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어어! 어어어어…!"
놀랍게도 비룡은 발굽에 박힌 편자를 이용하여 못을 박고 있었다. 그리고 디딜만해지면 그 위를 딛고 다음에 디딜 곳의 못을 박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말이 발굽으로 못을 박고 있었던 것이다.
"세, 세상에! 저, 저건 말도 안 돼! 어떻게 말이…"
이 순간 뇌흔의 뇌는 텅 비어 버렸다. 무엇을 생각해야할지 조차 생각나지 않는 그런 순간이었던 것이다.
"좋았어! 이번엔 뱀이야. 자, 풀숲에 뱀이 있어. 어떻게 할래?"
말에서 내린 이회옥은 미리 준비해 놓은 포대 속에서 꽃뱀 몇 마리를 꺼낸 뒤 비룡의 주위에 떨어트렸다. 그리고는 막대기로 툭툭 쳐서 화를 돋구었다. 그러자 뱀들은 똬리를 틀고는 막대를 물으려는 듯 머리를 치켜들었다.
이회옥이 물러가자 비룡은 머리를 좌우로 흔들고는 잠시 멈춰 있었다. 그러자 뱀들은 똬리를 풀고는 스르르 물러갔다.
대부분의 뱀은 자신보다 덩치가 큰 동물을 만나면 도망가기 마련이다. 간혹 자신의 독을 믿고 그대로 있는 뱀이 있기는 하지만 말처럼 큰 동물을 만나면 무조건 도망간다.
하지만 그 경우는 지금과 같이 가만히 있을 때이다. 말이 달려들면 자신을 해치려는 것으로 알고 즉각적으로 대응한다.
물론 뱀이 물기 전에 달려가면 문제가 없을 것이나 뱀이 무는 속도 또한 매우 빠르기에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따라서 독사와 조우하면 놈이 도망가도록 그 자리에 멈춘 채 가만히 있는 것이 상책이다.
"하하! 좋았어.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내일부터는 점점 더 속도가 빨라질 거야! 알았지?"
히힝! 히히힝! 히히히히히히힝!
비룡은 칭찬 받은 것이 기쁘다는 듯 이회윽의 몸에 얼굴을 비볐다. 이러한 모습을 본 뇌흔은 넋이 거의 반쯤 나갔다.
어느 누구도 조련할 수 없던 말을 불과 한 달만에 완벽하게 조련시켰으니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아니 완벽한 정도가 아니었다. 말 다루는 데 있어 철마당의 조련사들을 따를 자 없다 자부하던 뇌흔이었다.
하지만 이 순간 그의 이런 생각은 산산이 부서지고 있었다. 철마당의 어떤 조련사도 이제 겨우 열 여섯 된 이회옥을 따를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엇! 당주님, 언제 오셨습니까?"
한참 비룡의 재롱에 즐거워하던 이회옥은 멍하게 서 있는 뇌흔을 발견하자마자 즉각 허리를 꺾었다. 이곳은 철마당주의 집무실 바로 뒤이다. 따라서 수시로 뇌흔의 발걸음이 있는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회옥이 놀란 표정을 짓는 이유는 한 달만에 처음으로 그를 보았기 때문이다. 뇌흔은 모종의 임무 때문에 한 달간 외출했다가 갓 돌아 온 것이다.
"엉? 허험! 수, 수고가 많았다. 그나저나 네 녀석의 조련 솜씨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구나. 어디에서 그런 솜씨를 배웠느냐?"
"솜씨라니요? 송구스럽습니다. 소인의 선친께서 가르쳐 주신대로 했을 뿐입니다."
"선친? 그래, 그럼 네 아비는 누구냐?"
"누구냐니요? 그저 평범한 양민이었습니다요."
"그, 그래? 아, 알았다. 그럼 계속 수고해라."
말을 마친 뇌흔은 어색한 표정으로 자신의 집무실로 들어갔다.
'흐음! 쓸만한데. 저 정도라면… 그래, 한번 알아보자.'
뇌흔은 이회옥의 출신내력을 알아보기로 하였다. 누구의 자식이기에 저처럼 훌륭한 조련술을 지녔는지 궁금해진 것이다. 다음 날, 철마당의 조련사 가운데 하나가 사라졌다. 지옥갱으로 잡혀가기 전에 산해관에 있었으니 그곳으로 향한 것이다.
"뭐라? 벌써 비룡의 조련이 끝났다고…?"
"그러하옵니다. 역시 제일호법께서는 사람 보실 줄 아십니다."
"허험! 그, 그래…?"
한가롭게 화초를 다듬던 무영혈편은 철마당주의 보고에 생각 밖이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 역시 비룡이 불과 한 달만에 순한 양으로 변할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한 달 전에 철마당의 노련한 조련사들이 비룡의 고삐조차 제대로 쥐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본 기억이 아직 생생하였다. 그렇기에 철마당주가 뭔가 잘못 본 것이 아니냐는 듯한 표정으로 슬그머니 바뀌고 있었다.
