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에 보장된 '1인 시위' 저지한
종로서장은 인권 교육 받아라"

인권위, 미 대사관 앞 시위 막은 경찰간부 3명에 권고

등록 2003.04.01 11:40수정 2003.04.02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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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대체: 1일 오후 3시>

a 지난 달 20일 열린 '이라크 침공 반대 미대사관앞 기자회견'에서 한 시민이 피켓을 들고 있다.

지난 달 20일 열린 '이라크 침공 반대 미대사관앞 기자회견'에서 한 시민이 피켓을 들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미 대사관 앞 1인 시위를 강제 저지한 종로서장은 인권교육을 받아야 한다."

미 대사관 앞에서의 1인 시위를 저지하는 것은 인권침해라는 결정이 내려져 관심을 끌고 있다. 또 이를 저지한 당시 종로서장·경비과장·서울지방경찰청 제1기동대 현장 책임자 등은 '인권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권고도 덧붙여졌다.

"인권교육을 수강하십시오"
종로서 경비과장 등 인권교육 받아야할듯

조만간 김운선 전 종로서장(현 서울경찰청 정보2과장)·황덕규 종로서 경비과장 등은 '인권교육'을 수강 받게 될 전망이다.

이번 '미 대사관 앞 1인 시위 강제저지'와 관련해 피진정인인 김운선 전 종로서장 등 3명에게는 "인권교육을 수강하십시오"라는 제목의 '인권교육 결정문'이 전달된다.

육성철 인권위 공보담당 사무관은 "국가인권위법에 '권고를 받은 기관은 인권위의 권고를 존중해야 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며 "이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에는 그에 합당한 이유를 인권위에 전해야 하며 인권위는 이 이유를 언론에 공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육 사무관은 "하지만 지금까지 인권교육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은 기관은 없었다"고 덧붙였다.

인권위의 권고로 인권교육을 받은 대표적인 기관에는 구로서가 있다. 지난 2002년 인권위는 구로서가 유치장 입감과정에서 알몸신체검사를 한 사건에 대해 윤모씨(현 구로경찰서장) 등 구로경찰서 경찰관 5명에 대해 국가인권위가 주최하는 특별인권교육을 수강하도록 조처한 바 있다. / 김지은 기자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김창국, 이하 인권위)는 4월1일 "미 대사관 등 외교공관 앞에서의 1인 시위를 제한하는 행위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라는 결정을 내렸다. 인권위의 이같은 결정은 최근 부쩍 늘어난 1인 시위에 대한 일부 경찰의 과잉단속과 관련, 사실상 시위자의 손을 들어준 것이어서 주목된다.

4월1일 인권위는 지난 해 9월 미 대사관 정문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던 유영재(43·민족화해자주통일협의회 사무처장)씨를 강제로 저지한 사건과 관련, 유씨가 종로경찰서장 등을 상대로 낸 진정에 대해 이같이 결정했다.

인권위는 "유씨를 방패 등을 사용 강제로 밀어낸 시위 현장 경비 책임자인 종로경찰서장·종로서 경비과장·서울 지방경찰청 소속 제1기동대 나모 경감 등 관련자에 대해 인권위에서 실시하는 인권교육을 받을 것을 권고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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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인권위의 결정은 지난 해 11월 재판부(서울지법 민사30부, 재판장 윤흥렬)가 '청와대 앞 1인시위 강제연행'과 관련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국가는 원고에게 위자료 5백만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판결을 내린 데 이은 진보적인 결정으로 그간 논란이 돼 온 청와대 및 재외공관 앞에서의 1인 시위에 대한 경찰의 과잉단속과 관련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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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지난 해 6월 26일 오전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조선시대 관복을 입고 "국무회의 속기록 작성, 정보공개"등을 요구하는 1인시위를 하고 있는 최한수 참여연대 간사. 최 간사는 몇분 후 청와대 202 경비대에 의해 강제연행됐다.

지난 해 6월 26일 오전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조선시대 관복을 입고 "국무회의 속기록 작성, 정보공개"등을 요구하는 1인시위를 하고 있는 최한수 참여연대 간사. 최 간사는 몇분 후 청와대 202 경비대에 의해 강제연행됐다. ⓒ 참여연대 제공

그간 경찰은 미 대사관 앞 1인시위에 대해 '외교관계에 관한 비엔나협약(제22조, 이하 비엔나협약)을 근거로 '시위를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그러나 인권위는 외교통상부의 의견 및 1인 시위 관련 국·내외 판결 및 사례를 참고해 이같은 경찰의 주장을 불식시켰다.

당시 유씨는 '덕수궁 터 미대사관 아파트 신축반대 시민모임' 소속 회원으로 같은 해 8월 30일 미 대사관 앞에서 '덕수궁 터 미 대사관 아파트 신축 반대'라고 씌여 있는 피켓을 들고 1인시위를 벌였다.

유씨에 따르면 당시 경찰은 유씨에게 비엔나 협약을 예로 들며 대사관 앞에서 비켜서 시위를 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유씨는 "1인시위는 집시법 상 시위에 해당되지 않으므로 비킬 수 없다"고 맞섰고 이에 경찰은 기동대원 5∼6명이 방패를 이용해 유씨를 강제로 밀어냈다.

