐하자. 나는 또 이렇게 흔들리면서 즐거이 인생 수선공장으로 가는구나. 생각마저도 멈추자 이 3일은.

둘째 날 오후시간에 나는 오열했다.
틱낫한 스님의 프랑스인 수제자 Peggy 스님이 설법하실 때였다. 새만금 갯벌의 무수한 생물종이 처한 위기를 말 할 때와 지하쳘에서 생긴 참사와 그 혼령들에 대해 말할 때 가슴이 미어져 왔다.


프랑스 스님의 애절한 기도가 한반도의 분단에서 빚어지는 고통에 이르러 꼭 통일을 이루라는 간절한 염원으로 이어질 때 조국이 처한 애통한 현실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통역을 하시던 젊은 선생님도 울먹이느라 한참을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항상 깨어 있으면 즐겁습니다


어떤 수련 프로그램이든 마찬가지지만 틱낫한 스님의 프로그램에서도 삶의 이치에 대한 부분과 그 실현의 방편에 대한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번 명상수행의 핵심은 ‘항상 깨어 있으라’는 것이었다. 우리가 깨어 있을 때 과거의 상처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으며 미래의 불안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깨어 있다는 것은 지금의 여기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했다. 지금의 여기란 바로 내가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 잠시 타이핑을 멈추고 차를 마시는 것. 저려오는 가부좌한 다리를 펴고 가볍게 주무르는 것이라고 했다.

수행 끝에 우리가 도달하는 곳도 결국은 ‘지금의 여기’라고 하셨다. 지금의 여기에 온전히 당도하는 것이 바로 정토라고까지 말 하셨다. 그렇다면 ‘지금의 여기’에는 어떻게 집중 할 수 있는가?

틱낫한 스님은 깨어있기 위해 ‘지금의 여기’에 집중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편을 일러 주시었다. 그것은 들이 쉬는 숨과 내 쉬는 숨을 잘 알아채고 느끼는 것이라고 했다. 숨을 들이쉬면서 배가 불러 오는 것은 잘 바라보고 내 쉬면서 배가 꺼지는 것은 온전히 보라고 했다. 들이쉬면서 알아채고 내 쉬면서 이완하라고 했다. 들이쉬면서 평화를 이루고 내 쉬면서 미소 지으라고 했다.

들이쉬면서 발을 내 딛고 내 쉬면서 발바닥으로 대지와 포옹하라고 했다. 온 발바닥이 온전히 대지에 접촉되도록 걸으라고 했다. 틱스님은 숨을 들이쉬면서 내 가슴의 빈 공간을 바라보라고 하셨고 내 쉬면서 무한한 자유로움을 보라고 하셨다. 틱낫한 스님은 숨을 들이 쉬면서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라고 했다. 내 쉬면서 내 인생에 미소를 보내라고 했다.

생각으로 호흡을 끌고 가지마라

나는 호흡을 잘 살펴보는 문제에 대해 아주 중요한 깨우침을 얻었다. 의식이 호흡을 절대 끌고 가서는 안 되고 느낌은 호흡을 반 발자국 뒤 따라 가야 한다는 깨우침이다. 호흡을 지켜본다는 것이 자꾸 숨을 단전에 밀어 넣게 되는 식으로 나는 10여년이나 그렇게 해 왔던 것을 해결 할 수 있었다. 들숨으로 인식하고 날 숨으로 해체하는 식의 수식법을 내 식으로 정리하게 된 것도 큰 보람이다. 억지로 숨을 아래로 끌어 내릴 일이 아님을 알았다.

며칠을 안 먹고 안 마셔도 살지만 단 몇 분만 숨을 안 쉬면 살 수가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 하나 뭘 어떻게 가려 마셔야 하느냐에 대해서는 과민하게 신경을 쓰지만 어떻게 숨쉬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숨을 내 행동과는 어떻게 연관 시켜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더 무관심하다. 아니 무지하다. 자기가 숨을 쉬고 있는 사실조차 모르고 산다. 숨 쉬고 있는 것을 알아채는 것이 항상 깨어 있음이요. 정토에 도달 한 것이라는 틱낫한 스님의 말이 경이롭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항상 깨어 있는 사람은 운전을 하면서 빨간 신호등을 만나면 이 신호등이 내 갈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로서가 아니라 내 숨을 알아채는 기회로 삼는 법이라고 했다. 항상 깨어있는 사람은 휴대폰 벨이 울리면 성급하게 받기 전에 전화를 건 그 누군가에게 먼저 미소부터 보내게 된다고 했다.

아침에 이를 닦으면서도 깨어 있는 사람은 칫솔의 감촉에 살아 있다고 했다. 그래서 깨어 있는 모든 순간은 즐겁다고 했다. 기쁘다고 했다. 깨어있는 모든 순간은 세상을 변화시킨다고 했다. 깨어있는 그 숨길 따라 부처님이 내 속으로 영접된다고 했다.

