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을 꿈꾸는 땅, 철원 전적지 견학

등록 2003.04.09 19:02수정 2003.04.10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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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철마는 통일을 향해 달리고 싶다.

철마는 통일을 향해 달리고 싶다. ⓒ 이종원

민통선을 들어가며

제 2땅굴에 들어가려면 '철의 삼각 전적관'에서 신청을 하고 선도차량의 인솔을 따라 들어가야 한다. 통일의 염원처럼 차량은 길게 늘어섰다. 검문소 통과할 때마다 '이제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현장으로 들어가는구나' 라는 생각에 긴장감이 더해진다.


드디어 긴 뱀이 늘어진 철책이 보인다. 바로 남방한계선다. 같은 땅이면서도 다른 나라가 되어 버린 저 철책선이 한없이 원망스럽다.

딸 정수가 "아빠 우리 어디로 가?"
"북한하고 우리하고 예전에 싸웠던 곳으로 가는 거야."
"왜..싸워? 사이좋게 지내면 안돼?"

7살난 아이가 남북 문제의 해답을 가르쳐 준다.

도로가에도 철조망이 뻗어 있었고 '지뢰 매설'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다. 통일이 되면 지뢰를 제거하는데 많은 비용과 인력이 필요할 텐데….

인간들이 만들어낸 긴장과는 반대로 드넓은 '토교저수지'에는 늘씬한 학이 그 자태를 뽐내고 있다. 저 새들이야말로 남북을 오가는데 아무 제약이 없겠지.


a 땅굴 수색 중에 산화한 한국군의 위령비

땅굴 수색 중에 산화한 한국군의 위령비 ⓒ 이종원

제 2땅굴

땅굴입구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는 '사진촬영금지'구역이다. 가져온 카메라도 따로 보관해야 한다. 단, 땅굴수색 중에 죽은 한국군 7명의 위령탑만은 찍게 해준다. 일행 중 한 사람이 "금강산도 마음대로 가는데…. 우리 땅 사진도 못 찍게 합니까?" 항의 해보았지만 묵묵부답이다. 사병들이 무슨 힘이 있으랴.


1975년 한국군 초병이 경계근무를 서던 중 우연히 땅속에서 폭음을 듣게 된다. 그리하여 수십 일간 끈질긴 탐색작업 끝에 제 2땅굴을 발견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땅굴 중 가장 규모가 크며 한 시간 안에 3만명의 병사가 침투 가능한 규모란다.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을 맞으며 15분 정도 깊숙이 들어간다. 그렇다면 우리는 비무장지대 안쪽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지상에서 드나들 수 없는 비무장지대를 땅 속을 통해 들어가니 기분이 묘하다.

75년이면 남북이 한창 으르렁거렸을 때다. 냉전현실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 주는 것이 땅굴만한 것이 더 있을까? 통일이 되면 이 땅굴이야말로 쓰라린 문화유산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일의 상징물로 보존하여 다시는 민족이 갈라지는 비극이 일어나서는 안되야 할 것이다.

'이 땅굴을 어떻게 하면 멋지게 활용할까?' 곰곰이 생각해본다. 충남 광천 토굴 새우젓처럼 이곳에 '통일 새우젓'을 저장하면 어떨까? 또는 북한에는 배고픈 동포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곳 저곳 생색을 내지 말고…. 이 곳을 통해 은밀히 쌀을 보내면 어떨까? 원수를 사랑으로 갚는 것이야. 그럼 북한도 고마워할텐데….

이런 흐믓한 상상을 하면서 땅굴 끝까지 갔다. 끝에는 유치장처럼 철망으로 가로막혔다. 그곳엔 철로가 놓여있고, 괘도 차가 덩그러니 서있다.

나이가 지긋이 드신 분이 군인에게 넌지시 물어본다.

"저 화차 누가 만들었습니까?'
"우리 군이 만들었습니다. 관람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요."
"난..또..저 개새끼들이 만들었는지 알았네."
휴-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차가 이렇게 크다.

철의 삼각 전망대

다시 차를 타고 철의 삼각 전망대로 향한다. 가는 도중에 큰 둔덕이 이어져 물이 가득 담겨진 저수지인 줄 알았다.

그러나 전망대 4층에 꼭대기에 올라서니 확인해보니 그것은 저수지가 아니라 수로를 길게 파놓은 것이다. 적의 탱크가 넘어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전망대에 올라서니 드넓은 평지가 한눈에 펼쳐진다. 초병들이 길게 늘어서 있지 않았다면 이 곳이 6.25때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격전지일 줄은 몰랐을 것이다. 지평선이 잔잔한 수면처럼 느껴질 정도로 평온하다. 이곳 가이드가 모형판을 집어가며 열심히 설명한다. 이북의 평강고원, 김일성 고지 ,피의 능선까지 한 눈에 조망한다.

내가 가장 보고 싶은 곳이 궁예궁터다. 숲으로 뒤덮힌 저 한 켠에 궁예의 야망이 서려있는 궁궐터가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남도 북도 갈 수 없는 비무장지대에 절묘하게 걸쳐 있다.
가고 싶지만 갈 수 없는 곳...통일되면 가장 먼저 찾아보고 싶은 곳 바로 궁예궁터다.

월정리역

a 월정리역

월정리역 ⓒ 이종원

'月井' 풀어쓰면 '달의 우물'이다. 얼마나 아름다운 이름을 가지고 있는가? 그러나 현실은 정 반대다. 가장 아픔을 간직한 역이다.