이런 것을 눈치 못 챌 뇌흔이 아니었다. 사실 철마당주라는 직함을 얻는데 있어 빠른 눈치와 변화하는 상황에 적절히 적응하는 순발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아, 아닙니다. 정말입니다. 속하도 그 모습을 보고 어찌나 놀랐는지 한참동안 입을 다물 수 없었습니다."
"흐음! 정말이라는 말이지…? 좋아, 본좌가 한 번 봐야겠다."
"속하가 모시겠습니다."
잠시 후 무영혈편과 뇌흔은 이회옥이 있는 철마당주 집무실 뒤편에 당도하였다. 그런 그들의 눈에 뜨인 것은 비룡을 베고 누운 이회옥의 한가로운 모습이었다.
말은 잠을 잘 때에도 서서 잔다. 그렇기에 땅 위에 눕는 법이 없다. 설사 눕는다 하더라도 즉각 일어난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위험에 대비하여 언제든 도주할 차비를 갖추려면 서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룡은 분명 누워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이회옥이 비스듬하게 기댄 채 갈기 부위를 부드럽게 쓰다듬고 있었다.
그렇기에 무영혈편과 뇌흔은 놀랐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웬만큼 조련되어 가지고는 이러한 모습을 절대 보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어엇! 소, 소인이 호법님과 당주님을 뵙습니다."
한가롭게 다리를 흔들며 콧노래를 부르던 이회옥은 뇌흔과 제일호법을 발견하고는 대경실색한 듯 화들짝 놀라며 일어섰다.
"으음! 당주의 말이 사실이었군. 네가 비룡을 아주 잘 조련시킨 모양이구나. 좋아, 그동안 수고가 많았다."
"아닙니다. 수고라니요?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하하! 아니다. 분명 큰 일을 했다. 으음! 본좌가 네게 상을 주고 싶으니 원하는 것이 있다면 말해 보거라."
"예? 사, 상이요?"
"그래. 웬만하면 네 소원을 들어 줄 터이니 어서 말을 해라."
"하하! 녀석, 횡재한 줄 알아라. 그러니 어서 받고 싶은 게 무엇인지 말씀드리도록 해라."
어찌 되었건 현재 이회옥의 신분은 철마당 제일향 소속 조련사였다. 그렇기에 뇌흔은 우쭐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의 직속 수하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부하가 잘나면 상관도 절로 잘난 듯 느껴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저어…! 정말로 말씀 드려도 되나요?"
"그래! 어서 이야기 해봐! 뭔지, 들어봐서 들어줄 만 하다 싶으면 들어줄 터이니."
엄격하기 이를 데 없다 소문난 무영혈편이었지만 이 순간 그의 얼굴에는 보기 드물게 자애스런 미소가 어려 있었다. 마치 손자를 대하는 할아버지와 같은 모습이었던 것이다.
"저어! 소, 소인은 무공이란 것을 배우고 싶어요."
"뭐? 무공…? 허허! 오냐 알겠다. 그 정도라면 얼마든지 가르쳐 줄 수 있지. 허허허! 허허허허!"
"정말이세요? 정말, 무공을 가르쳐 주실 거예요?"
"허허! 그래. 가르쳐 주지. 아, 참! 너는 지옥갱에 갔다 왔지? 흐음! 그렇다면 단전이 파괴되었을 텐데… 그럼 내공을 익히는 것은 이제 불가능하다. 대신 외공(外功)은 얼마든지 가능하니 외공을 가르쳐 주마."
"단전이요? 외, 외공이요?"
이회옥은 짐짓 무공에 문외한인 듯한 태도를 취했다. 한낱 말 조련사가 무공에 대하여 박식하다면 이상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 철포삼(鐵袍衫)이나 금종조(金鐘槽)보다 훨씬 뛰어난 외공을 배우도록 해주마. 허나 직접 가르쳐 줄 수는 없다. 워낙 바쁘기 때문이지. 대신 무공 비급을 보내주마. 자, 그럼 난 이만…"
말을 마친 제일호법이 몸을 돌리자 철마당주가 즉각 수행하겠다는 시늉을 하였다.
"아, 안녕히 가십시오."
"허허! 그래,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다. 허허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회옥은 연신 허리를 숙였다. 그런 그의 뇌리로는 비참하게 죽어간 냉혈살마의 걸걸한 음성이 스치고 있었다.
"알았지? 절대 네가 태극목장 출신이라는 것을 밝히면 안 된다. 그리고 청룡갑 덕분에 단전이 파괴되지 않았다는 것도 알려서는 안 된다. 만일 그것이 알려지면 네가 위험해 질 수 있어! 그리고 무림이란 곳은 도산검림(刀山劍林)이 중첩된 곳이다. 자신의 삼 푼 이상을 감출 줄 알아야 최후에 웃을 수 있단다. 그러니 절대 네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지 말아라!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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