이 사건에 대해 인권위는 4쪽 분량의 보도자료를 통해 결정의 배경을 설명했다. 이에 의하면 당시 유씨를 저지했던 미 대사관 앞 현장 책임자인 서울지방경찰청 제1기동대의 나모 경감과 종로서장 등은 △미대사관 정문 앞 인도는 폭이 2.5m에 불과하고 일반시민 등의 출입이 잦아 시위자가 피켓을 갖고 있을 경우 통행에 불편을 가져올 수 있고 △반미시위대의 화염병·오물 투척 및 월장 등 위험요소가 상존하기 때문에 유씨를 저지시킨 것은 정당한 직무수행이었으며 △비엔나 협약이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하 집시법) 등을 고려한 적법한 절차였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경찰의 주장에 대해 인권위는 ▲미 대사관 앞 인도는 평소 일반 시민의 통행이 드물고 오히려 대사관을 경비하는 경찰대원이 많은 곳이므로 유씨의 1인 시위가 일반인의 통행에 지장을 줄 정도가 아니었고 ▲유씨는 당시 목적이 명확한 피켓을 들고 홀로 서 있었을 뿐 공관에 위해가 될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으며 ▲1인시위는 집시법상의 '시위'개념에 포함된다고 볼 수 없으므로 집시법 및 경범죄 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고 ▲경찰이 근거로 든 비엔나 협약은 외교공관 부근에서의 1인시위에 대해서는 명시적 규정이 없으므로 유씨가 시위를 벌인 장소는 국내법 또는 비엔나 협약에 따른 경찰의 제재대상이 아니다는 등 6가지의 이유를 들어 결정 배경을 설명했다.

또 인권위는 다음과 같은 내용도 덧붙였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정치의 전제이자 다른 자유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월적 지위가 인정된다는 점에서 법이 허용하는 한 최대한 보장돼야 한다. 따라서 유씨가 자율적으로 결정한 시위의 시간·장소·방법 등이 국내법이나 비엔나 협약 등에 위반되지 않았음에도 공권력 등에 의해 훼손됐다면 유씨는 헌법 제21조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침해당한 것이다. 또 유씨의 행위를 경찰이 부당하게 억압·방해했다는 점에서 유씨는 헌법 제12조에 의해 보장되는 신체의 자유까지 침해당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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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지난 달 22일 경찰버스에 의해 겹겹이 에워싸인 미 대사관. 미 대사관 앞 등 외교공관 앞에서의 '1인시위' 허용 문제가 표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달 22일 경찰버스에 의해 겹겹이 에워싸인 미 대사관. 미 대사관 앞 등 외교공관 앞에서의 '1인시위' 허용 문제가 표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같은 인권위의 결정 소식이 전해지자 참여연대 및 법률가들도 환영의 뜻을 표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이정희 변호사(법무법인 덕수)는 "환영할만한 결정"이라며 "이번 인권위의 결정을 계기로 경찰도 내부 자성의 시간을 갖게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또 이 변호사는 경찰의 시위 해산 방법과 관련 "경찰의 기본적인 직무집행의 원칙은 최소한의 물리력 사용"이라며 "불법행위라 하더라고 경찰이 그를 막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강제력을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 변호사는 "요즘 더욱이 집회나 시위 방법이 다양해지고 있으니 경찰도 이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자기 지침을 세우고 이를 공개해야 한다"며 "또 지침을 세우는 과정에서 시민의 의견이나 인권위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시민단체에서는 '근본적인 집시법의 개정'을 주장했다.

1인시위 관련 국내 판결

- 청와대 앞 1인시위 불법연행에 대해 위자료 500만원 배상판결 (2002년 11월 7일, 서울지법)

- 미이라 복장 1인시위, 경범죄로 3만원 선고(2002년 7월 12일, 대법원)

- 대한항공의 부당해고 관련 1인시위 금지 가처분 판결(2003년 2월 18일, 서울고법)

홍석인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간사는 "1인 시위는 집시법 적용 범위에 들지 않는 시위인데도 이를 경찰이 방패를 사용해 무리하게 저지했다면 경찰이 잘못한 것"이라며 인권위와 같은 입장을 보였다.

또 홍 간사는 "그러나 근본적인 해결은 집시법의 개정"이라며 "외교공관이나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금하는 집시법의 독소조항을 개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번 인권위의 결정으로 경찰이 1인 시위에 대해 변화한 입장을 보일지는 미지수다. 지난 해 '청와대 앞 1인 시위 강제연행' 사건과 관련한 재판부의 결정에도 불구, 종로서 경비과는 여전히 '청와대 전방 100m 이내로의 접근 불허'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달 17일부터 참여연대가 벌인 '이라크전 파병 반대 청와대 앞 1인 시위'에 대해 당시 종로서 경비과는 "아직 항소 중인 사건"이라며 청와대 앞 1인 시위 불가 입장을 고수했다. 당시 1인 시위자로 나선 김기식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청와대 앞 1인 시위와 관련한 재판부의 판결문까지 들고 나와 경찰과 팽팽히 맞섰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인권위의 결정이 향후 1인 시위를 둘러싼 시민단체와 경찰간의 대립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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