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걸 민주당 의원.
사랑하는 혜진과 혜윤에게.
사랑하는 혜진아 그리고 혜윤아!
너희들이 국군의 이라크 파병에 대한 아빠의 찬성 입장을 맹렬히 비판하는 것을 듣고 잠시 토론을 하였지만 아무래도 아빠의 생각을 좀 자세하게 이야기해주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편지를 쓴다.
아빠의 눈에는 아직까지 어리고 여리기만한 것 같았는데, 어느새 불쑥 자라서 현실 문제에 대해서 그렇게 당당하고 조리있게 의견을 내놓고 심지어 아빠를 쩔쩔매게까지 하는 것을 보니 흐뭇하고 대견하기만 하다. 아빠가 생활에 바빠서 그 동안 제대로 대화도 못했었는데, 올곧고 바른 생각을 하는 아이들로 성장한 너희들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이 교차한다.
아빠의 청년시절 감동적으로 보았던 글 중에서 민중운동가 백기완 선생이 딸에게 쓴 편지를 묶은 <자주고름 입에 물고 옥색 치마 휘날리며>라는 책이 있었다. 부정의한 사회 현실을 개혁하려는 아버지의 입장에서 역사와 미래, 한국과 세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무엇이 참과 정의인가를 딸에게 이야기해주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너희들에게 막상 편지를 쓰려니까 불현듯 이 책이 떠오르는구나. 이제 아빠의 생각을 이야기해보겠다.
"너희들의 생각은 타당하고 많은 부분 공감하고 있다"
너희 자매들은 파병동의안에 찬성하는 아빠에게 이렇게 말했었지.
"미국은 정당하지 않은 전쟁을 일으켜 무고한 사람을 해치고 있어요. 이라크 국민 2400여만명 중 절반 이상이 13세 미만의 어린아이들인데 그들이 무슨 죄가 있길래 팔다리가 잘려나가는 고통을 당하고 심지어 죽음을 당하여만 하는가요? 미국의 일방적인 전쟁은 유엔에서조차 동의를 받지 못한 절차적으로도 부당한 전쟁이고, 그래서 미국과 영국을 제외한 세계의 대부분의 나라들이 비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요? 그런 전쟁에 우리나라가 유독 참여하겠다는 파병을 결정한 노무현 대통령이나 그것에 찬성하는 아빠께 실망하지 않을 수 없어요."
너희들 생각은 기특하게도 상당히 타당하고 아빠도 너희들에게 많은 부분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너희들도 알다시피 아빠는 국군 파병안에 찬성을 하였다. 어떤 것에 대해서 판단을 할 때는 그 사람이 처한 지위와 경우에 따라 여러 가지 기준을 가질 수 있는데 아빠는 국회의원의 지위에서 한 결정이기 때문에 헌법과 국회법에 규정된 국가 이익이라는 것에 최우선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혜진아 그리고 혜윤아. 좀 딱딱한 이야기가 되겠지만, 헌법 46조 2항에서는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으로 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수행한다"라고 규정되어 있고, 아빠가 국회의원이 되면서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민의 자유와 복지의 증진 및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하여 노력하며 국가이익을 우선으로 하여 국회의원의 직무를 양심에 따라 성실히 수행할 것을 엄숙히 선서합니다"라고 선서를 하였다.
너희와 입장이 비슷한 파병반대 운동을 하고 있는 국민들, NGO의 대부분도 자신의 이해관계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 분들은 국가이익보다는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관을 좀더 강조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파병반대에 동의하는 국회의원들, 특히 아빠와 친한 송영길 아저씨도 아빠처럼 국가이익이 무엇인가에 입각해서 결정하였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그 분들과 아빠의 차이는 무엇이 국가 이익에 더 부합하는가에 대한 판단의 차이라고나 할까.
아빠는 왜 파병안에 찬성하는 것이 국익에 부합한다고 생각했을까? 아빠도 너희들처럼 이번 전쟁은 명분이 약하고 꼭 정당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아니 어쩌면 무력에 호소하는 어떠한 방식도 명분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빠는 전쟁 그 자체와 이 전쟁에 과연 우리나라 정부가 파병하여야 하는가의 문제는 다르게 보고 있다.
"실질적 명분은 주관적 소망이고 이상이지 객관적인 현실은 아니란다"
명분은 중요하다. 명분에 대한 따뜻한 배려는 너무나 당연한 인간의 도덕이다. 그러나 세계의 질서는 냉냉한 힘의 체계에 의존하고 있는 바가 크다. 지금까지 국제사회를 이루어온 사건이 과연 꼭 명분을 가지고 있었는가. 국제질서에 한해서는 너희들이 강변하고 있는 절차적 정당성도 명분이라는 것으로 포장하기 위한 하나의 장식에 불과하지는 않을까. 다른 세계의 질서는 명분이 아닌 힘에 의해서 움직여지는데 유독 이라크 전쟁에 대해서만 명분이라는 기준을 요구하는 것을 아닐까.
어린 너희들에겐 말하기 어렵지만 주관적인 개인의 소망과 객관적인 국제현실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아직까지 국제사회에서 실질적인 명분은 주관적 소망이고 이상이지 객관적인 현실은 아닌 것이다. 아직은 명분이 아니라 현실의 힘이 국제정치 질서를 좌우하고 있는 것이다.
이라크 전쟁은 우리나라가 아무리 반대를 해도 또 파병을 하지 않아도 국제정세상 필연적으로 일어나게 되어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럴 때 비현실적인 명분에 이끌려서 냉엄한 국제 질서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하는 반대만 하는 것이 현명한 태도일까? 더욱이 국제사회에서 미국과의 관계에 대한 것을 비롯한 우리나라의 입장과 진로를 고려해야 하는 국회의원으로서 과연 책임있는 자세일까?
