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고주몽 61

등록 2003.04.10 17:46수정 2003.04.10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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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속의 패전 소식은 겨우 살아온 패잔병들의 입을 통해 신속히 요동태수 채진에게 전해졌다.

"그래 진속은 어떻게 됐느냐?"


진속이 패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채진은 계획이 맞아 떨어진데 기뻐하며 그의 생사여부를 궁금해했지만 말을 전한 이도 알 수 없다고 답할 뿐이었다.

"조정에는 평곽현령이 병들어 죽었다고 전하고 고구려가 침입한 사실도 없었던 것으로 하라. 그리고 종사 왕의는 평곽현으로 가서 다른 말이 흘러나오지 않도록 민심을 수습하도록 하시오."

야심만만했던 진속의 이름은 이로서 한(漢)나라의 역사 속에서 완전히 지워져 버렸다.

백성들의 환영을 받으며 오녀산성으로 들어가는 주몽의 마음은 승전에도 불구하고 무겁기만 했다. 건국이래 첫 원정이 성공적으로 끝나는 듯 하다가 뜻하지 않은 한군(漢軍)의 움직임으로 무위로 돌아간 것은 아직 고구려의 국력이 충분치 않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그런 주몽의 앞에 왕비 월군녀와 해위가 마중 나와 있었으나 묵거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태대형은 어디에 있소?"


주몽의 말에 월군녀는 어두운 낯빛으로 대답했다.

"지금 중병으로 인해 몸조차 가누기 어려워 여기 나오지 못했나이다."


주몽은 그 말을 듣자마자 한 걸음에 묵거가 있는 병상으로 달려갔다.

묵거의 병은 오녀산성을 지키기 위해 동분서주한 뒤라 더욱 악화되어 있었다. 주몽은 주위를 물리친 후 겨우 숨만 쉬고 누워있는 묵거의 모습을 지켜보며 갑옷조차 벗지 않은 채 계속 지켜만 보고 있었다. 마침내 묵거가 눈을 뜨고 주몽의 모습을 보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려 했다. 주몽은 그런 묵거를 만류했지만 묵거는 한사코 자세를 바로 한 채 주몽을 맞이했다.

"폐하......신(臣) 태대형 묵거가 문안드리옵니다."

"그동안 고생이 많았소."

"폐하......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이제 신은 더 이상 폐하를 모실 수 없을 듯 하옵니다."

주몽은 크게 놀라 묵거에게 꾸짖듯이 말했다.

"그 무슨 말이오! 공은 짐 곁에서 할 일이 아직 많아 있소. 더구나 공과 함께 할 공부도 많이 남아 있지 않소!"

묵거는 조용히 웃음을 지으며 느리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폐하...... 신의 마지막 당부를 꼭 들어 주십시오. 고구려는 갓 나라를 세운 터이지만 지금의 시기는 주위로 뻗어나가기에 매우 유리하옵니다. 이 시기를 놓쳐서는 아니 되옵니다. 이번의 실패에 대해서는 후세에 전해지지 않도록 함구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나라가 커지면 사람도 많아지는 법, 아부하는 말과 충성된 말을 가려서 들으시옵소서."

"잘 알겠소."

"그리고 제가 지금부터 하는 말은 꼭 지켜주시길 바랍니다."

묵거는 잠시동안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는 듯 했다.

"폐하, 동부여에 있는 예부인은 잊어 주십시오."

주몽은 그런 묵거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왜 그래야 하오?"

"예부인이 돌아오시면 폐하께서는 행복해 지지시겠지만 그로 인해 잃는 것이 많을 것이옵니다. 지금의 왕비마마를 생각하시옵소서."

주몽은 묵거의 시선을 피해 또 다시 말이 없다가 묵거를 다시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솔직히 그건 장담할 수 없는 일이오."

묵거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이거 한가지는 꼭 약조해 주십시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져도 미움을 가지지 말아야 합니다."

"내 꼭 공의 말을 명심하겠소."

묵거는 눈을 감으며 다짐을 받아내 듯 다시 말했다.

"미움을 가지지 마십시오...... 폐하는 후세사람들에게 길이 남을 분입니다."

그 날 밤 묵거는 주몽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주몽은 슬피 울며 묵거의 명복을 진심으로 빌며 미움을 가지지 말라는 묵거의 말을 되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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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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