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성애학(erotics)이 필요하다!

수전 손택 <해석에 반대한다>

등록 2003.03.31 21:32수정 2003.04.03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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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손택은 '뉴욕 지성계의 여왕'으로 불릴 만큼 명망 있는 미국 최고의 에세이스트이자 문화비평가이다. 그러면서도 작년 9.11 테러 1주기가 되었을 때,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부시 행정부의 그칠 줄 모르는 반 테러 전쟁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한 행동하는 양심적 지식인이다.

1966에 나온 이 책은, 새로운 스타일과 문화 감수성의 도래를 예고한 손택의 예술론 단면을 잘 드러내는 대표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비록 본인이 서문에서 지금은 생각이 많이 달라졌노라고 밝히고 있지만, 여전히 곱씹어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정병진
이 책에 실린 비평문들은 저자가 1962-1965년 사이에 쓴 글들 중에서 제법 만족할만한 것을 골라 모았단다. 저자는 여기서 다루는 여러 작품들에 대해 자신이 특정한 평가를 내렸다는 점보다는, 흥미로운 의문을 제기했다는 데 그 가치를 두고 싶다고 했다. 때문에 그는 "내가 열렬히 뭔가를 설교했다고 해서, 나는 나 자신 이외에는 그 누구도 약속의 땅으로 끌고 가려 한 적이 없었다"고 말한다. 이 점을 반드시 유의해야 읽는 이들이 실망하지 않을 것 같다.

나로서는 쏟아지는 찬사들에 이끌려 이 책을 읽은 경우라서, 눈에 띄는 몇몇 글들 외에 지루함을 내내 견뎌야만 했다. 그 주된 요인은 저자가 다루는 대부분의 작품들을 전혀 접해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예술 이론에 대한 무지까지 한 몫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의 내용 자체가 그리 까다로운 것은 아니다. 특히 책의 제목이기도 한 '해석에 반대한다'와 '스타일에 대해', '캠프에 대한 단상' 등의 글들은 도발적인 문제제기와 함께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해석에 반대한다'에서 저자는 예술 이론의 역사에 대해 간단히 일별 하면서, 결코 끝나지도 완성되지도 못할 만연한 해석작업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그의 주장은 "해석은 지식인이 예술에 가하는 복수다"라는 이 한마디 말로 요약된다. 세계를 해석하고 복제하는 것보다는, 무뎌진 감성을 회복하여 예술작품을 투명하게 보고, 듣고, 있는 그대로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해석학' 대신에 '성애학'이 필요하다고 일갈한다.

예술에 있어서 스타일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말한 저자의 주장들도 고개를 주억거리게 만든다. 그는 '스타일'이 곧 예술이라고까지 말한다. 예술은 스타일화된 개인 감정의 요소를 제거한, 다양한 표현 양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한 예로, 저자는 밀턴의 <실락원>이 우리에게 만족감을 주는 이유가 이 작품이 신과 인간에 대해 보여주는 견해 때문이 아님을 지적하고 있다. 그보다는 오히려 시에 구현된 탁월한 에너지와 생명력, 표현성 때문이라는 것이다. 적절한 지적이다. 내 경험만 봐도, <실락원>이 극찬되는 이유도 모른 채 고전이라고 무턱대고 읽다가 처음에는 따분해서 혼났다. 나중에야 그 장엄한 표현성의 맛을 알고 나서 그 가치를 비로소 인정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책에서 까뮈, 루카치, 레비스트로스, 사르트르 등 일반에 널리 알려진 대가들의 작품을 평하는 것도 흥미로운 읽을거리다.

저자는 까뮈를 말하면서 그에게서는 최고 경지의 예술도, 사상도 찾아볼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대신 까뮈의 작품이 비상한 흡인력을 발휘한 이유로, 20세기의 대다수 작가들이 관심 갖지 않았던 '도덕적 매력' 때문이라고 말해 주고 있다.


17세 이래 열렬한 맑스주의 신봉자였던 레비스트로스와 그의 제자들이 미래 아닌 과거를 말하는 인류학에 뛰어든 동기도 재미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신념을 미래에는 제공할 수 없으므로 과거라는 제단에 바치려고 했다는 것. 그런 점에서 저자가 보기에 인류학은 일종의 부고(訃告)였다.

저자는 대량복제가 가능한 기계 시대에도 예술가의 작품이 여전히 특별한 가치를 지닐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예술은 과학이나 기술과는 다른 형태로 변화 발전한다며, 예술창조 활동이 궁극적으로 쇠퇴하리라는 주장들을 일축한다. 그는 예술을 행하는 수단이 급격하게 확대된 오늘날의 예술을 일컬어, 의식을 조절하고 새로운 양식의 감수성을 조직하는 새로운 도구라고 말하고 있다.

다원성과 신속 전달을 특징으로 한 현대 대중예술이 등장하게 된 것은 아름다움, 스타일, 취향 등에 대한 새로운 기준이 있기 때문이라 보고 있다. 이것만 봐도 저자가 오늘날의 포스트모던 사회를 오래 전부터 내다보고 있다는 사실에 그저 놀라울 지경이다.

해석에 반대한다

수잔 손택 지음, 이민아 옮김,
이후,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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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솔샘교회(solsam.zio.to)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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