아빠는 아니라고 본다. 우리나라는 파병을 결정하면서 몇 가지 실리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그 중에서 파병은 우리 민족의 평화를 좀더 굳건히 했다는 데 가장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우선, 한국과 미국간의 공조가 굳건해졌다. 투자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향후 경제전망을 어둡게 하는 것은 북핵문제 그 자체보다 그로 인하여 발생하는 한미간의 불완전한 관계라고 하였다.
우리 사회의 일부에서는 참여정부와 미국이 큰 갈등이 있는 것인 양 선전하고 양자 사이의 균열을 만들려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한미관계는 이런 이간질을 극복하고 견고해진 것이다. 두 번째, 그 결과 우리는 북한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한 것이며 이로 인하여 미국이 일방적으로 대북한 정책을 결정하고 강행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이 외에도 많은 실리가 있지만, 그것들은 언급하지 않겠다.
너희들은 그러한 실리는 미국의 이라크 공격에 의해서 희생당하는 무고한 생명들 특히 어린이들의 고통으로 얻게 된 것이라고 비판할 것이다. 아빠 역시 TV 뉴스에서 보도되는 이라크 전쟁의 참화를 보면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가슴이 미어진다.
아빠는 정치인으로서 북한 어린이들이 비극을 겪지 않도록 선택할 수밖에…
하지만 애들아. 여기서도 입장의 차이가 있다. 아빠는 한국의 정치인으로서 이라크의 어린 생명들의 고통을 보면 볼수록 북한의 어린이들이 그런 비극을 겪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고민해야하고. 또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은 국회의원으로서 아빠의 절대적인 책무이다.
너희들 '촛불 세대'들은 새로운 한미관계를 요구한다. 만약 우리가 미국에 종속된 국가라고 한다면 우리나라 사람으로서 미국으로부터 당당하고 'NO! 라고 말할 수 있는 한국'이 되지 않기를 원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니? 그러나 과연 우리나라가 미국에 종속된 국가인지 여부는 개인 정서적인 수준에서 느끼는 대로 결정될 수는 없다고 본다. 국제사회에서 정도와 방향의 차이는 있지만 서로 의존된 관계가 전혀 없는 국가관계가 있겠는가. 아빠는 너희들이 언어의 장벽을 극복하면서 미국에서 1년여 생활하던 때를 되살린다. 미국을 보는 시작도 개인, 국가 등등 여러 차원에서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니겠니.
아무튼 이처럼 무거운 시기에 우리는 추상적인 한미관계의 대등성, 그 당위성 여부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구체적으로 이 현실을 어떻게 타개해 나가야 하는가라는 방법론을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본다. 아빠는 또한 이러한 미국에 대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인식, 과학적 사고는 바로 이 순간에도 행해져야 하지만 그것은 장기간에 걸쳐서 우리의 국력이 신장되고 국민의식이 더욱 성숙되면서 점차적으로 바뀌어질 수 있음을 인정한다. 그런데 지금 감정적이고 일면적인 판단에서 나온 한미간의 '대등성'을 요구하면서 국민의 생존을 위협하는 결정을 한다면, 그것은 무모한 결정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혜진아, 그리고 혜윤아. 이번 파병 결정의 불가피성을 다른 측면에서도 볼 수 있단다. 아빠는 공교롭게도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기 시작할 때 미국을 방문중이었다. 그때 미국민들의 모습을 목격했다. 이 전쟁은 부시 정권이 여론을 무시하면서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을 괴롭히고 테러를 지원하면서 세계질서를 혼란케 하는 독재자 사담 후세인을 제거하기 위한 미국 국민 80%의 찬성 속에서 진행되는 전쟁이다.
미국인들은 한국이 미국의 혜택을 많이 본 나라라고 생각하고 있단다
그런데 이라크 전쟁을 압도적으로 지지하는 미국인들은 한국이 미국의 혜택을 많이 본 나라라고 생각하고 있단다. 6·25 전쟁 때 막대한 인적·물적인 손실을 입어가면서까지 한국을 지켜주었고, 그 이후 미군이 몇 만명씩 주둔하고 안보를 분담해서 한국의 국방비를 대폭 절감시켜주고, 그렇게 절감된 국방비로 한국은 경제성장에 투자할 수 있었고, 무역 관계에서도 한국은 이익을 많이 취하는 나라라고 그들은 생각하고 있단다.
그런 생각이 옮은 것이냐 잘못된 것이냐를 따지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이고 일단 미국인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런 미국 국민들에게 한국이 미국의 이라크 파병 요청을 거부한다면 한국은 호혜정신이 없는 나라라고 비난할지 모른다. 너희들은 세계의 대부분의 나라들이 하지 않는 파병을 왜 하필 한국이 해야 하냐고 비판하지만, 바로 한미관계는 군사적·경제적으로 세계의 대부분의 나라들과 다른 특수성이 있다고 답해주고 싶다.
사랑하는 혜진아 그리고 혜윤아. 너희들의 부쩍 큰 모습을 보고 기쁘고 흐뭇한 마음에 모처럼 글을 쓰다보니까 길어졌구나. 이만 줄이겠다. 아빠는 너희의 이상주의와 열정, 너희들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끊임없이 반추하겠다. 책임이 따르는 지위에서 불가피한 '현실주의' 노선 속에서도. 다시 한번 사랑한다 그리고 바르게 커주어서 정말 고맙다.
아빠가.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