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인생 우리 사랑하며 살아요!"

새벽을 여는 사람들(5) TBS '출발 라디오 세상' 이은정 아나운서

등록 2003.04.10 14:35수정 2003.04.24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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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안개가 사뿐히 내려앉은 고요한 새벽. 졸린 눈을 비비며 출근하거나 피곤함을 달래며 퇴근하는 사람들의 길동무가 있다. TBS (교통방송 FM 95.1 MHz) '출발 라디오 세상' 을 진행하는 이은정(38)아나운서가 그들에게 행복한 아침을 선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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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다섯 시부터 여섯 시까지 생방으로 진행되는 라디오 방송을 위해 새벽 잠을 설치며 달려왔다. 간혹 어떤 이들은 이른 새벽 굳이 생방을 고집하는 그녀를 쉬이 이해하지 못한다. 힘이 안들면 거짓말이다. 생활 리듬이 크게 뒤바뀌면서 건강이 나빠지고 피부도 거칠어졌다. 그런들 어떠하리. 좋아하는 방송을 하는 데 그런 건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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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그녀는 아나운서라는 직업이 스스로에게 천직이라고 한다. TBS 개국 맴버인 그녀는 이미 13년의 경력을 가진 베테랑이다. 이젠 슬슬 매너리즘에 젖어들며 안정을 추구 할 법도 한데 그녀는 방송이 할 수록 점점 더 어렵다고 한다. 항상 첫 방송의 기분으로 임하기에 매회 느낌이 다르다는 그녀의 얼굴에 긴장감이 감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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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새벽에 운전하다 졸리면 어떻하나요? 아! 그거야 백 퍼센트 확실한 방법이 있죠. 지금 저와 함께 하시면 졸음이 싹 없어질 거예요. 출발 라디오 세상! 안녕하세요 이은정입니다."

상쾌한 오선지 위에 정확한 단어들이 장단을 맞춘다. 봄의 나른한 춘곤증도 금새 가셔버릴것 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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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밤 사이 발생한 뉴스를 전달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려온다. 그녀는 청취자들에게 뉴스를 전할 수 있음에 환희를 느낀다. 직접 현장을 취재하고 그 생생함을 바로 전달 할 수 있는 자신의 직업에 만족해 한다. 그녀는 좋아하는 일을 즐기며 돈을 벌 수 있는 자신이 복받은 사람이라며 연신 행복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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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유독 국어책을 잘 읽는 소녀가 있었다. 어느 새 시낭송은 소녀의 차지가 되었고, 짓궂은 친구들은 소녀의 목소리를 빌리기도 하였다. 소녀는 성장하여 대학교 방송반을 거쳐 TBS 개국 멤버가 됐다. 어느 해 여름 하루 종일 밥을 굶은 채 비 맞으며 수해 현장을 취재했다. 그녀는 청취자에게 현장을 전달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배가 불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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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해 후 지독히도 더웠던 여름. 수해 현장 취재 후 그녀는 독감으로 2주간 사경을 헤맺다. 방송을 시작한지 2년이 되던 해. 뉴스 방송을 하는 중 침이 기도로 넘어가버린 웃지 못할 사태가 발생하였다. 죄송하다며 다른 이에게 마이크를 넘겼지만, 순간 방송 사고의 위기까지도 초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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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웃으며 말하면서도 다시금 긴장을 가다듬는 모습에 철저한 '프로' 근성이 보인다. 그녀는 방송 외 분야에도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태권도, 수영, 탁구를 거쳐 요즘엔 합기도를 배우고 있다. 더불어 일본어를 배운지 10개월 이젠 더듬 거리며 대화가 가능할 정도이다. 안일한 삶의 관성을 벗어버리고 끊임없이 탐험하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괜시리 몸이 근질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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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그녀의 성대 모사는 수준급이다. 남들은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어설픈 모사'가 매력이라 한다. 저팔계와 사오정 성대 모사를 하는 강신봉 PD와 이은정 아나운서의 익살에 스튜디오는 웃음이 한가득이다. 차분하게 방송을 진행하다가도 상황에 따라 재치를 발휘, 성우 못지 않은 연기력을 보여준다. 만화 캐릭터 '짱구'의 성대 모사가 특기라던데, 끝내 들어 보지 못함에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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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짧은 인생 우리 사랑하며 살아요!" 라는 그녀의 좌우명이 방송 마지막 멘트를 장식한다. "오늘 방송에 만족하세요?" 라는 질문에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실수가 많았다 한다."오늘은 좀 떨리네요" 라고 홍조를 띠며 대답하는 그녀에게 베테랑의 안일함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가 왜 그리 젊고 생동감 넘쳐 보이는지 알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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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제가 살아 있어요. 그걸 느낄 수 있어요!" 짧은 만남 동안 "방송이 너무 좋아 한없이 행복하다"는 그녀의 말을 도대체 몇 번이나 들었는지 모른다. 스스로의 삶에 확신이 담긴 그녀의 진지한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그녀가 뿜어내는 삶의 열기로 아침이 달아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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