우리가 숨 들이쉬는 것을 아무도 막는 사람이 없다. 역시 우리가 숨 내쉬는 것을 막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고, 아무도 우리가 미소 짓는 것을 막는 사람이 없다. 우리 자신이 우리 자신을 조직하면 될 뿐이다.

묵언 수행이 주는 고요함

수련회 첫날에 아는 사람을 세 사람이나 만났고 둘째 날, 셋째 날에도 아는 사람을 만났다. 그러나 우리는 ‘고귀한 침묵’으로 묵언하라는 스님의 말씀대로 얘기를 나누지 않았다. 묵언 수행이 참 좋았다.

대개 영성(명상)프로그램에 가면 쉬는 시간에 잡담들이 벌어져 수련시간의 기운이 흩어지는 경우들을 종종 보아 왔다. 이건 이렇더라 어디 갔더니 저렇더라 등등의 잡담들은 수련이 깊어지는 것을 막는다. 묵언수행은 이런 면에서 수련에 효과적이다. 무엇보다도 3일간 묵언 수행을 하면서 내 입이 충분히 쉬고 있다는 것이 복인 것 같았다. 대신 자연히 내 귀가 부지런을 떨었다. 묵언은 늘 마음을 고요하게 해 주었다.

내가 틱낫한 스님을 처음 접한 것은 8년 전이었다. '아봐타'라는 명상프로그램에 참석했을 때 참석했던 어느 분으로부터 책을 소개 받았는데 그게 우리나라 최초로 번역된 틱낫한 스님 책이었다. 그 책에 소개 된 틱 스님이 베트남 해방전쟁에서 취한 태도와 처신이 감명 깊었다.

베트남 민중들에 대한 인식 전환의 시초는 20여 년 전 읽은 베트남 소설이었다. '사이공의 흰옷'이라는 책이다. 반세기를 프랑스의 식민지로, 그리고 세계 최강 미국과 20년을 싸워 끝내 물리친 민족적 자긍심을 볼 수 있는 책이었다.

줄곧 영어로 말하던 틱낫한 스님이 수계식 때는 베트남어로 반야심경을 외셨다. 베트남정부로부터 추방당한 후 한시도 잊을 수 없었을 모국어로 독경하시는 틱스님의 목소리가 내 가슴을 울렸다.

내 모든 과거 인연들과의 화해하기

셋째 날 오전시간에 ‘부모와 화해하기’가 있었는데 처음에는 좀 고개가 갸웃거려 졌었다. 크게 공감이 안 되었던 것이다. 부모 뿐 아니고 먼 조상들과 간절히 화해하는 순서가 진행될수록 나는 나도 모르게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과거의 모든 인연들과 화해를 시도하게 되었다. 진행자의 의도가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상관없이 내식으로 수행이 진행되기 시작한 것이다. 과거의 인연들은 좋고 나쁨을 떠나서 그것들이 오늘 내 존재의 근원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나를 몽둥이로 때려 이틀간 혼절하게 했던 중학교 때 국어선생과 화해했다. 고등학교 때 컨닝의 누명을 뒤집어쓰게 되어 죽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솔직히 털어 놓으면 다 용서 해 주겠다고 다그치는 그 화학 선생이 성인이 된 후에도 여러 차례 내 꿈속에 나타나 나를 괴롭혔었다. 화해는 상대와 무관하게 진행되었다. 용서하지 못하고 있는 나와 화해를 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반대로 과거의 내 인연들께 빌어야 하는 용서들이 줄줄이 떠올랐다.

내 과거 모든 인연들의 맺힌 고리를 풀어나가면서 두 눈이 젖어왔다. 화해하지 못하고 삼십 여년을 내 가슴 구석에 담고 사느라 이토록 가슴이 무거웠었나 싶을 정도로 가슴이 후련해졌다.

이번 수행은 틱낫한 스님의 높은 공력과 행사 주최 측이나 진행을 맡은 젊은 스탭진들의 정성과 헌신이 아주 돋보였다. 꼭 한가지의 아쉬웠던 점은 조별 토론에서였다.

틱낫한 스님의 제자분이 두 분씩 조별로 참석한 토론이므로 수련자들이 자기 자신을 잘 챙겨보는 시간이 되기에 좋은 기회였음에도 주제에서 벗어난 자기과시적인 발언들이나 진행자의 지적에도 막무가내로 발언을 독점하는 경우들이 있었다.

한 조가 40여명으로 되는 관계로 자기소개를 두 문장 정도로 해 달라는 진행자의 요청이 두 번이나 계속되는데도 아직 마침표를 안 찍어서 한 문장도 안 했다면서 근 10분이나 발언 한 사람이 있어서 안타까웠다. 어떤 사람은 굳이 영어로 질문을 하기도 했다. 의사진행에 대한 발언으로 시간을 허비한 것도 아쉬운 대목이었지만 다 수행과정의 한 단계라고 보여 졌다.

내 수련을 방해 했던 것은 딱 한 가지였다. 틈만 나면 상상 속에서 오마이뉴스 기사를 쓰는 것이었다.

자기를 찾아 나섰던 사람들이 스스로 길이 되어 돌아갔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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