서울에서 원산까지 가는 기차가 잠시 쉬어 가는 곳이 월정리 역이다. 그런데 50여 년 쉬고 있다. 더구나 폭격 맞은 기차가 뼈대만 간신히 드러내고 울고 있는 것이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라고 그렇게 외쳤건만 달릴 수 없는 처절한 한을 누가 풀어줄까?

a 아이들만이라도 저 철로를 이어주길..

아이들만이라도 저 철로를 이어주길.. ⓒ 이종원

아이들만이라도 통일을 향해 달려보자. 전망대에서 노동당사가 있는 초소까지 가는 길은 평야를 가로지르는 길이다. 그 맛 좋다는 철원 쌀은 여기서 만들어 내는구나. 철원평야는 산이 빙 둘러있는 분지에 자리잡고 있어 이곳이 천혜의 요새임을 알 수 있다. 가히 궁예가 수도로 삼을 만 하다.

백마고지 전적비

a 백마고지 전적비

백마고지 전적비 ⓒ 이종원

초소에서 신분증을 다시 받고 백마고지 전적비로 향한다.

'백마고지' 한 때 전쟁영화에서 얼마나 많이 나온 지명인가? 그렇다. 백마고지는 한국전쟁 당시 가장 피비린내 나는 격전지였다.

1952년 10월 6일 중공군의 대공세로 10일동안 대 혈전이 계속되었고, 포탄 30만발이 작렬하면서 고지의 주인이 24번이나 바뀐 곳이다. 어찌나 심했는지 포격으로 산 본래의 모습을 잃었고 그 모양이 마치 백마가 누워있는 것 같다고 해서 '백마고지'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방문한 곳은 백마고지가 아니고 전적비가 놓여있는 곳이고, 전적비 뒷 편에 가면 백마고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개 나온다. 역시 촬영금지구역이라 눈으로 그 아픔을 확인해 본다.

저 하나의 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갔는가? 그 분들의 고귀한 희생 때문에 오늘날 내가 존재하는 것이겠지.

a 산책로

산책로 ⓒ 이종원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가족끼리 오붓하게 거닐어보자.

노동당사

a 노동당사

노동당사 ⓒ 이종원

전쟁의 상흔보다는 아이들에게 서태지가 뮤직비디오 찍은 곳으로 더욱 이름이 알려져 있는 곳이다. 어쨌든 통일의 상징으로 보여 졌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노동당사는 6.25전쟁 전까지 사용했던 노동당 철원군 당사다. 북한은 이 건물을 지을 때 쌀 200가마와 많은 인력을 동원하여 건설했다고 한다. 당시로서는 상당히 큼직하고 견고한 건물이었음이 분명하다. 미군의 폭격으로 지금의 모습을 하고 있다. 또한 이 곳은 반체제인사들을 고문현장이기도 하다. 앙상한 뼈대만큼 아픔을 간직한 곳이다.

철원제일 감리교회 터

a 철원감리교회터

철원감리교회터 ⓒ 이종원

겨울엔 주로 폐사지를 찾아다니며 황량한 감동을 받았는데..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교회터를 만나니 색다른 느낌이 든다. 불과 50년 전에 당한 상처다.

1937년 지어졌으며 지하 1층 지상 3층의 멋진 건물이었다. 기독청년들의 반공운동의 본거지였다가 3.8선이 그어지면서 많은 신도들이 학살을 당했다. 6.25 때는 인민군의 병동이 되었고, 미군의 폭격으로 이렇게 박살이 난 것이다. 지하는 당시 양민학살의 만행 장소라는데…. 보기만 해도 섬뜩하다. 이런 아픔은 그저 과거사로 그친 것이 아니다. 바로 지금 이라크 민간인들은 이런 고통에 살고 있음을 알아야겠다.

a 철원감리교회 원래모습

철원감리교회 원래모습 ⓒ 이종원

제일 감리 교회의 원래 모습이다.

몇 년전 백두산에 갔을 때 현지 조선족 가이드인 김미화씨가 읊어준 시가 생각이 나서 이곳에 옮겨본다.

흐느끼는 강아

북한 시인

강감찬이 수호한나라
을지문덕이 지켜낸 나라
누가 허리를 잘라 놓았느냐
어이하여 둘이 되었느냐
낙동강도 흐느끼며 울고 있다.

흰 옷처럼
깨끗한 우리 민족
우리 민족은
왜 세계의 비극을 안고
고통스럽게 살아야 하는가

한강도 서울을 안고 운다.
대동강도 평양을 안고 운다.

남에 한라산, 북에 백두산
반세기동안 묵묵히 마주서서
울고 있는 강을 지켜보면서
한숨만 풀풀 날리고 있다.

누가 대화를 방해하던가
주가 통일을 거부하던가
왜 이다지도 민족화합이 어려운거냐

아- 울어.
울기만 하는 강아....

어느 때 가면
어느 때 되면

그 울움 딱 그치고
노래하고 춤추겠는가?


전적지 견학안내

견학당일 철의 삼각 전적관 2층 접수실에서 출발 시간 10분전까지 신청서 작성. 대표 한사람 신분증 제출

가. 출발시간 - 09:30 10:30 13:00 14:00

나. 고석정및 견학 입장료 - 어른 1,500/청소년 1,000/어린이 800
주차비 2천원

다. 전적관 문의: 033-455-3129 / 이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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