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고주몽 57

등록 2003.04.06 14:51수정 2003.04.06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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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군녀 역시 왕비라고 팔짱만 끼고 보고 있지는 않았다. 갑옷을 입은 채 선두에 서서 병사들을 독려하고 있었다. 한나라 병사들은 물러나지 말라는 장막의 말을 무시하고 너도나도 도망치기 시작했다. 장막은 병사하나를 잡아 목을 밴 후에 엄포를 놓았다.

"봤느냐? 함부로 물러서면 내 손에 죽을 것이니라! 모두 나를 따르라!"


진속에게 큰 소리를 친 것도 있거니와 오녀산성을 속전속결로 무찌르지 않으면 안될 입장이었기에 장막은 선두에 서서 갈고리를 던지며 성벽에 기어올랐다. 순간 큰 돌덩이 하나가 장막의 안면에 내리 꽂혔다.

임둔군의 상황은 고구려군의 공성무기 동원으로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쏟아지는 돌덩이를 막기 위해 운제를 밀고 가는 병사들을 머리위로 든 방패로 보호하며 고구려군은 서서히 전진해 들어갔다. 주몽이 이끄는 고구려군이 임둔군을 공격한 지 닷새 째, 운제에 기가 죽은 탓일까 임둔군의 대응은 시원찮기만 했다.

"대대로님! 적이 달아나고 있습니다!"

운제 위에 올라가 창을 굳게 잡으며 각오를 다지고 있던 무골은 성을 굽어볼 수 있는 위치에 이르러 한나라 병사들이 후문으로 달아나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고구려군은 서둘러 성을 들이쳤고 승리의 함성소리와 함께 미처 달아나지 못한 한나라 병사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그들 중 지휘관급으로 보이는 한 사람이 할 말이 있다며 고구려의 지휘관을 찾았다. 부분노가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

"무슨 할 말이 있느냐?"


"지금 빨리 군사들을 뒤로 물려라. 늦게 돌아가면 너희들의 도성은 불바다가 되어있을 것이다."

"무슨 신소리냐. 포로로 잡힌 주제에 뭘 어찌 해보자는 잔꾀를 부리는 것이냐?"


포로는 물러섬이 없이 대꾸했다.

"그야 사람을 보내어 확인해 보면 될 일이 아니냐. 그러나 그때는 이미 늦었을 거다."

부분노는 포로가 거짓말을 하고 있지는 않은 듯 해서 주몽앞으로 데려갔다.

"내 말이 맞다면 굳이 이런 말을 할 필요가 있느냐?"

포로는 묶여 있었기에 자신의 옷섶을 뒤져봐 달라고 요청했다. 옷섶에는 서찰 한 통이 접혀 있었다.

'요동태수 채진이 고구려왕에게 고한다. 평곽태수 진속이 불온한 마음을 먹고 군사를 내보내어 그대의 왕성을 노리니 속히 군사를 물려 이를 물리쳐 진속의 목을 밴다면 현도군과 임둔군을 침입한 것에 대해 죄를 묻지 않을 것이다.'

채진은 종사 왕위의 지혜를 빌어 진속의 대역죄를 자신이 위신도 세우고 일을 마무리 할 수 있는 기회로 삼은 것이었다. 단지 이 계획은 주몽이 이끄는 고구려군이 진속을 무찔러야만 한다는 가정 아래서 이루어지기에 채진으로서는 가슴 졸이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당장 군사를 돌리도록 하라."

마리가 이에 반대하고 나섰다.

"모처럼 얻은 땅을 도로 내놓는다는 것입니까? 한족(漢族)들은 잔꾀에 능합니다. 이 또한 그들의 계략이 숨어 있을 것입니다."

주몽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들의 잔꾀가 맞다고 해도 이만 하면 우리가 원하는 바를 부족하나마 얻을 수 있을 것이며 고구려의 힘을 만방에 떨친 계기가 되었을 것이오. 언젠가 태대형이 내게 한 말이 생각나오. '노자에 이르기를 큰 네모는 모서리가 없으며 큰그릇은 늦게 만들어진다(大方無隔 大器晩成)'고 했었소. 여하튼 대사자 마리의 말처럼 적의 흉계가 있을 지도 모르니 태대사자 부분노는 후위를 철저히 방비하며 따라오시오."

주몽은 '대기만성'이라는 묵거의 말을 되뇜과 동시에 설사 오녀산성이 포위되었더라도 그라면 믿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고구려군은 질서 정연하게 임둔군을 빠져나가 오녀산성으로 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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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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